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의뢰인'

  • 입력 2000년 6월 7일 14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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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ient 의뢰인 (1994)' 감독 (Joel Shoemacher) 출연: Susan Saradon, Tomy Lee Jones ▼

존 그리셤은 윌리엄 포크너(1897-1962)에 이어 옥스퍼드가 배출한 또 하나의 세계적인 문인이다. 2 세기 전 미국인은 미시시피 주, 평원에 작은 마을을 건설하면서 이 소읍의 이름을 두고 고심했다. 언젠가 이 마을에 대학이 들어서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 대학의 상징어인 옥스퍼드라고 명명했다. 염원대로 후일 이 평원에 대학이 들어섰다. 대학의 원조도시인 영국 옥스퍼드와의 연관이라고는 중심거리인 법원 로타리의 시립 관광 안내소 앞에 세워진 영국식 빨간 우체통 하나 뿐이다.

미시시피 옥스퍼드에는 도시 규모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대형서점이 두 개 있다. 대학도시임을 웅변하는 증거이다. 그중 하나에는 런던 캠든타운(Camden Town)의 전위문화를 연상시키는 비주류 전문 서점이다. 이름하여 “Odd Books”. 영국식 유머는 이 서점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까. “공식언어 미국어. 영국어도 이해 가능 (American Spoken. English Understood)”이라고 내건 도치된 조크가 브리티쉬 옥스퍼드와 미시시피 옥스퍼드와의 연결을 강조한다. 미국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이 자랑스럽게 내세운 ‘미국영어’(American English)를 굳이 ‘미국어’(American)로 비하하는 영국인들의 뒤틀린 오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열등감일지도 모른다. 이를 뒤집은 미시시피 옥스퍼드인의 조크 또한 역사와 문화가 일천한 신흥 대국인의 열등감의 발로이리다.

‘오울 미시’는 미시시피 주에서 가장 오래된 주립대학이다. 대학을 세운 자랑스런 미시시피 옥스퍼드 인들은 영국의 옥스퍼드가 그러했듯 세계적으로 걸출한 인물의 탄생을 고대했고 20세기 중반에 그 꿈을 처음으로 이루었다. 윌리엄 포크너라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한 것이다. “인간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라는 수상 연설 구절대로 포크너는 승리한 옥스퍼드인이었다. 포크너의 무덤과 사저, 로완 오크(Rowan Oak)에서 맥도날드 식당에 이르기까지 옥스퍼드는 시 전체가 온통 포크너의 기념관이다. 망자의 기념관에는 그의 신화에 버금가는 산 자의 일화가 함께 춤춘다. 오울 미시 법대 졸업생, 대중법률소설가 존 그리셤의 학생시절의 삽화들이다.

포크너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의 절대적 고뇌를 문학의 소재로 추구했다면, 그리셤은 세상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인간세상의 원리를 법의 이름으로 고발하고 대안을 내걸었다. 스티브 개빈으로 대표되는 포크너의 변호사들이 산업혁명의 초입에서 그래도 순진했던 사람들의 갈등으로 자신의 밥그릇으로 채웠다면, 그리셤의 법률가들은 난숙을 넘어 사양길에 접어든 자본주의의 여러 가지 치부를 다스린다.

콤슨, 벤포. 사리토리스 등 포크너의 주인공들이 올 미시의 건설자, 구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백인남자들이었다면, 그리셤의 영웅들은 포크너 시대의 종속인간들이었던 여성과 흑인 그리고 아동이다. 그리셤의 작품 〈의뢰인〉(The Client)은 이들 새로운 미국인들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영화이다.

