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59>열(熱)과 숙(熟)

  • 입력 2004년 6월 1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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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과 熟은 지금은 비슷한 자형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전혀 다른 자원을 가진다.

熱은 갑골문에서 손에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횃불의 받침대와 타 오르는 불꽃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금문에 들면서 횃불이 나무처럼 변함으로써 c(심을 예)와 혼용하게 되었고, ‘설문해자’에서는 금문의 자형을 계승하고 다시 火(불 화)를 더하여 지금처럼의 熱로 변했다.

그래서 熱은 ‘불을 태우다’가 원래 뜻이며, 이후 加熱(가열)이나 熱情(열정) 등의 뜻이 생겼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갑자기 유행하거나 인기 있는 것을 ‘러(熱)’라고 하기도 하는데, 우리말에서의 ‘붐(boom)'이나 熱風(열풍)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熟은 갑골문에서는 火가 더해지지 않은 孰으로 되었다. 孰의 왼쪽(享)은 커다란 기단 위에 지어진 높은 집 모양으로 宗廟(종묘)를 상징하고, 오른쪽은 두 손을 받쳐 들고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 종묘에 祭物(제물)을 올리는 모습을 그렸다. 익힌 고기를 祭物로 사용했던 때문이지 孰은 처음에 ‘삶은 고기’라는 뜻으로 쓰였다.

금문에 들면서 孰의 자형이 조금 복잡해지는데, 祭物의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羊(양 양)을 더하는가 하면, 동작을 강조하기 위해 발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러다가 隸書(예서)에 들어 지금처럼의 孰으로 고정되었다.

이후 孰이 ‘누구’나 ‘무엇’이라는 의문대명사로 가차되어 쓰이자, 원래 뜻을 표현할 때에는 火를 더하여 熟으로 분화했다. 그리하여 熟은 ‘익(히)다’는 뜻을 전담하여 표현했고, 다시 成熟(성숙)이나 熟練(숙련) 등의 뜻은 물론 사람 간의 익숙함도 뜻하게 되었다.

참고로, 享과 亨은 같은 자원에서 출발한 글자로 그림에서처럼 宗廟의 모습을 그려 모두 ‘祭物로 드리는 삶은 고기’가 원래 뜻이었다. 하지만 이후 둘로 분화하여, 享은 제사를 받는 입장에서 ‘누리다’는 뜻을, 亨은 제사를 드리는 입장에서 제사를 잘 모시면 만사가 亨通(형통)한다고 해서 亨通의 의미로 쓰였다. 그러자 ‘삶다’는 뜻을 나타낼 때에는 다시 火를 더하여 烹이 되었다. 烹은 兎死狗烹(토사구팽)이라는 고사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글자이기도 하다.

하 영 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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