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보다 무서운 예쁜 귤의 유혹

  • 여성동아
  • 입력 2016년 1월 6일 14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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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만화책을 보며 하염없이 귤을 까 먹는다. 이런 행복한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에 딱 좋은 계절이 왔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감귤. 하지만 잘못 구입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감귤이 몸에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우선 비타민 C가 풍부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어 감기 예방은 물론 피부 건강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제주대학교와 농촌진흥청의 공동 연구에 의하면 감귤이 당뇨와 비만 예방에도 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지방 사료만 먹인 쥐와 감귤 추출물을 함께 먹인 쥐를 20주간 비교해보니, 감귤을 함께 먹인 쥐의 체중이 10% 줄고 혈당도 28% 감소했다고 한다. 또 감귤에는 혈관 염증을 줄이고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플라보노이드’ 함량이 오렌지보다 두 배 많다. 귤껍질도 매우 유용하다. 귤 껍질을 잘게 잘라 말려두었다가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할 때, 몸살 기운이 있을 때 ‘귤피차’를 끓여 먹으면 완화 효과가 탁월하다고 하니, 귤은 가히 ‘가성비 끝내주는’ 제철 과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 귤이나 다 좋은 건 아니다. 좋은 귤 고르는 데도 방법이 있다. 세 가지 비법을 지금 공개한다.
1. 귤 꼭지의 진실
귤을 고르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꼭지 부분이다. 흔히 ‘귤 꼭지가 싱싱하고 잎이 달려 있으면 좋다’고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좋은 귤을 골라내기에 역부족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기준을 제시해볼까 한다. 이 글을 읽고 당장 마트에 달려가서 확인해봐도 좋다. 모든 귤은 두 종류로 나뉜다. 귤 꼭지가 갈색인 것과, 녹색인 것.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모든 귤은 이렇게 딱 두 가지로 갈린다. 더 진한 갈색과 더 진한 녹색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색상은 두 가지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는 어떤 이유에서 달라지는 것일까. 차이는 후숙 과정에 있다. 사실 이 내용은 2년 전 ‘먹거리 X파일’ 취재팀이 광택제를 바른 듯 윤기 나는 ‘예쁜 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취재하던 중 함께 밝혀진 것으로, 당시 취재진은 제주도의 한 대형 선과장에서 감귤에 윤기를 내기 위해 기계로 공업용 왁스를 발라 출하시키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귤 꼭지 색깔이 갈색과 청색으로 나뉜다는 걸 알게 됐다. 제주농협이 운영하는 선과장을 관찰하던 중 쓰레기장에서 무수히 많은 ‘에틸렌 가스통’이 발견됐는데, 장기간 잠입 취재 결과 덜 익은 초록색 감귤에 이 에틸렌 가스를 뿌리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가스 살포 후 두 시간이 지나자 감귤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났고 초록색이던 감귤 색은 2~3일 후 어느새 샛노랗게 변해 있었다. 결정적으로 감귤 꼭지 색깔이 가스 도포 후 갈색으로 변한 걸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꼭지가 초록색인 귤은 에틸렌 가스, 일명 ‘후숙 가스’가 도포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에틸렌 가스가 인체에 유해한 화학약품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에틸렌 가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중추신경계 질환, 호흡 곤란,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후숙 가스를 뿌리면 감귤의 부패도 빨라진다. 제주대 원예환경학과 송관정 교수는 “후숙 가스를 쓰면 감귤의 생리 리듬을 앞당겨서 ‘성숙’ 과정을 건너 뛰고 ‘익음’, 즉 노화 과정으로 바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연 상태의 감귤보다 부패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제주도청 역시 감귤 판매 시행령에 ‘감귤을 수확하여 아세틸렌 가스, 에틸렌 가스, 카바이드 등 화학약품이나 열(온)풍기, 전기 등을 이용해 후숙, 강제 착색시키거나 이를 유통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1 채널A ‘먹거리 X파일’에서 감귤에 숨어 있는 비밀을 밝히고 있는 김진 기자. 2 일부 감귤 선과장에서는 덜 익은 감귤을 빠른 시일 내에 숙성 단계에 이르게 하기 위해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알려진 에틸렌 가스를 살포하고 있다. 3 에틸렌 가스 살포 후 꼭지가 갈색으로 변한 감귤(오른쪽). 4 가장 맛있는 감귤의 크기는 지름이 49mm 이상 70mm 이하다. 이 범위를 벗어나는 감귤은 법적으로 유통이 금지돼 있다.
1 채널A ‘먹거리 X파일’에서 감귤에 숨어 있는 비밀을 밝히고 있는 김진 기자. 2 일부 감귤 선과장에서는 덜 익은 감귤을 빠른 시일 내에 숙성 단계에 이르게 하기 위해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알려진 에틸렌 가스를 살포하고 있다. 3 에틸렌 가스 살포 후 꼭지가 갈색으로 변한 감귤(오른쪽). 4 가장 맛있는 감귤의 크기는 지름이 49mm 이상 70mm 이하다. 이 범위를 벗어나는 감귤은 법적으로 유통이 금지돼 있다.