11살 소년 마크 스웨이는 8살 짜리 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부양을 받으며 테네시주 멤피스시 변두리의 트레일러 파크, 이동가옥에서 사는 빈민소년이다. 교육환경이 나쁜 빈민 소년의 전형적인 경우대로 일찌감치 검은 어른의 세계에 발을 딛는다. 능숙하게 담배를 피는 11살 소년은 어른의 세계는 악의 세계임을 알고도 한발 짝이라도 빨리 그 악의 세계로 돌입하고 싶은 호기심을 일찌감치 충족시킨 “아이 어른”이다. 마크는 담배를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는 일곱 살 짜리 동생 리키를 데리고 집 근처 산으로 들어갔다가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 중년 변호사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구하려 나선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뉴올리언스의 변호사 토미 크로포드는 마피아단원을 단골 고객으로 삼은 형사전문 변호사이다. 최근에 루이지애나 주의 연방상원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한다. 분명히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고 혐의자로 지목된 사람도 있으나 시체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크로포드는 자신이 변호하게 된 배리 몰다노가 진범임을 알게 되었고 시체가 매장된 곳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마피아 조직의 보복이 두려워 침묵의 고민을 거듭하다 마침내 양심의 가책을 견디다 못해 자살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음주와 가스 흡입으로 반 환각상태에서 크로포드는 마크에게 자신이 아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마크도 비밀을 알게된 이상 악당들이 살려주지 않을 것이니 자신과 함께 죽어야 한다며 동반자살을 강요한다. 악몽의 시련 끝에 마크는 탈출하나 크로포드는 권총을 자신의 입에 넣어 쏜다. 이 장면을 목격한 동생 리키는 충격 때문에 실어증에 걸린다. 일약 뉴스의 초점인물이 된 마크는 정치권력과 암흑가 사이에 벌어진 위험한 게임의 희생양이 된다. 소년이 자살한 변호사로부터 안 사실이 무엇인지를 캐내면 범죄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에 연방검사 폴트리그로서는 절대적인 이해가 걸린 일이다. 마피아는 영원히 마크의 입을 막음으로써 범죄의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 마크는 입을 열면 어머니와 동생을 죽이겠다는 마피아의 위협을 받는다. 트레일러 집이 불에 타는 일이 발생하면서 테러의 위험이 경각에 다가온다. 절박한 심정으로 변호사를 찾던 마크는 엉겁결에 들리게 된 레지 러브의 사무실에서 1달러를 지불하고 변호인 선임계약을 맺는다. 둘 사이에 구축되어가던 신뢰관계가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였던 레지의 과거가 밝혀지자 흔들린다. 그러나 몇 차례의 반전 끝에 두 사람의 신뢰는 회복된다. 혼자서라도 시체를 찾겠다는 마크의 위험한 여정에 논란 끝에 레지가 동참한다. 시체의 소재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에 협상에 나선다. 레지는 연방의 증인보호프로그램에 의한 마크 가족의 안전과 생활을 보장하는 조치를 확약 받고 나서 정보를 넘긴다. 악몽의 시련 끝에 마크는 정부의 보호 아래 레지와 작별하고 가족과 함께 떠난다.

이 영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던 법제도 속에서 여성과 아동의 연합전선이 승리하고, 흑인이 그 승리의 기회와 절차를 보장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통적 미국사회에서의 전형적인 약자, 이른바 백인남성이 아닌 “불완전 인간”(less than a man) 들의 승리를 상징한다.

