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털바늘낚시의 세계, 한번 손맛보면 중독자 대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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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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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석이 깃털미끼 덥석 문 순간… 황홀하다

다양한 모양의 플라이낚시용 털바늘들. 벌레, 물고기는 물론 생쥐를 닮은 것(맨 오른쪽)도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촬영협조=클럽워터맨
다양한 모양의 플라이낚시용 털바늘들. 벌레, 물고기는 물론 생쥐를 닮은 것(맨 오른쪽)도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촬영협조=클럽워터맨
《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광복 직후. 부지런한 아버지는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4시면 일어나 낙동강 상류로 향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대나무 낚싯대와 대광주리 하나. 한두 시간 동안 파리낚시를 여울에 흘리면 한 움큼이 훨씬 넘는 피라미가 잡혔다. 미늘 없는 바늘을 쓰는지라 낚인 피라미들은 저절로 후드득하며 광주리 속으로 떨어져 내리곤 했다.

이 물고기들을 식초 섞은 물에 넣어 약한 불로 끓이면 뼈가 물러졌다. 그 위에 고추장을 약간 푼 양념간장을 뿌려 조리면 맛있는 반찬이 됐다. 갓 잡은 신선한 피라미는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


촛농을 찌로 사용한 털바늘낚시

문강순 씨(71)는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새벽잠을 줄이며 아버지가 가져다준 그 사랑의 맛을. 그래서 지금도 민물고기 요리를 좋아한다.

그는 사업을 정리하고 은퇴한 후 낚시, 특히 동물의 털이나 새의 깃털로 만든 인조 미끼를 사용하는 플라이낚시를 취미로 갖게 됐다. 물론 어릴 적 아버지와의 즐거웠던 추억이 낚시를 시작한 중요한 동기 중 하나였다.

오늘날 털바늘낚시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서양에서 발달한 플라이낚시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털바늘 낚시법이 있었다. 파리낚시가 대표적이다. 예전에는 닭이나 오리의 깃털을 작은 낚싯바늘에 실로 묶어 파리낚시를 만들었다. 쇠털을 잘라 쓰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여름철 계곡 근처에서는 파리낚시 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흐르는 물에 채비를 흘리면 피라미와 갈겨니, 버들치 같은 온갖 물고기가 입질을 한다.

조상훈 한국견지낚시협회장은 10여 년 전만 해도 강원 평창 인근에서 ‘촛농낚시’ 하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촛농낚시는 이름 그대로 녹인 촉농을 둥글린 찌를 사용한다. 촛농은 부력이 있어 찌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약간의 무게 덕분에 낚시채비를 멀리 던질 때도 도움을 준다.

오늘날 바다에서 많이 쓰는 던질찌 역할을 하는 셈이다. 촛농찌 아래에는 새 깃털을 감은 털바늘을 단다.

조 회장은 “촛농낚시가 계류에서 ‘무서운 조과(釣果)’를 발휘했다”며 “이런 재미있는 낚시가 사장된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촛농낚시는 낚시 전문 만화가 오세호 씨의 ‘만화로 배우는 민물낚시’에 ‘충북 영동식 여울낚시’란 이름으로 소개돼 있기도 하다. 털바늘을 단 긴 낚싯줄을 바람에 날려 보내는 ‘바람낚시’란 것도 있었다.

팽이낚시는 다행히 오늘날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낚시법이다. 낚싯줄에 큼지막한 나무 팽이를 매달고 그 아래에 털바늘을 매달아 한다. 원래 충북 옥천 등 금강 수계에서만 채비를 살 수 있었다. 요즘도 흔하진 않지만 인터넷 덕분에 구입이 조금 더 편해졌다.

팽이낚시는 끄리(성질이 난폭한 육식성의 잉엇과 물고기)를 주대상으로 한다. 팽이는 낚싯바늘을 멀리 던지게 해 주면서 물살을 가르는 역할도 한다.

이때 생기는 물살과 물보라를 보고 다가온 끄리가 털바늘을 덥석 문다. 팽이낚시용 털바늘은 닭털보다는 오리털로 만든 것이, 검은색보다는 흰색이 훨씬 효과가 크다고 한다.

은어낚시에도 털바늘이 쓰인다. 우리나라의 은어 털바늘은 순금이나 금도금한 쇠로 만들어 물속에 들어가면 묘하게 반짝거린다. 이것은 물고기의 시선을 끄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로마시대 기록에도 나와

털바늘이 언제부터 낚시에 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역사가 무척 오래된 것만은 확실하다. 털바늘에 대한 기록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등장한다. 기원후 1세기 때의 시인 마르쿠스 마르티알리스는 가짜 파리로 물고기를 꼬여 잡는 것을 묘사했다.

