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사람 수만큼 많은 ‘어린 왕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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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마다 번역본마다 읽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꿈’으로
국내 출간 책 중 5종 비교 분석

서점에 가면 서가에 수많은 ‘어린 왕자’가 꽂혀 있다.

생텍쥐페리(1900∼1944)의 이 작품은 세계 250개 언어로 번역됐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어린 왕자’는 100종이 넘는다.

새 번역본도 계속 출간되고 있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최근 문학평론가 황현산 씨 번역의 ‘어린 왕자’를 발간했다.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김미성 교수가 옮긴 ‘인디고’ 출판사의 개정 번역본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12월 영화 ‘어린 왕자’ 개봉을 앞두고 서점에 어린 왕자 붐이 불 것이라는 게 출판계 전망이다.

문학평론가들은 ‘어린 왕자’는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편차가 큰 작품이라고 평한다. 작품 자체의 속성 때문이다. 생텍쥐페리가 서문에서 “지금은 어른이 된 예전의 어린아이에게 바친다”고 밝혔듯, 이 책은 동화 형식이면서도 각종 은유와 상징을 통해 세상을 풍자하는 등 삶의 통찰을 담고 있다. 독자가 해석하는 바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는 이유다.

판본도 여러 개다. 생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고 1943년 뉴욕에서 먼저 영어판 ‘어린 왕자’가 발간됐다. 1946년이 돼서야 고국에서 프랑스어판이 나왔다. 이후 여러 판본이 난립하면서 어린 왕자의 망토 색깔이 달라지거나 별에서 해가 지는 횟수가 다르게 적히는 오류도 발생했다.

어떤 판본을 어떤 취지로 번역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미묘하게 다르게 읽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내판 중 상당수는 영어판을 토대로 번역됐다. 하지만 학술논문에 가장 많이 인용된 ‘어린 왕자’는 1946년 프랑스어판이다.

동아일보가 누적 판매액이 높은 ‘어린 왕자’ 번역본 4종(문학동네, 인디고, 비룡소, 허밍버드)과 최근 발간된 ‘어린 왕자’(열린책들) 등 5종을 비교 분석한 결과, 미묘한 차이가 적지 않았다. 어린 왕자의 대사 중 ‘내가 길들인 꽃이니까…’ 식으로 여운을 주는 번역(허밍버드)이 있는 반면 동사 ‘들어주다(´ecouter)’에 목적어가 일정한 호흡으로 걸리도록 운율을 맞춰 원문 그대로 번역한 경우(열린책들)도 있었다.(그래픽 참조)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린왕자가 말했다.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라는 식으로 프랑스어 원문에 맞춰 대사 중간에 전달동사를 넣어 진지함을 더한 번역본도 있는 반면 대부분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란 식으로 붙여 번역했다.

각 번역본에는 번역 당시 국내 언어문화가 반영돼 있기도 하다. 2012년 재출간된 ‘문학과 지성사’의 ‘어린 왕자’가 대표적 사례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 씨가 1973년 번역했다가 절판된 책이다. 김은주 외국문학팀장은 “지금 기준으로는 다소 촌스러운 표현도 있지만 화려하기보다는 잔잔한 문체 등 1970년대 우리 언어의 시대적 정서가 묻어 있어 이를 살려 출간했다”고 말했다.

번역자에 따라 작가의 문체를 최대한 살리는 직역을 선호한 것과 작품 속 본질을 정확히 소화해서 취지에 맞게 담아낸 것의 차이도 보인다. 황현산 씨는 “‘어린 왕자’를 동화로 보고 어린이를 독자로 상정해 지나치게 의역해 번역한 경우가 많았다”며 “비행사이면서 활력이 넘쳤던 생텍쥐페리의 성격이 반영된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리듬의 문체를 최대한 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문학동네에서 ‘어린 왕자’를 낸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김화영 교수는 “원문 텍스트에 어떤 상징성과 의미가 내면화됐는지를 충분히 연구한 후 번역 작업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어린 왕자#번역#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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