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동아마라톤 완주 이완배기자의 ‘내가 뛰는 이유’

  • 입력 2003년 3월 20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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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동아마라톤에서 참가한 이완배기자.강병기기자arche@donga.com
16일 동아마라톤에서 참가한 이완배기자.
강병기기자arche@donga.com
한국에서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100만명, 42.195㎞ 마라톤 풀 코스 완주자만도 2만명을 넘어섰다. 마라톤은 이제 더 이상 ‘철인’의 상징이 아니다. 100㎞ 이상을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기자도 16일 있었던 동아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3시간49분26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풀 코스 완주였다. 아직 까마득한 초보 수준이지만 실제 직접 해 보니 운동을 하기 전 생각했던 마라톤과 실제 마라톤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 마라톤에 대한 몇 가지 오해

‘마라톤은 돈이 적게 드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신발 한 켤레에 10만원이 넘는다. 그것도 보통 6개월마다 바꿔야 한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되는 기자도 벌써 다섯 켤레의 신발을 샀다.

운동복도 따로 장만해야 한다. 땀을 잘 배출하는 특수 섬유 운동복이 많이 쓰인다. 기능도 기능이지만 운동복은 마라토너의 ‘체면’과도 상당한 관계가 있다. 마라토너들은 의외로 체면을 중시한다. 한강이나 남산처럼 달리기 고수(高手)들이 많은 장소에서는 아무래도 남의 눈이 신경이 쓰이기 마련. 그럴싸한 운동복을 입고 뛰어야 남 보기에도 당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매도 없고 바지 길이도 짧은 여름 운동복이 위아래 합치면 얼추 7만원. 겨울용 옷은 위아래 합치면 2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재킷 등을 갖추려면 또 수십만원이 더 들어간다. 기록측정용의 마라톤 시계만도 10만원이 넘는다. 절대 돈이 적게 드는 운동이 아니다.

달리기를 오래 하다보면 어느 순간 물밀 듯이 쾌감, 즉 ‘러닝 하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마라톤을 하는 모든 사람이 러닝 하이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기자는 아직 그런 쾌감을 못 느껴봤다. 기자 주위에 3시간대 초반 기록으로 풀 코스를 완주한 이들도 있는데 그들도 아직 러닝 하이는 못 느꼈다고 한다.

마라톤을 하면 건강이 좋아진다는 것도 반드시 옳은 말은 아니다. 달리기를 하면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 시합을 하는 게 건강에 좋은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기자는 16일 마라톤 이후 두 다리에 모두 심한 부상을 입었고 체력도 소진해 며칠 동안 고생을 했다. 마라톤 때 너무 심하게 체력을 써서 시합 이후 병을 앓는 사람도 적지 않게 봤다. 건강만을 위해서라면 마라톤처럼 기록을 향해 달리는 시합보다는 꾸준히, 천천히 달리는 ‘펀 런’(fun run·즐기면서 하는 가벼운 달리기)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 3시간 59분과 4시간, 그 천지 차이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기록을 살펴보면 의외로 9분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온다. 3시간59분이나 2시간59분이 특히 많다.

마라토너들은 자기 기록의 앞자리 숫자를 하나 줄이기 위해 막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경향이 있다. 29분이나 30분이나 보는 사람은 똑같은 것 같지만 당사자가 갖는 기분은 완전히 다르다. 기자도 이번 마라톤을 3시간 49분에 완주했는데 몸의 기력이 완전히 소진한 40㎞지점에서도 ‘오직 3시간40분대에 들어오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력 질주했다.

따라서 3시간59분에 뛴 사람에게 “기록이 네 시간이군요”라고 함부로 말하면 절대 안 된다. “세 시간대에 들어오셨군요”라고 말해줘야 한다. 기록이 세 시간대냐 네 시간대냐는 천지 차이다. 16일 한 동료가 기자에게 “그래, 3시간50분이면 정말 잘 뛴 거야”(3시간49분인데)라는 말을 칭찬이랍시고 늘어놓아 기자도 마음을 상한 경험이 있다.

마라토너들은 자신이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따라서 마라토너에게 그 자긍심을 북돋워주는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달리기가 좋으면 그냥 혼자서 42.195㎞ 뛰면 되지 왜 굳이 돈 내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물론 혼자서 고독하게 먼 거리를 뛰는 일도 많다.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돈 내고 대회에 참가해 공식 기록도 인정받고 완주 메달도 받아야 한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남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자긍심을 북돋는 것도 무시 못할 마라톤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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