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근친결혼 금지 이유, 단지 유전결함 때문만은 아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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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인간이 근친결혼을 금기시하게 된 인류학적 기원이 궁금하다. 또 역사적으로 왕실이나 일부 부족에서 친척 간에 혼인하는 경우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최창모 건국대문화콘텐츠학과교수
최창모 건국대문화콘텐츠학과교수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사모아 섬에서 현지조사를 하던 중 근친결혼 금지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가 추장에게 “당신은 왜 근친결혼을 금하는가?”라고 묻자 추장이 이렇게 반문했던 것이다. “내 아들이 내 딸과 결혼한다면 그것이 내게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결혼이 생물학적 자연발생 현상이 아니라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거래이자 교환법칙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서 근친결혼 금지가 생물학적 유전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종족 간의 결혼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결혼풍습은 문화권마다 다양하고 가족제도는 시대마다 조금씩 변해왔으나 인류는 공통적으로 오랫동안 근친결혼을 금기시해왔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어디서나 친족의 기본구조는 동일하며, 근친결혼 금기 또한 인간의 다양한 사회·문화형태 속에서 보편적 자연적으로 나타난다.

인류학에서 전통적으로 근친결혼 금기의 기원을 밝히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레비스트로스 이후에는 근친결혼의 구조와 기능 연구를 보다 중요한 주제로 삼아왔다. 19세기 말 미국의 민속학자 루이스 모건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근친상간 혹은 동종교배가 야기하는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을 방지하기 위한 기제로 근친결혼이 금기시되었다고 보았다. (식물도 같은 계통 간의 수분에 의해 결실을 맺지 못하는 자가불화합성(self-incompatibility) 현상을 갖는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금지와 그것을 범하려는 충동의 모순된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근친 간의 성적 욕망에 의해 발생하기 쉬운 부조화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동일한 토템을 가진 친족 내에서는 어떠한 성적 결합도 터부시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았다. 금기란 성(性)이나 음식처럼 욕망이 넘쳐흐르는 곳에서 발생한다. 법률이 형성되기 이전의 사회에서 금기는 욕망을 적절히 제어해 사회 질서 교란을 막는 기능을 했던 것이다.

금기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근친끼리 결혼한 사례가 종종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근친의 범위에 대해서는 문화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와 잉카 문명, 신라의 왕실이나 귀족 간의 결혼에서 근친결혼이 있었다. 히브리 성서에도 근친 간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법령과 더불어 남매 사이, 딸과 아버지, 아들과 어머니 사이의 근친성교 사례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오늘날 이슬람 사회에서는 사촌 간의 결혼이 허용된다. 물론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폐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근친결혼과 그로 인한 폐해는 특히 단일 공동체로서의 구조적 순수성, 즉 순혈주의나 선민의식, 엄격한 계급이나 골품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회에서 생긴 것이다. ‘근친결혼은 안 된다’는 질서와 ‘반드시 순수혈통을 지켜야 한다’는 신앙 사이에서 발생한 문화적 충돌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聖)과 속(俗), 깨끗함과 더러움, 여자와 남자 등 사회의 경계선상에서 발생하는 금기는 잡종과 하이브리드, 융합과 복합, 통섭과 통합을 새로운 트렌드로 삼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볼 때 낡은 것 혹은 모순적인 것으로 보인다.

최창모 건국대문화콘텐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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