로마의 저술가 클라우디우스 아에리아누스(175∼235년)의 책에는 보다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그는 마케도니아 지방의 사람들이 ‘낚싯바늘에 빨간 양털실을 감고 수탉의 깃털 2개를 묶어 송어를 잡았다’고 기록했다.

털바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사람들이 파리 등 살아있는 미끼용 곤충을 모방해 털바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물에 떠내려 오는 깃털을 물고기가 잡아채는 것을 보고 깃털을 낚싯바늘에 묶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의 한 낚시꾼이 배 위에서 떨어뜨린 숟가락을 물고기가 무는 것을 보고 금속 루어(lure·인조 미끼)를 만들게 됐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털바늘은 생 미끼와 달리 몇 번이나 다시 쓸 수 있고, 때로는 살아있는 미끼보다 조과가 좋아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물고기가 하루살이 같은 벌레를 잡아먹는 아침저녁 나절의 계류에서는 매우 효과적이다. 최근에는 털바늘이 자연환경에 거의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플라이낚시에 몰입 중인 문강순 씨. 그는 아직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잡아주신 민물고기 맛을 잊지 않고 있다. 플라이낚시는 물고기들이 벌레를 잡아먹는 아침과 저녁시간에 잘 된다. 털바늘을 묶는 타잉은 그 자체가 예술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양평=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플라이낚시에 몰입 중인 문강순 씨. 그는 아직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잡아주신 민물고기 맛을 잊지 않고 있다. 플라이낚시는 물고기들이 벌레를 잡아먹는 아침과 저녁시간에 잘 된다. 털바늘을 묶는 타잉은 그 자체가 예술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양평=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낚시 바늘에 검정 실만 묶어 던져도 피라미-끄리 몰려들어 입질 다툼 ▼


일본 무사들의 ‘낚시 수련’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털바늘 낚시는 영국 등 유럽에서 발전한 플라이낚시다. 영국에서는 플라이낚시가 승마나 춤과 함께 신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교양으로 여겨졌던 시절도 있었다. 유럽의 털바늘 낚시는 일찌감치 대표적인 여가활동과 스포츠로 발전했다.

털바늘을 만드는 타잉(tying)은 그 위상이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와 함께 털바늘의 ‘모델’이 되는 수서곤충들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플라이낚시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나온 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요즘에는 일본의 전통 털바늘 낚시법인 ‘덴카라 낚시(天から釣り)’가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운영하는 관련 사이트(www.tenkarausa.com가 대표적)도 많다.

덴카라는 서양의 플라이낚시에 비해 미끼의 종류가 적고 단순하다. 플라이낚시가 곤충이나 물고기를 흉내 낸 형상을 중시하는 데 반해, 덴카라는 낚시인의 정교한 기교(미끼를 놀리는 법 등)를 더 중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덴카라와 비슷한 낚시법이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털바늘 낚시와 관련해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예전에 무사들이 다리와 허리를 단련하기 위해 낚시를 했었다는 것이다.

에도시대 일본에서 유일하게 은어 털바늘 낚시가 행해졌던 가나자와(金澤) 지방에서는 무사들이 각자 자신만의 털바늘을 개발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가나자와 털바늘은 꿩과 산새의 깃털, 금박 등을 이용해 화려함과 실용성을 함께 추구했다.

5월 중순이 넘어 하루살이나 날도래 같은 곤충들이 물가에서 날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털바늘 낚시 시즌이 시작된다. 집 근처 낚시점에서 파리낚시 바늘을 사서 써도 되고, 플라이낚시 바늘을 구입해 루어 낚싯대나 붕어용 민장대에 연결해 써도 된다.

간단하게 체험을 해 보려면 작은 싯바늘에 검은색 실만 묶어도 된다. 이 바늘을 여울에 던지면 피라미와 끄리들이 덤벼든다. 마지막에 매듭을 튼튼히 지어 실이 풀리지 않게 하자. 매듭에 순간접착제 한 방울을 떨어뜨려 주어도 도움이 된다.

다만 물가에 갈 때는 항상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특히 바지를 걷고 물속에 들어갈 때는 웬만하면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

더디 오는 봄 너머로 산과 계곡의 여울이 손짓하고 있다. 따뜻한 봄 햇살 아래 물가에 서서 모처럼의 여유로움을 한껏 느끼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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