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흑백의 대화… 내게 사진은 소설이 아닌 詩”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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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촬영위해 한국 찾은 건축전문 사진작가 헬렌 비네

“모든 걸 보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헬렌 비네는 사진 잘 찍는 법을 묻자 “한 가지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모든 걸 보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헬렌 비네는 사진 잘 찍는 법을 묻자 “한 가지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소설이 아니라 시(詩)다.

그의 사진은 수다스러운 법이 없다. 빛과 그림자가 건축 공간에 그려내는 움직임을 아날로그 필름에 조용히 담아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건축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독립된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건축 사진작가 헬렌 비네(55)가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와 SPLK건축사사무소의 경북 청도 혼신지 주택 촬영을 위해 21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진과 예술사를 공부한 뒤 영국 런던에서 일한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스위스의 페터 춤토르와 영국의 자하 하디드, 뉴욕 세계무역센터 재건 마스터플랜 설계자인 미국의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비네의 눈으로 본 내 건물이 궁금하다”며 촬영을 맡기는 단골 고객이다. 혼신지 주택과 DDP를 4일씩 찍은 뒤 호텔에서 쉬고 있는 그를 SPLK의 김현진 소장과 함께 출국 전날인 지난달 31일 만났다.

헬렌 비네는 은둔형 건축가인 페터 춤토르, 떠들썩한 스타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와 두루 친하다. 하디드는 건물의 ‘어린 시절’을 남겨두기 위해 공사 중인 건물을 찍어달라고 할 때가 많다고 한다. 왼쪽 사진이 완공 전에 찍은 하디드의 독일 파에노 사이언스센터(2005년)다. 오른쪽 위는 하디드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독일 비트라 소방서(1993년), 아래쪽 사진은 건축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로 꼽는 춤토르의 스위스 테르메발스 온천(2006년)이다. 헬렌 비네 제공
헬렌 비네는 은둔형 건축가인 페터 춤토르, 떠들썩한 스타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와 두루 친하다. 하디드는 건물의 ‘어린 시절’을 남겨두기 위해 공사 중인 건물을 찍어달라고 할 때가 많다고 한다. 왼쪽 사진이 완공 전에 찍은 하디드의 독일 파에노 사이언스센터(2005년)다. 오른쪽 위는 하디드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독일 비트라 소방서(1993년), 아래쪽 사진은 건축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로 꼽는 춤토르의 스위스 테르메발스 온천(2006년)이다. 헬렌 비네 제공
―DDP(8만6574m²·약 2만600평)와 혼신지 주택(200m²·약 60평)은 규모가 다르다. 왜 사진 찍는 데 똑같은 시간이 걸리나.

“빛에 따라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달라지기 때문에 작은 건물도 시간이 필요하다. 빛은 공간을 드러내고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필수적이다. 내겐 보스(Boss) 같은 존재다. 사진가는 농부 같다. 해 뜨면 일어나 해질 때까지 일하고, 겨울보다 여름에 오래 일하고.”

―DDP는 서울의 역사와 주변 맥락을 무시한 건물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많은 사람이 모여 즐기는 건물이다. 그럼 된 것 아닐까. DDP는 제스처가 강한 건물이다. 그래서 반응도 강렬한 것이다. 무난하게 지었다면 아무런 반응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하 하디드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독일 비트라소방서(1993년) 촬영 때 만나 지금껏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20년 지기에 대해 “결코 돌아가지 않고, 타협하는 법이 없다. 그는 아름답게 직선적인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사진을 보고 건물이 예뻐 보러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리베스킨트는 “비네의 사진은 건물에 아양 떨거나 건물을 예쁜 그림으로 바꿔놓지 않는다. 건물 내면의 긴장감을 개념적으로 드러낸다”고 했다. 좋은 건축 사진이란….

“건물에 대해 비평하려는 게 아니다. 건물에 대해 꿈꾸게 하고, 건물이 내 고유의 목소리로 노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이어야 한다.”

―왜 필름만 고집하나.

“아날로그 사진은 하루 20∼30장밖에 못 찍는다. 수정도 못한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한순간에 100% 집중해야 한다. 디지털로 찍어 수정 작업을 하니 요즘 사진을 보면 모든 사람과 건물이 똑같아 보인다. 난 리얼리티를 원한다.”

―흑백 사진을 주로 찍는 이유는….

“건축에서 받은 감정을 전달하기란 매우 어렵다. 거기에 색까지 들어가면 더욱 방해받는다. 나는 많은 걸 보여 주려 하지 않는다. 하나에만 집중한다. 어둠 속에서 잘 들리듯 단순해야 강렬해진다.”

―세계 여러 도시와 건축가를 경험해봤다. 어디서 누가 설계한 집에 살고 싶은가.

“강한 과거에 기대어 사느라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에너지가 없는 로마보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사는 런던이 일하기엔 좋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키운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가 지은, 디자인이 과한 집은 싫다. 여기저기 고장 났더라도 오래된 집이 좋다. 집이란 그런 거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헬렌 비네#건축 사진작가#D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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