열 한 살 소년 마크는 변호사 수가 1달러를 지급하고 당당한 사건의뢰인이 된다. 아동과 여자 사이에 법적으로 성립된 특별한 신뢰관계는 두 사람의 인간적 신뢰로 발전한다. 두 사람 모두 결손가정 출신이다. 음주와 폭력을 일삼은 독재자 아버지의 지배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초라한 이동가옥 속에 살고 있는 마크와 이혼녀로서 비행소년 아들을 감옥에 두고 있는 레지는 전통적인 가족적 가치관이 무너진 미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둘 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한 여건 속에서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신의 책임 아래 살아야 한다. 마크는 열 한 살 소년이다. 친절한 간호원에게 스쳐가는 춘정을 느끼는 사춘기의 소년이지만 지능면에서 어느 성인에도 뒤지지 않는다. 자살의 현장이나 감호소와 병원으로부터 탈출하는 기지와 용기, 스스로 지신의 변호사를 선임하는 성숙함, 이 모든 것이 외국의 독자에게는 현실적 설득력이 모자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마크는 헉클베리 핀 이래 미국 문학이 추구하는 소년가장의 전형이다. 독립된 판단력과 행동력, 그것은 미국 남성의 미덕 중의 최고의 미덕이자. 이성적인 판단과 독자적인 행동력, 그것은 어깨가 넓은 사내가 아니더라도 미국사회에서 남자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미덕이다. 미국의 영웅은 모두 집을 떠남으로써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자수성가이다.(self-made man) 직접 그 여행길에 나서기 전에라도 여행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소년의 미덕이다. 18세 성인이 되면 부모의 보호막과 그늘을 벗어나서 독립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미국인의 상식이다. 마크는 담배를 피는 불량소년이다. 절대선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메시지보다는 위험한 환경 속에 처해진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악의 늪인 어른의 현실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서 이러한 일탈도 별다른 긴장과 부담 없이 수용된다.

소년가장 마크는 무엇보다도 법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L.A. Law〉를 애청하며 묵비권을 담은 ‘헌법수정 제5조’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그에게는 법정에서는 ‘이따금씩’ 법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신념이 있다. 그는 주정과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야구방망이 세례를 주저하지 않았고, 법정에서 아버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법의 보호 아래 어머니와 어린 동생의 안전을 보호받는다. 문명세계와 아버지의 압제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뗏목을 타고 위험한 항해에 나섰던 헉클베리 핀과 마찬가지로 반면에 마크는 법의 품속으로 피신한 것이다. 헉클베리 핀이 문명으로부터 원시의 세계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더 이상 ‘변경’(Frontier)도 낙원의 원시림도 잔존하지 않는 미국 땅에서 어떻게 낙원을 건설할 것인가? 이제 낙원은 사람들 속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헉클베리와 마크를 가른 한 세기 반 동안 미국의 변화는 광야의 정의가 법의 정의로 바뀐 것이다.

레지 러브는 어두운 과거를 가진 중년여성이다. 금년 52세인데도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혼과 정실진환, 마약복용의 경력이 있다. 이 어두운 과거는 남자에게 종속된 삶에서 발생한 것이다. 세속적으로 성공한 의사 남편은 젊은 피부를 탐닉하여 아내를 버렸다. 유기의 과정도 잔인하다. 이혼판결과 위자료 분쟁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아내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비열한 인간이다. 이러한 감금으로 레지는 실제로 정신병과 마약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를 극복하고 자신의 독립된 삶의 길을 내딛는다. 종속된 삶으로부터의 해방과 재탄생의 기념의식으로 이름도 바꾼다. 1980년대의 영웅의 하나인 흑인야구선수(레지 잭슨)의 이름을 따서 레지(Regie)라고 부른다. 남자의 세계인 법의 세계로 입성하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레지를 위기에서 구출하여 재활의 길로 인도한 사람은 어머니이다. 위대한 어머니로부터 위대한 딸이 계승되는 것이다. 홀어머니의 끈질긴 모정이 자신을 위기에서 구출했듯이 레지 자신도 범죄로 복역중인 아들의 부활을 포기하지 않는다. 레지는 모든 사람이 평등함을 믿고 그렇게 행동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직위나 경칭 대신 사람의 ‘이름’(first name)으로 부르고 불릴 것을 주장하고 고집하는 그는 만민평등주의의 화신이다.

