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원 악기'가 억대명품 둔갑…음대교수등 14명 적발

  • 입력 1999년 11월 14일 1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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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이나 첼로의 값이 수천만∼1억원 이상이라면 선진국에서는 명장(名匠)의 숨결이 녹아든 명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악기 수입상의 농간이 스며든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서울지검 외사부(부장검사 박상옥·朴商玉)는 14일 외제 현악기를 밀수입하거나 가짜 상표를 붙여 수천만원의 폭리를 취해 온 악기상과 유학생, 그리고 이들로부터 판매 알선료를 받은 음대 교수 등 14명을 적발했다.

검찰은 현악기 수입업체 ㈜스트링인사의 실제 경영주 박준서(朴峻緖·39)씨 등 악기상 6명을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S여대 음대 교수 피호영씨(39)와 모시립교향악단 바이올린 연주자 신연숙씨(36·여) 등 6명을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밀수 및 위조 수법▼

악기 밀수상들은 휴대품은 관세를 면제해주는 현행 제도를 철저히 이용했다. 벼룩시장 등에서 구입한 수십만원짜리 악기에 위조한 유명 라벨을 붙여 출국했다가 외국산 악기와 바꿔치기해 귀국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

‘보따리 장사’로 바이올린 4억원어치를 밀수입한 미국시민권자 박상준(朴商駿·39·구속)씨의 경우 먼저 외국산 악기를 반입해 처분한 뒤 값싼 국산 악기에 가짜 라벨을 붙여 출국하는 수법을 썼다.

‘비전문가’인 세관원들은 오고가는 악기의 라벨이 같은지만 확인할 뿐 악기 자체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은 구별해낼 수 없었던 것.

악기상들은 악기제작자 인명사전에 수록된 유명 라벨을 복사한 후 커피물을 들여 오래된 명품인 것으로 꾸몄다. 이같은 과정에서 1000만∼2000만원짜리 외국산 바이올린이 8000만원짜리로 둔갑했고 정확한 원가를 알 수 없는 첼로가 1억4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주임검사인 강경필(姜景弼)검사는 “국내에는 공신력 있는 악기 감정기관이 하나도 없다”며 “가짜 라벨을 붙여 수천만원을 챙긴 사례를 적발했으나 악기의 진위를 감정할 수 없어 처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악기상과 음대교수의 검은 거래▼

악기상들은 음대 교수와 레슨교사, 연주자 등에게 악기를 구입할 학생을 소개받고 판매대금의 10%를 소개료로 줬다.

피호영씨는 서울시내 예술학교의 실기지도강사로 출강하면서 밀수입된 바이올린 2개의 매매를 성사시켜 주고 그 대가로 1700만원을 받은 혐의다.

▼학부모들의 과잉경쟁▼

상당수 학부모들은 이제 막 초보수준을 벗어난 초중학생에게 4000만∼5000만원 하는 고액 바이올린을 거리낌없이 사주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전자업체 부장인 S씨는 중학생 딸을 위해 밀수입된 가짜 명품 바이올린(4500만원)을 사기 위해 아파트 평수를 줄여 이사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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