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 현대화는 무의미…아파트에 답이 있다”

  • 신동아
  • 입력 2015년 10월 7일 1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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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10월호/대한민국號 70돌 |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지식인]
‘건축예술가’ 서현 교수
● 건축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고 싶었다
● 전통 한옥은 현대생활과 맞지 않아
● 한국 아파트 양식, 세계적으로 우수

한양대 건축학부 서현 교수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중견 건축학 교수이자 건축가다. 스테디셀러인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등의 저작으로 건축의 인문학을 탐구해왔고, ‘해심헌’ ‘김천 상공회의소’ ‘효형출판 사옥’ 등을 설계해 건축을 통한 사회의 새로운 모습을 추구해왔다. 대학 강의실과 설계사무소에 갇혔던 건축을 사회로 이끌어내 건축과 시민 간의 새로운 소통을 모색하는 것은 건축가 서현의 일관된 화두다. 그에게 우리 사회가 일궈온 건축과 건축 문화, 그리고 도시 생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김호기 어디서 성장했습니까.

서현 1963년에 태어나서 파주 문산에서 다섯 살까지 살다가 서울로 와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김호기 대학에는 1982년에 입학했습니까.

서현 82학번이에요. 서울대 공대에 입학해 2학년 올라갈 때 건축학과를 선택했습니다.

김호기
건축학을 전공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서현 저는 특별한 성향이 없는 중성적 인간이에요. 고등학교 때 문과와 이과로 나눌 때 어머니가 이과를 권해 이과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공대에 와보니 건축학과밖에 갈 데가 없더라고요. 글쓰기와 그림에 취미가 있었는데, 이런 성향이 건축학과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김호기
건축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걸친 학문 아닌가요.

서현 건축학은,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박쥐 같은 학문이에요. 어디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모두에 해당하는 분야죠. 일반적으로 공대로 나눠지지만 인문사회계로 분류하기도 해요. 개인을 평가할 때 예술계에 속하기도 하고요.

김호기 연세대 건축학과 교수들 중에도 인문사회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작업하는 분이 있습니다.

서현 저도 건축 관련 책을 여러 권 냈는데, 공대생이 관심 가질 만한 부분은 별로 없어요.

김호기 건축학을 전공하면서 언제 제일 행복했나요.

서현
늘 행복했어요. 학부 졸업 설계를 할 때 4일 정도 밤을 새웠는데,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김호기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것으로 압니다.

서현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온 다음 1991년 1년 정도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다 유학을 갔어요. 건물 짓는 게 이런 거구나 조금 알 때쯤 간 거죠.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김호기 어떤 계기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나요.

서현 첫 사무소는 3개월 만에 나왔어요. 봉급이 너무 적어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또, 일을 시작해보니 건축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싶어졌어요. 내가 하는 건축이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국 건축의 속성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건축 본래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는데, 지도교수가 유학을 권해 떠났습니다.

김호기 컬럼비아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서현 당시 가장 경쟁력 있고 좋은 학교였어요.

김호기 컬럼비아대학에선 얼마 정도 있었나요.

서현 한국에서 석사를 해서 3학기 만에 석사 학위를 마쳤어요.

김호기 건축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뉴욕은 거대한 공부 현장이지 않았나요? 맨해튼은 특히 그런 것 같아요. 도시사회학에서도 자주 다루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서현 1년 정도 살면 떠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진짜 좋다는 느낌이지요. 유명한 건축가들이 학교를 방문하니까 활자 속 인물이 아니라 자연인으로 직접 보게 된 게 매력이 컸죠.

김호기 학위를 마친 다음 곧 귀국했습니까.

서현 한국에 돌아오기 전 코네티컷으로 가서 4년 정도 설계사무소에서 일했어요. 서울로 돌아와 큰 설계사무소에서 2년 정도 일한 다음 개인 사무소를 냈습니다. 그때가 외환위기 직후라 일이 없어서 신문에 글을 쓰면서 돈을 벌었어요. 2년 후인 2000년 한양대 건축학과로 왔어요.

