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명화, 생각의 캔버스]르네상스 ‘눈’을 얻다

  • 입력 2008년 6월 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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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근법으로 마침내 ‘신성한 비례’를 찾아내고

화가는 캔버스에 현실의 공간을 창조하다

만토바는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입니다. 만토바에는 중세시대의 성채처럼 우람하게 생긴 공작의 궁전이 있어요.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혼인의 방’이 나오지요. 원래는 ‘그림이 있는 방’이라는 뜻으로 ‘카메라 픽타’라고 불리다가, 17세기부터 이곳에서 결혼예식을 자주 치르면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해요.

혼인의 방에 들어서면 머리꼭지가 근질거리는 것 같아요. 누가 우리를 몰래 훔쳐보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지요. 누굴까 싶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올려보는 순간 우리는 눈을 의심하게 된답니다. 천장은 간 데 없이 파란 하늘이 뻥 뚫려 있고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가니 말이지요.

동그랗게 지은 우물의 가장자리에 기대서서 웬 사람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네요. 난간에 앉은 공작새 한 마리가 맞은편에 올려둔 오렌지 나무를 바라보는가 하면, 오렌지 화분 옆에서는 젊은 처녀 셋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는군요. 화려하게 성장(盛裝)을 한 귀부인과 눈동자가 까만 흑인 하녀는 무슨 말을 주고받는 걸까요? 우물가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꼬마들이 자칫 발이 미끄러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네요. 그러나 그런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네요. 궁전의 지붕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혼인의 방에 들어가서 발을 바닥에 딛고 위를 올려다보면 마치 눈길이 닿지 않는 무한대의 공간이 연장되는 것 같아요. 반듯하게 벽돌을 쌓아올린 우물도 그렇지만,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도 아주 그럴듯합니다. 나이와 성별은 다르지만 사람마다 머리, 상체, 하체, 사지의 크기 비례가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재현되어서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서 있는 게 아닐까 혼동하게 되지요. 다시 말해 붓의 기적이 현실과 환영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수학과 기하학의 우물에서 또 하나의 자연을 창조한 것이지요.

만토바의 공작 궁전에 이런 놀라운 그림을 그린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입니다. 우리를 모두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다니, 만테냐는 무척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화가였던 것 같아요. 만테냐가 만토바의 공작 궁전에서 천장화 작업을 시작한 것은 1465년의 일이었어요. 그 후 10년 동안이나 매달린 끝에 천장화를 완성했다고 해요. 조금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축구 경기장만큼 널찍한 시스티나 천장화를 4년 동안에 완성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그림은 크기에 비해서 작업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 셈이네요. 아마도 작품을 주문한 루도비코 곤차가의 공작은 기다리다 지쳐서 목이 기린처럼 길어졌을 것 같아요.

만테냐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나 완성되어서 공개된 그의 작품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어요. 완벽한 원근법의 기법으로 그려져서 마치 실제 공간이 트여 있는 장면을 방불케 했으니까요. 그래요. 바로 이 원근법이란 물건이 만테냐를 10년 동안이나 괴롭혔던 골칫덩이였어요.

원근법은 르네상스의 발명품입니다. 원근법은 활판 인쇄술과 함께 지난 밀레니엄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기도 한 중요한 업적이지요. 원근법은 라틴어로 ‘투시’라는 뜻이라고 해요. 투명한 창문을 통해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것처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인가 봅니다.

원근법이 발명되면서 그림이 갑자기 투명해졌어요. 근사한 원근법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은 그림이 아니라 창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어요. 마치 혼인의 방에서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 것처럼 말이지요. 그림이 투명해지면서 화가들은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그림이라는 창문 저쪽에 세상 풍경이 펼쳐진다면, 창문 이쪽에는 화가가 서 있지요.

화가는 이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화가란 모름지기 자신의 시점을 소유한 시각주체라는 인식이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바탕이 됩니다. ‘인간이 만유의 중심’이라고 말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르네상스의 원근법을 알았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이제 그림은 단순히 아름다운 형태와 색을 가진 작품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의 만남을 주선하는 투명한 소통수단으로 변모합니다. 모두 원근법 덕분이지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에 화가들이 발명한 회화기법이 자아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 근대적 사유의 출발점을 제공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혼인의 방에 우물 그림을 그린 만테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친구였어요. 함께 공부하고 여행을 하고 또 미술에 대한 식견을 나누었던 둘도 없는 사이였다고 해요. 또 ‘신성한 비례’를 출간해서 당대 최고의 수학자로 명성을 떨친 루카 파촐리와도 교분이 있었지요. 화가가 전혀 분야가 다른 수학자와 사귀다니 조금 이상하게 들리네요.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화가들은 원근법을 익히기 위해서 수학과 기하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해요. 그뿐이 아니었어요. 시인들과 논쟁하고, 연금술과 씨름하고, 인문학자들과 더불어 고대의 문헌들을 발굴해서 읽고 토론하기도 했어요.

고대의 문화와 예술은 오랜 중세 시대의 관습에 젖어있던 학자와 예술가들에게 그야말로 감탄과 경이의 대상이었어요. 이탈리아의 계관시인이자 인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만약 내가 시간을 거슬러 고대에 태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하면서 탄식했다고 하니, 고대를 향한 르네상스의 짝사랑이 얼마나 사무쳤는지 말 다했지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한 분야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닥치는 대로 섭렵했어요. 배움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욕구가 원근법을 만들어냈으니, 원근법은 오직 인간의 땀과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르네상스 원근법은 하나의 회화 기법에 불과하지만, 신의 고마운 은총에 더해 이제는 인간도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은 근대적 인간의 든든한 정신적 뒷심이 되었답니다.

【?】

‘혼인의 방’의 천장화(그림 1)를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마치 스스로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이 천장화 속에 숨어 있는 ‘원근법’이라는 비밀 때문이지요. 원근법은 단순한 그림 기술이 아니라, 인간 자아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준 근대적 사유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까요?

노성두 서양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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