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방해하는 건 철저히 외면… 법정스님은 실속파였지, 껄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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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법정스님 5주기… 사형-사제 관계 법흥 스님의 회고

전남 순천 송광사 내 방우산방 앞에 선 법흥 스님. “난 중 될 팔자라 세속에 있었으면 결혼도 취직도 못했을 거야”라는 격의 없는 화법에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스님은 지나가는 객에게도 법문과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보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순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전남 순천 송광사 내 방우산방 앞에 선 법흥 스님. “난 중 될 팔자라 세속에 있었으면 결혼도 취직도 못했을 거야”라는 격의 없는 화법에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스님은 지나가는 객에게도 법문과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보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순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법정 스님, 실속파에 이기적이었어(웃음). 자기 수행과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철저하게 멀리했어.” 16일 법정 스님 5주기를 앞두고 스님의 사제(師弟)이자 조계종 원로의원인 법흥 스님(84)을 11일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만났다. 두 스님의 스승은 통합 조계종단의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 스님(1888∼1966)이다. 효봉 스님의 제자 중 구산 스님과 법정 스님은 이미 입적했고, 법흥 스님이 유일하게 산문을 지키고 있다. 환속한 제자 중에는 시인 고은(옛 법명 일초)과 박완일(일관) 전 동국대 교수가 있다. 》

법흥 스님은 이날 기자를 만나자마자 “옛날얘기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법정 스님과의 인연을 속사포처럼 털어놓았다. “출가 다음 해인 1960년 대구 동화사 금당에 계시던 은사가 ‘법정, 법흥 건너오라’고 해서 사형(법정)을 처음 보게 됐어. 이 양반은 절 뒷방에서 글 쓰고, 나는 선방 다니던 시절이었지. 사형이 글 잘 쓴다는 말은 이미 듣고 있었는데 첫눈에도 인상이 날카롭고 까칠해 보였지. 허허.”

법흥 스님의 출가 스토리는 이렇다. 스님은 당시로는 드물게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스님이 현재 머물고 있는 거처의 이름도 대학 시절 은사였던 시인 조지훈의 방우산장(放牛山莊)을 따서 방우산방이다. 대학 시절부터 서울 개운사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8배를 할 정도로 신심이 깊었다. 1959년 일타 스님 소개로 효봉 스님을 찾아갔다. 효봉 스님은 대뜸 “넌 얼굴이 중상인데 왜 속가에 있느냐. 사주에 불도(佛道)가 들어 있다”고 했다. 그 길로 출가했다.

법흥 스님은 이런 사연들을 소개하며 “나, 컴퓨터는 아니고 녹음기야. 한 번 들으면 안 잊어 먹어”라고 말할 정도로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사형의 대쪽 같은 성정과 관련된 사연도 이어졌다. “1967년 성철 스님을 만나려면 3000배를 해야 하는 것과 관련해 불교신문에 법정 스님의 글이 실렸어. 한마디로 그것은 절이 아니라 몸을 굽혔다 펴는 굴신 운동이다, 이런 거지. 성철 스님의 상좌들이 하도 ‘들이까서’ 사형이 결국 봉은사로 도망갔어. 하하.”

한동안 봉은사에 머물던 법정 스님은 1975년 송광사 내의 불일암을 고쳐 그곳에서 지내겠다며 내려왔다. “1972년 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른바 요주의인물들과 가깝게 지내던 사형에 대한 감시가 심해진 거지. 스님이 원고료 20만 원 갖고 내려왔는데 당시 내가 송광사 주지 하던 때라 기와 값 50만 원을 보탰어.”

법흥 스님의 말은 길상사 주지 덕운 스님의 방문으로 잠시 끊겼다. 덕운 스님은 16일 오전 11시 서울 길상사에서 열리는 법정 스님 5주기 추모법회 준비를 위해 송광사를 찾은 참이었다. 조카 상좌의 절을 받은 법흥 스님은 “법회에 시간 맞춰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방우산방을 떠날 무렵 스님은 평생 방 한 번 안 보여줄 정도로 엄격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이렇게 새겼다. “(법정 스님) 혼자 밥 해 먹고 10년 살면서 책을 수십 권 냈어. 그러다 하도 인기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공부와 수행에 방해된다며 오대산으로 가 버렸지. 그 뒤 송광사 행사에도 일절 참석하지 않았어. 그리 독하게 살았으니 무소유가 나온 게지. 요즘 사람들은 공부도 수행도 모두 대충인 것 같아 아쉬워.”

순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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