종속적인 지위로부터의 여성이 탈출하는 것을 상징하는 또 다른 인물 설정은 레지의 비서를 남자로 삼은 것이다. 레지의 법률사무소의 비서는 섬세한 남자이다. 그는 레지의 법과대학 시절 동급생이다. 남자가 동급생 여자의 비서가 되는, ‘비상식적인’ 관계설정은 마크와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레지가 자신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나 법적 식견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조수가 되기를 자청한 것이다. 법은 신분과 성의 영역이 아니라 어른과 경험의 세계라는 것을 알리는 중요한 단서이다. 이러한 설명에 “변호사를 찾았는데 여자가 걸렸다”고 자탄하는 어린 사내 마크의 편견의 성이 무너진다. 여자에 대한 마크의 편견은 “사람이 죽었느냐”는 물음에 “검둥이가 하나 죽었다”고 답하는 허클베리핀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미시시피 주 멤피스 시의 소년법원판사 해리 루즈벨트는 작은 사법 영웅이다. 그는 흑인과 아동, 소수자의 후견인으로 비록 판사가 되었지만 언제나 자신은 자랄 때처럼 가난한 흑인소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같은 복장이다. 언제 어디서나 같은 디자인의 검은 색 양복에 하얀 셔츠를 받쳐입기에 아무도 그가 단벌인지 50벌인지 알 수 없다. 위기에 처한 아이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금명령을 발부하는가 멀리 뉴올리언스의 연방 대배심에 소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법정에서 심리를 강행한다. 언제나 도시에서 가장 새 것인 연방건물 안에는 우아하고 장엄한 법정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오두막에 불과한 자신의 법정이지만 그 곳에는 엄청난 권위의 광휘가 이글거린다. 그는 약한 자에게는 자애로운 아버지이나 강자와 권력 앞에는 더없이 당당한 판관이다. 그는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게 연방검사에게 소환장을 발부한다. “내 법정에서는 시킬 때만 말을 하라” “일어서지 말라. 법률가의 말을 듣기 싫다.” 등등 해리 루즈벨트 법정의 ‘4대수칙’은 막강한 연방의 권력 앞에 약자의 정의를 지키는 권리장전인 것이다.

중앙정부에 대한 비판과 냉소를 담는 것은 미국영화의 정석에 속한다. 미국은 문자 그대로 진정한 의미에서 연방국가이다. 중앙정부는 주와 국민이 위임한 제한된 권력만을 보유하고 위임되지 않은 일체의 권력은 주와 인민에 유보되어 있다고 헌법은 명시하고 있다.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국호도 이러한 권력배분의 대원칙을 대변한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의 이름은 단수형을 취한다. France, Korea, Italy. United Kingdom.등등. 연방국가를 표방하는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해체된 구 소비에트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Countries)도, 새로 탄생한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도 단수의 주어를 취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복수형(States)의 주어를 취한다.

이렇듯 헌법적으로 연방정부는 주의 ‘나머지 권력’의 집적체에 불과하다. 한 때 연방에서 탈퇴하여 연방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남부의 주들에서는 연방정부는 곧바로 악이라는 관념이 팽배해 있다. 아직도 남부의 동네 선술집에서 애창되는 노래가 연방에 대한 해묵은 불신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나는 야 자랑스런 늙은 반역자”( I'm a Good Old Rebel)

그게 바로 내 모습이라네, 이 자유의 대지를 위해서라면,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양키네 나라놈 하는 짓거리 하나도 마음에 안 들어, 독립선언서 좋아하시네 “

연방의 권위에 대한 풍자와 냉소는 살인사건의 성격에서부터 드러난다. 미합중국 상원의원이 살해되었으나 시체를 찾지 못하는 것은 FBI로서는 치욕이다. (영화에서는 생략된) 국장 재직기간 42년만에 최초의 사건이다. 연방 상원의원의 죽음의 행태 또한 치욕적인 것이다. 그는 수행원도 없이 혼자 사창에 가서 은밀한 성을 사고 나오다 살해당한다. 중앙권력과 연방의 부패, 타락, 위선을 고발하는 플로트이다. (원작에만 소개되는) 연방검사 로이 폴트리그의 입신 과정도 연방에 대한 냉소를 적절하게 담았다. 학생시절 그다지 우수한 성적을 내지 못한 그는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뉴올리언스시의 보조검사로 법조경력을 시작한다. 미국의 주 사법 차원에서 검사의 지위는 매우 취약하다. 수사권은 경찰이 보유하고 검찰은 기소와 법정 변론만을 담당한다. 봉급도 지극히 낮으며 사회적 신망도 높지 않아 대체로 우수한 졸업생이 직장으로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직종이다. 다만 공무원의 신분이기에 대체로 대과 없으면 자리는 보장되고 극심한 경쟁을 피할 수도 있다. 적어도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 존재하지 않기에 여성과 소수인종에게 인기가 있다.