2. ‘영귤’ 아닌 영귤 같은 ‘청귤’
014년 여름 ‘소길댁’ 이효리가 직접 담근 ‘영귤청’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 영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 듣기에 생소한 이름이지만 영귤은 엄연히 감귤의 한 종류로 1980년대 일본 도쿠시마 현으로부터 제주도에 처음 도입됐다. 제주도의 옛 명칭인 ‘동영주’는 신선이 살 만한 곳이란 뜻인데, 여기서 따와 영귤이라 이름 붙였다. 탁구공만 한 크기에 무게도 30g 정도밖에 안 나가고 짙은 녹색을 띤다. 신맛이 매우 강해 그냥은 먹기 힘들고 청으로 담그거나 요리할 때 첨가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카로틴과 비타민 C가 풍부해 면역력을 높이는 데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영귤이 제주도에서도 구하기 힘든 열매란 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로 이효리의 블로깅 이후 너도나도 영귤청을 만들었다는 포스트가 올라온 것일까. 지난여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초록의 감귤은 과연 영귤이 맞았을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구입한 영귤은 영귤이 아닌 청귤이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청귤과 영귤은 엄연히 다른 종으로, 청귤은 크기도 일반 감귤과 비슷하고 영귤보다 연한 청색을 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귤은 그냥 감귤이 매우 안 익은 미숙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청귤을 판매하거나 유통하는 것도 법으로 금지돼 있다. 영귤 같은 효능도 없고, 영귤만큼 맛도 없다. 전혀 상품성이 없는 청귤을 영귤인 줄 알고 비싸게 구입했다면 쉽게 말해 여러분은 사기를 당한 셈이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이 청귤의 유통을 막기 위해 단속반까지 운영하고 있다.
3. 가장 맛있는 감귤의 크기는?
“감귤은 큰 게 맛있지”, “아니야 작은 게 맛있어.” 감귤 철마다 크기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그런데 가장 맛있는 귤의 크기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법으로 정해놓은 가장 맛있는 귤의 크기는 지름 49mm 이상 70mm 이하다. 이보다 크거나 작으면 맛이 떨어지고 상품성도 떨어져 법으로 유통을 금지시켜 놓았다. 귤을 고를 때마다 줄자를 가져갈 수도 없고, 어떻게 49~70mm를 구별할 수 있을까.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일반적인 종이컵 하나면 이 감귤의 사이즈를 가려낼 수 있다. 종이컵의 입구 쪽 지름이 딱 70mm, 받침 쪽 지름이 49mm 정도다. 따라서 종이컵 입구보다 크거나 종이컵 받침보다 작으면 비상품과다. 그런데 최근 ‘쪼꼴락’이라 불리는 49mm 이하의 귤이 시중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상품성이 떨어짐에도 한입에 쏙 들어간다는 점을 부각시켜 소비자를 현혹하는 상인들이 더러 있는 것.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술일 뿐 엄연히 불법임을 알아두자.

글 · 김진 채널A ‘먹거리 X파일’ 진행자 | 사진 · 채널A REX | 디자인 · 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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