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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내 인생을 바꾼 순간]백지연의 ‘9시 뉴스 데뷔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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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내 인생을 바꾼 순간]백지연의 ‘9시 뉴스 데뷔하던 날’

동아일보입력 2011-07-16 03:00수정 2011-07-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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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불이 들어온 순간 나의 떨림은 사라졌다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그에게 지난 24년은 집과 일이 전부였다.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책임감이 그를 성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너 뭐냐.”
보도국 앞 복도에 나와 있던 두 선배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흐뭇한 표정의 편집부장이 물었다.
“안 떨려?”
쿵쾅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스튜디오를 빠져나온 24세 백지연이 대답했다.
“너무 떨었어요.”
편집차장이 말했다.
“하나도 안 떨려 보이더라. 기대 이상이다.”
밤 9시 메인 뉴스의 여성 앵커로 첫 방송을 마친 지연이었다. MBC에 입사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1988년 5월 9일, 시간은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잘할 거야. 너는 정말 앵커로 태어났나보다.”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두 사람이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지연은 뉴스에 올인(다걸기)했다. 》
○ 살아남든지 죽든지

“네가 9시 뉴스 앵커다. 준비해.” 백지연(47)이 공식 통보를 받은 건 첫 방송 사흘 전, 5월 6일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제대로 된 정장 한 벌 없고, 화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와주는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즐겁고 기쁘다기보다 벌판에 홀로 선 느낌이었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빨리 (기회가) 오기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요’ 하는 마음이었어요. 저한테 너무나도 무거운 바위가 떨어졌는데 이걸 나와 함께 들어줄 사람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죠.”

MBC 안에서도 그를 메인 뉴스 여성 앵커로 기용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거셌다. 그때까지 남성 앵커가 홀로 진행하던 9시 뉴스에 여성 앵커를 두기로 하고 발탁한 첫 사례가 수습딱지도 채 떼지 않은 아나운서라니…. “말도 안 된다”, “벌벌 떨다가 방송 다 망치고 말 것”이라는 등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사내 오디션을 거쳐 보도국 간부들이 투표로 결정한 일이었다. 파격이고 모험이었다.

유학을 꿈꾸던 심리학 전공의 졸업반 학생이 방송사 아나운서 시험을 보기로 한 건 다분히 AFKN(현 AFN·주한미군방송) 때문이었다. 토플(TOFEL) 점수를 높이기 위해 영어공부 삼아 틀어놓은 AFKN에서 여성 앵커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버라 월터스, 제인 폴리, 카니 정을 보며 ‘내가 40대에 저런 앵커가 될 수 있다면 멋지겠다’ 하는 생각을 잠깐잠깐 했다. 공부도 지겨워지려 하던 차에 방송국 공채 광고가 나왔고 그는 지원했다. KBS도 함께였다.

운 좋게도 두 방송사에 모두 붙었다. 나도 모르는 재능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경 씨가 9시 뉴스 앵커로 자리를 잡았던 KBS 대신 MBC를 택했다. 여성 앵커가 MBC에 없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스물넷, 솜털 보송보송한 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여성 앵커를 뽑는 사내 오디션이 열렸다. 수습 아나운서에게는 연습 삼아 참가할 기회를 줬을 뿐이었다.

“저는 방송사에 들어올 때 오직 목표가 9시 뉴스 앵커였어요. 다른 프로그램 아나운서나 MC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물론 앵커가 언제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고, 또 될 가능성은 현재 상황 제로(0)였지만 혼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 성악도를 꿈꾸며 강습을 받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성대가 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목소리 관리를 위해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밖에 나가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면 말을 해야 하니까. 선배 앵커, 아나운서의 뉴스 방송을 녹음해서 반복해 들으며 기사 읽는 훈련을 수습 5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방송 뉴스는 물론이고 신문도 1단짜리 기사까지 샅샅이 훑었다. 집과 회사만 오가며 뉴스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디션 1등이었다.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놀랐다. 경악했다. “이게 말이 돼” 하는 사내 여론 때문에 오디션을 재차 실시했지만 역시 1등이었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앵커 데뷔를 앞두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저는 두렵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저를 높은 나무에 올려놓았습니다. 이제 저 혼자 살아남아야 합니다. 저를 믿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밤 9시 시보가 울렸다. 긴장은 했지만 소리에 떨림은 배어나지 않았다. 문장 한 줄, 단어 하나 발음할 때 틀린 것은 없었다.

선망하는 자리를 ‘생초보’ 수습이 꿰차고 앉았으니 질투와 시기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앵커”라고 통보한 고위 인사는 그에게 말했다. “방송계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나는 너같이 경험 없는 애를 쓰는 걸 반대했다. 하지만 만장일치라니 한번 해봐라. 내가 장담하건대 6개월을 버티지 못할 거다. 그걸 버틴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마.”