김호기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축을 묻다’ ‘빨간 도시’ 등 건축에 관한 좋은 책을 펴냈습니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하고요.

서현 책을 쓴다는 것에는 건축가와 건축을 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에게 건축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의도가 담겼어요.

김호기 자신의 대표적 건축물로는 어떤 것을 꼽는지요.

서현 제주도 해심헌이죠.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아름다운 제주 7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혔어요. 2007년 준공한 주택이에요.

김호기 경북 김천 상공회의소와 효형출판 사옥도 서 선생의 작품이지요?

서현 앞으로 좋은 건물을 많이 설계해야죠.

김호기 건축이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서현 20세기 들어와 건축에서 중요한 세 가치를 공간·기능·예술에서 찾았는데, 좀 딱딱한 표현이지만, 공간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재조직하는 작업을 건축이라고 규정할 수 있어요.

건축으로 사회를 바꾼다?

김호기 건축은 한편에서 실용적인 목적을 갖지만, 다른 한편에선 예술 작품이기도 합니다. 건축과 예술, 건축과 문화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서현 건축을 예술로 보는 것은 범주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술이 무엇인지가 규정된 게 18, 19세기부터인데, 이때 건축이 예술 범주에 들어가 있었어요. 건축이 문화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의 물음은 건축이 생활과 어떤 관련이 있느냐의 질문일 텐데, 한국 아파트가 이슬람 아파트와 다른 것처럼, 건축에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방식, 조직되는 방식이 구현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 변화가 있었어요. 20세기 들어와 소극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고 사회의 새로운 모습을 건축을 통해 적극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건축가들의 시도가 나타났어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의 가치죠. 1910년대부터 인간의 삶을 재조직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대안을 건축이 제시한 겁니다.

김호기 사회학에서 말하는 문화에는 생활양식과 의미 추구 두 가지가 있어요. 전자의 생활양식은 다시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나뉘는데, 건축은 전형적인 물질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후자의 의미 추구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서 선생이 말한 게 크게 공감이 가요. 문화에선 역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가 중요해요.

서현 1910년대부터 그로피우스가 이끈 바우하우스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등이 건축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를 주장해요. 건축이 사회를 수동적으로 좇아가는 게 아니라, 건축을 통해 능동적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본 거죠. 이에 관해 다양한 토론이 있었지만 사회에 대한 건축의 관심을 환기한 것은 매우 중요했어요.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디컨스트럭티비즘 건축이 등장했어요. 참신한 시도였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김호기 광복 이후 우리 건축의 흐름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요.

서현 한국 현대 건축의 역사는 일천해요. 전통 건축이 더 이상 경쟁력을 갖지 못해요. 기와지붕과 같은 한옥을 더는 지을 수 없어요.

김호기 서울 은평구 진관사 앞에 있는 한옥마을에 한번 가봤어요. 현대화한 한옥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현 한옥은 지금 생활상과 안 맞아요. 전통 한옥은 노비가 있는 것을 전제로 지은 가옥이에요. 지금 가족 구조와는 맞지 않다고 봅니다.

일제강점기 르네상스 붐

김호기 한국 건축의 근대적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서현 한국 건축의 근대적 표상은 일제강점기부터예요. 흥미롭게도 그 모더니즘이 르네상스 스타일이에요. 그 시대에 건축된 구(舊) 총독부청사, 서울역사, 한국은행 등이 모두 르네상스 스타일이에요. 총독부청사는 독일 사람이, 서울역과 한국은행은 도쿄대 교수가 설계했어요. 20세기 초 바우하우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유럽에서 유일하게 제도화한 건축 교육기관이 프랑스의 ‘에콜 데 보자르’인데, 이 기관이 르네상스 스타일을 가르쳤어요. 일본이 메이지유신 때 에콜 데 보자르에 유학을 보내기도 하고 그곳 선생을 데려오기도 했어요. 일본이 받아들인 이런 보자르 스타일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된 거죠.

