[Magazine D/ Opinion] 욕하면서 보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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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1월 15일 0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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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혁의 B급 살롱

이모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손가락질했다. 엄마도 했고, 누나도 따라했다. 나도 그냥 따라했다. 어렸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욕하는 이유는 알았다. 그리고 욕하면서 보는 이유도…. 하지만 성인이 되자 그런 것들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연속극에 나오는 악녀들은 어딘지 비슷했고, 그녀를 욕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비슷한 플롯에 지쳤고, 통쾌함은 반복되지 못했다.

욕하고 싶은 것은 악녀가 아니라, 비슷한 플롯만 찍어낼 수밖에 없는 드라마 기획 구조였다. 그걸 알고 나니 자극적인 드라마들도 더는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아웃 오브 안중이랄까? 대신 내 신경을 찌르는 것들은 일상의 인물들이었다. 결혼기피시대의 고부갈등이 아니라 학교의 ‘눈치 없는 동기’, 사회생활하며 마주하는 ‘똘아이’, 자기 가치관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어린 꼰대’들이었다. 이러한 인물들은 남녀노소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은 드라마가 아니라 만화에 등장했다.

요즘의 몇몇 웹툰은 이러한 ‘진상’을 주인공을 내세웠다.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쾌한 인물, 불편한 관계, 적나라한 속마음을 가감 없이 선보였다. 독자들은 민폐 주인공을 욕하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 주인공이 혹시 나는 아닐지. 요즘 손가락질 하며 정주행하고 있는 웹툰 두 개를 골라봤다.


‘마스크걸’

입체적인 캐릭터는 탄탄한 개연성에서 출발한다. ‘마스크걸’의 주인공 김모미는 몸매는 끝내주게 좋지만, 얼굴은 끝내주게 못 생겼다. 그녀가 처음부터 손가락질 받아야 했던 것은 아니다. 못 생긴 게 그녀 탓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녀는 자기 얼굴에 대해 큰 콤플렉스를 가졌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을 하며 몸매를 자랑했다. 채팅방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풍선을 쐈고, 그녀는 돈보다 외모에 대한 칭찬을 받을 때 더 행복해했다.

여기까지 이 만화의 설정은 다소 유쾌해 보인다. 김모미가 가진 콤플렉스의 본질은 외모지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를 현실로 끌고 들어오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모미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자기반성도 하고, 자기 욕망에도 충실한 평범한 인물이다. 웹툰의 시선은 그녀를 초밀착해 관찰하며, 그녀를 변호하지도, 괴롭히지도 않는다. 김모미는 살아있는 생명처럼, 마치 내 친구, 혹은 내 자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녀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때마다, 욕을 했지만. 만일 나였으면? 내가 김모미였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마스크걸’에서 손가락질하는 캐릭터는 김모미만이 아니다. 작가의 카메라는 모든 캐릭터에 밀착됐다. 인물의 어깨 바로 뒤에서, 캐릭터의 속내를 관찰한다. 마냥 선비 같은 인물은 없다. 아니, 선비 또한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 ‘마스크걸’은 외모지상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민낯에 거울을 들이밀었다. 어떤 네티즌은 이런 댓글을 남겼다. ‘마스크걸’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이고, 경멸스럽다고. 나는 그 ‘베댓’이 우리 시대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글이라고 느꼈다. 현재 2부 34화까지 이어진 ‘마스크걸’은 반전에 반전을 꾀하며, 기나긴 추격전을 지속한다. 추격자도, 조력자도, 도망자도 하나 같이 짜증난다.



‘눈치 없는 내 친구!’

제목이 곧 내용이다. 평범한 복학생인 박훈에게는 5년 지기 동기인 복민수라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복민수는 밑도 끝도 없이 짜증난다. 작가는 눈치가 없다고 표현했지만, 염치가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복민수는 알면서 일부러 진상 짓을 피우니까. 여기서부터는 염치와 눈치가 없고, 자기 실리만 챙기느라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인간성을 가리켜 복민수라고 지칭하자.

이 웹툰을 보면서 화가 나는 것은 내 주변의 복민수적인 인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소심한 사람들은 한 번 받은 민폐를 쉽게 잊지 못한다. 매번 밥을 얻어먹으면서, 한 번도 더치페이 하지 않는 인간. 그럼에도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 그 성정. 매번 담배를 한 개비씩 빌려가거나, 라이터를 빌려가 놓고 갚지 않는 경우. 자기 때문에 팀원들이 고생하는데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이해하지도 못하는 인간.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민폐의 모든 성질을 갖춘 복민수를 향해 손가락을 하지만, 작가는 복민수에게 치욕보다 눈치 없는 내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보여준다. 사춘기 시절 일진들에게 잘 보이고 학교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존감을 낮춰야만 했던 과거를 핑계처럼 소개한다. 하지만 그 일련의 과거는 복민수가 용기 없는 인물임을 더 강조했을 뿐이다. 주인공 박훈은 소심하게 참으며 당하기만 하는 ‘나’를 이입하고자 만든 캐릭터다. 작가는 캐릭터들에 입체감을 더하기 위해 박훈의 배신이나 악행들도 넣긴 했지만 그게 이 이야기의 중심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쨌든 박훈 외에도 이 웹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비중 있는 인물들은 나약하다. 나약해서 생존하기 위해 용기를 발휘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들의 방법대로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간질하고, 자기보다 약해보이면 괴롭히고, 강한 자에게는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는 식이다. 그러고 보면 박훈도 나도 생존을 위해 비열한 방법을 택한 적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가락질하기 위해 그 과거를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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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이전부터 대중문화에 심취했다. 어른이 되면 고급문화에 심취할 줄 알았는데, 더 자극적인 대중문화만 찾게 되더라. 현재는 인터넷 문화와 B급 문화뽕까지 두루 맞은 상태로 글을 쓴다.
#웹툰#마스크걸#눈치없는내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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