하지만 백 씨는 1996년 8월까지, 파업 참여와 영국연수 기간을 제외한 약 7년 동안 어김없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시청자와 만났다. 다행히(?) 그 인사가 실제로 손에 장을 지지지는 않았다.

○ 유독 낯가림이 심했던 그녀가…

네 자매 중 막내였던 그는 아주 어렸을 적 한 장면을 기억한다. 서너 살쯤 됐을까. 어머니의 긴 주름치마 한쪽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다. “아유, 귀여워라. 얘가 막내예요?” 하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꼬마는 어머니 치마를 머리 위로 훌쩍 치켜들어 덮어써버렸다.

“제가 모르는 사람이 저를 쳐다보는 게 싫었어요. 지금도 싫어요.”

뭇 사람의 시선을 받는 일을 24년째 천직 삼아 하는 그의 믿기지 않는 말이다. 전반기가 앵커였다면 후반기는 인터뷰 전문 방송인으로서, 그의 삶은 유명세와 사람들의 눈을 늘 달고 다녔다. 그 시선을 평생 참으며 살았고 이제는 한편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눈에 띄는 아이였다. 지금 174cm인 키는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168cm까지 자랐다. 그가 다닌 여중에서 가장 큰 학생이었다. 금세 교내에서 유명해졌다. 글 잘 쓰고 노래 잘하는 학생은 여고에 들어가서 공부도 잘해버렸다. 등하굣길에 버스를 타면 훤칠한 그를 인근 학교 남학생들이 쳐다보느라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결국 오전 6시에 일어나 텅 빈 버스를 타고 갔다가, 학교에서 수업 끝나고 숙제를 모두 마친 뒤 버스가 붐비지 않을 때가 돼야 집에 돌아왔다.  
▼ “연세대 다니던 시절 그 놈의 ‘브룩실즈’ 별명 때문에… ^^ ” ▼

연세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그놈의 브룩 실즈 때문에 고난의 연속이었죠”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와 그를 ‘아기’라고 부르던 세 언니의 단단한 보호를 받으며 여중고를 다녔던 어린 신입생에게 대학은 또 다른 세계였다.

그가 정문을 지나 인문대까지 뻗은 백양로를 걸어가면 여기저기서 “백지연이다”, “브룩 실즈다” 하며 수군댔다. 그의 이름을 외치는 남학생도 있었다. 어떤 남학생들은 “야, 가서 백지연 좀 데려와 봐”라며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분노가 일었고 ‘내가 왜 이런 불편함을 당해야 하나’ 하는 원망마저 생겼다. 그가 가는 곳마다 버티고 서있는 남학생도 있었다. 전공수업 시간에는 교수들이 “심리학과 아닌 학생들은 어서 강의실에서 나가”라고 해야 했다. 경기가 날 정도였다.

‘그래 너 공주 맞아. 잘났어, 정말’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이런 일들을 숱하게, 그러나 아프게 겪은 그는 20년 가까이 ‘여대생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여성 앵커 1, 2위를 다투고 있다. 모르는 사람의 시선을 견뎌내기 힘들어하는 그의 성격을 상쇄하듯 카메라 울렁증이나 무대공포증이 없는 것은 행운이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어디 하나 빈틈이 없다. 목소리는 낮게 깔리고 단호하며 절도가 있다. 1996년 8월 어느 날, 햇수로 8년 넘게 진행해온 9시 뉴스 앵커를 마칠 때도 “그동안 성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른 곳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눈시울 하나 붉어지지 않았다. “눈물은 제 것이지만 전파는 제 것이 아니죠.” 똑 부러진다. 그러나 카메라가 멈추고 조명이 꺼진 뒤 그는 펑펑 울었다. 하나의 벽이 무너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20대를 몽땅 바친 뉴스는 그렇게 끝났다.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저는 굉장히 성실해요. 너무 성실해요.”

이렇게 말하는 백지연은 얄밉다. 그 큰 키에 허리와 어깨가 조금도 구부정하지 않은 당당함과 외모, 그리고 경력만으로도 시샘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자기는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고 말하는 데 주저함조차 없다. 자신감이 너무 충만한 것 아닌가.

“저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존, 자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나를 소중히 하면 나 자신을 내쳐둘 수가 없지요. 내가 소중한 줄 알면 다른 사람도 소중하기 때문에 남에게 함부로 못하잖아요.”

뉴스 앵커와 거기에서 파생된 인터뷰 전문 방송인으로 성과를 거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맞아떨어져 그걸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지만 잘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면 미련 없이 접었다. 해도 잘 안 되는 일에 매달리지 않았다. 기독교 성경 고린도후서 12장 10절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처럼 자기 능력 밖의 것을 욕심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그가 성공가도만을 달린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주목하는 자리에 올라갔는데 실수를 하거나 잘 못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들 모두에게 그 인상이 각인되는 거죠.” 백지연이 갑자기 외로워 보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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