미국의 형사재판이 ‘부자의 법정’이라고 매도당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검사와 일류 변호사 사이의 너무나 현격한 실력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우수한 졸업생 중에 검사를 지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후일 정계에 진출할 야심을 가진 정치지망생이다. 그러나 주와는 달리 연방검사는 엄청난 힘과 권위의 상징이다. 연방검사는 전국적으로 불과 몇 백 명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업무상의 힘도 막강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의 상징인 FBI를 지휘하고 법정에서 미합중국의 권위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임명되는 과정도 지극히 정치적인 경로를 거친다.

연방검사 폴트리그가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정치적 야심을 키우는 법학도의 전형적인 길이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무난한’ 결혼을 한다. 양가집 출신의 아내는 연방검사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는 훌륭한 자격이고 두 아이와 부부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은 사무실과 선거용 벽보를 그럴듯하게 장식할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이다. 폴트리그는 머리는 모자라나 근육은 더없이 단단한 철인이다. 집보다 사무실을 더욱 선호하는 일 벌레로 법률가들은 수면부족을 무슨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24시간 내내 일할 수 있는 남성적 기계임을 신봉하는 제도의 화신이다. 1일 18시간 사무실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시간과 잠을 필요로 하지 않는 특수한 신체를 자랑하는 그의 클라이언트는 미합중국이다. 지방사법 관료에 대한 우월감이 몸 속에 배인 그는 FBI 제2인자 입김을 받아 다가오는 주지사 선거에 후보로 나설 작정이다. 검사는 “법과 질서”를 준엄하게 집행하는 포도대장의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정치입문에 성공할 수 있다.

그가 수행원들에 둘러싸여 6개의 문이 달린 대형승용차 리무진을 거드름을 피면서 타고 내리는 모습이나, 기자들을 상대로 범죄가 해결되었음을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마지막 장면은 연방권력의 기만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렇게 막강한 연방의 힘은 기만과 위선의 힘만이 아니라 선용되는 경우에는 덕과 정의의 힘이 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실제로 극도로 미화되었지만 연방정부의 증인보호 프로그램이 마크의 가족에게 평화와 안정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지극히 미국적인 리얼리티에 충실하다. 멜로 드라마의 정석을 기대하는 팬에게는 아쉽게 느낄 마지막 이별장면은 더욱더 미국적 리얼리티를 부각시켜 준다. 서로 의지하던 소년과 중년여인은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법의 요구에 따라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

“사랑한다 마크, 네가 보고싶을 거야”

“레지, 전 다시 레지를 못 보는 거지요 ”

“그래, 아마도 다시 만나지 못할 거야.”

누구나 ‘하이’라는 지극히 가벼운 인사말로 금새 친구가 되는 열린 사회, 그리고는 아무리 긴 연륜동안 쌓인 애정의 끈도 ‘바이’라는 두 단어로 자르는 냉혹한 사회, 그 이별과 단절을 고통 없이 현실로 수용하는 사회, 그리고 떠나 보내는 자에 대한 미련보다는 충실했던 과거의 당당했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 그것이 미국이다. 지극히 미국적인 소설과 영화, 〈클라이언트〉는 아무리 힘든 여건에 처한 사람에게도 현실은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 포크너의 말대로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건전한 작품이다.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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