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은 무장투쟁… 며느리는 독립자금 수송…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역사박물관 광복절 특별전… 김가진 일가 독립운동 유물 눈길

중국 망명시절 찍은 동농 김가진(왼쪽)과 수당 정정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지만 형형한 눈빛과 굳센 입매가 닮았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중국 망명시절 찍은 동농 김가진(왼쪽)과 수당 정정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지만 형형한 눈빛과 굳센 입매가 닮았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서얼 출신. 그러나 능력으로 극복하고 대한제국 정1품 대신에 올랐다. 한일강제병합 뒤에는 비밀결사조직을 이끌었고,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백범 김구의 비서로 일했으며, 며느리는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독립운동을 도왔다.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슬픔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비탄에 그치지 않고 조국을 되찾으려 싸운 경우는 흔치 않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13일 개막한 8·15 광복절 특별전 ‘조국으로 가는 길-한 가족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 며느리가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동농 김가진(東農 金嘉鎭·1846∼1922) 일가의 숭고하고도 치열했던 삶을 조명했다.

6부로 구성된 전시회는 특히 김가진과 며느리 수당 정정화(修堂 鄭靖和·1900∼1991)의 생애에 초점을 맞췄다. 일제가 남작 직위를 내렸으나 거부하고 칩거했던 동농은 1919년 결성된 항일단체 조선민족대동단 초대 총재로 활동했다. 대동단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을 중국으로 망명시켜 해외독립운동을 고취하려다 실패했다. 김가진은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고문으로 활동하며 무장투쟁을 준비하다 1922년 사망했다.

정정화는 시아버지와 남편인 성엄 김의한(省俺 金毅漢·1900∼1964)이 망명한 이듬해인 1920년 무작정 상하이로 찾아가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고 김구 이동녕 윤봉길과 같은 임정 요인들을 뒷바라지했다. ‘임정의 잔 다르크’로 불렸던 수당은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넘나들며 국내에서 독립자금을 마련해 임정 살림을 꾸리기도 했다.

이번 특별전은 동농 일가의 유물과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극 연출 기법을 동원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꾸몄다. 망명길에 몸을 실었던 열차나 압록강을 건너던 나룻배를 세트로 만들고 성우가 주인공처럼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하이에 거처로 마련했던 살림집도 꾸미고, 일제의 폭격을 피해 숨었던 방공호도 재현했다.

정명아 전시과장은 “독립운동사나 정치활동 같은 거시적 담론보다는 망명의 일상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고달팠던 한 시대와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10월 13일까지. 무료. 02-724-0154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광복절 특별전#독립운동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