김호기 광복 이후 주목할 만한 건축물은 산업화 시대가 본격화한 이후 지어졌을 텐데, 어떤 것들을 주목할 수 있습니까.

서현 괜찮은 건물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김수근, 김중업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건축 수준이 높아졌고, 전통 건축의 의미에 대한 토론도 시작됐죠. 김수근 선생은 타고난 조형감각을 가졌어요. 좋은 프로젝트를 정부로부터 수주해 자신이 가진 디자인 능력을 뽐냈죠. 공간 사옥, 올림픽 스타디움이 대표작입니다.

김호기 우리나라 건축물을 지켜보면 아파트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제 기억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짓기 시작했는데요.

서현 중산층 건물로 아파트가 자리 잡은 것은 여의도 시범아파트부터예요. 그전까지는 저소득층 주거 형태였죠. 정부가 ‘엘리베이터를 넣은 고층 아파트’로 광고하면서 대대적으로 알려진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이후 잠실로 가서 잠실 5단지를 비롯해 아파트 건축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어요. 그게 1970년대 중반입니다. 민간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철수하고 들어오면서 할 게 없으니까 아파트를 많이 지었죠.

김호기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이에요. 빛과 그늘을 어떻게 보는지요.

서현 시대가 가진 환경을 봐야 하는데, 산업화가 본격화하면서 1년에 25만~30만 명 되는 사람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몰려왔어요. 이들의 거주를 위해 아파트를 마구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유지된 주거양식이죠. 1960년대 초반 300만이던 서울 인구는 1980년대 후반 1000만을 찍었어요. 그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과정에 아파트가 큰 구실을 한 겁니다. 아파트 분양 당첨이 되는 순간 중산층으로 올라가는데, 이제 더는 그 효용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가 됐잖아요. 그 아파트들이 재개발되는 거죠.

아파트는 한옥의 일종?

김호기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에 대해 비판이 많은데요.

서현 한국이 생산한 건축양식 중 국제 경쟁력이 있는 유일한 분야가 아파트일 거예요. 외국보다 훨씬 훌륭해요.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견해, 예를 들면 공동체 해체 등의 주장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도시공동체 자체가 있었던 적이 없어요. ‘성냥갑 같다’는 주장에 대해선 사람들이 도시로 그렇게 몰려오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아파트 문화가 재건축을 통해 만들어져요. 그 가운데 하나가 주차장의 지하화죠. 2000년대에 들어와 주차장이 지상에 있는 아파트는 건축허가에서 통과가 안 됐어요. 그 결과 지상이 공원화하면서 아파트 풍경이 달라졌어요. 개인적으로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호기 건축학의 관점에서 아파트 내부 구조는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서현 아파트는 옛날 한옥 구조와 똑같아요. 마당을 거실로 바꾸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엘리베이터 계단 양쪽에 집이 매달린 형식이죠. 거실은 주로 남향이에요. 아파트 평면도를 보면 현관 쪽 방은 아들 방인데, 옛날 한옥에선 행랑채죠. 현관에서 제일 먼 쪽에 있는 방들은 안방하고 딸 방이 돼요. 일종의 한옥인 셈입니다.

김호기 2000년대 들어 주상복합 아파트가 상당한 인기를 끌어왔어요. 타워팰리스가 대표적인 주상복합으로 꼽혀왔고요.

서현 타워팰리스는 그곳이 상업 지구였기 때문에 아래에 상업지구를 깔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지은 거예요. 삼성이 주상복합 아파트를 최고의 주거 양식인 것처럼 포장을 잘해서 성공한 거죠. 건축설계 측면에서 주상복합 아파트는 평면을 짜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먹방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인데, 취미실, 가족실 등을 새로 만들어서 해결했어요. 주상복합을 통해 평면을 짜는 양식이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죠.

김호기 아파트는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일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타워팰리스도 그렇고 해운대 주상복합단지도 그런 것 같아요.

서현 주상복합 아파트는 사회가 받아들이기에 위화감이 많은 양식이기도 해요. 또 다른 이들의 진입을 거부하는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이기도 하고요. 과시적 소비의 한 양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건축 문화와 도시 생활을 주제로 대담하는 서현 교수와 김호기 교수.(장소 제공 : 충정각)
건축 문화와 도시 생활을 주제로 대담하는 서현 교수와 김호기 교수.(장소 제공 : 충정각)

싸게 빨리 짓는 게 문제

김호기 현재 우리 건축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서현 싸게 짓고 빨리 짓는다는 거예요. 한국 건축은 전통 건축부터 시작해서 국제 경쟁력이 많이 떨어져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건축은 주로 조선시대 건축물인데, 고려시대 건축물은 다섯 채밖에 안 남아 있어요. 조선시대에 건축기술 수준이 좀 내려왔어요. 일본하고 비교하면 음식 값은 비슷한데, 건물은 우리가 3분의 1 가격으로 짓습니다. 대강 짓는 거죠. 꼼꼼하게 짓기 위해선 장인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에는 그런 장인이 거의 전멸했어요.

김호기 전통 건축의 현대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서현 식민지 시기가 끼는 바람에 우리 자신의 전통성을 찾으려 시도하는 게 혹시 왕조시대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전통 건축의 현대화라는 주장 자체가 식민지 시기에 대한 피해의식 또는 반발의식 아닌가요.

김호기 문제의 핵심은 전통의 현대화가 가져야 할 실용성 아닐까요.

서현 서양인들이 우리 건축을 보고 정체성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건 제국주의적 시각이에요. 우리가 갖는 특징을 우리가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와서 발견해야죠. 이런 질문을 받는 순간 많은 한국 건축가가 서양과 차별화하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돼요. 이러면서 기와집이 나오고, 그 기와집을 콘크리트로 만드는데, 제가 보기에 이런 것들은 큰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저는 아파트에 가보라고 해요. 아파트가 한옥 구조와 똑같다고요.

김호기 서울의 주거 문화 또는 도시 문화를 어떻게 보는지요.

서현 한마디로 ‘정글’이죠. 사회적 룰이 없이 독자생존과 경쟁만 투영된 공간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게 약하고 집단적이며 배타적인 성향이 강한데, 이들이 생존하는 방식이 도시에서 잘 보여요. 정글에서는 ‘강한 자’가 생존하잖아요. 도시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동차이고, 가장 약한 자는 유모차예요. 우리나라 도시에서 유모차 끌고 다니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자동차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김호기 그렇다면 건축가로서 보기에 서울의 정체성은 뭔가요?

서현 ‘혼잡’이죠. 특색이 없고 한 번 만들어두면 바꾸지 못해요. 일종의 비빔밥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저것 다 넣고 막 비비는 것 말이에요.

김호기 강남 지역은 나름대로 계획된 도시로 볼 수 있지 않나요.

서현 강남엔 일종의 ‘링’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알아서 생존하라고 한 거예요. 계획도시적인 측면은 도로만 깔았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필지를 만들어 팔았죠. 계획도시를 만들려면 다양한 사회적 면을 배려해야 해요. 그런 면이 부족해요. 좋은 도시는 도로·건물은 물론 살아가는 이들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비민주성의 공간

김호기 사회학적으로 보면 서울에는 강북과 강남이라는 ‘두 개의 서울’이 있어요. 건축가 또는 건축학자로서 어떻게 봅니까.

서현 강북은 그 나름 정주자들이 오래 버티는 동네이고, 강남은 뜨내기가 사는 동네예요. 우리나라 주거 평균 체류 시간은 4년 정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기가 사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어려워요. 결과적으로 도시를 이용하는 방식이 순간적이고 즉흥적이에요. 주위에 있는 모든 이가 경쟁자거나 무시해야 하는 대상이 되기 쉽죠. 아파트는 많이 지었는데 집단적인 배타성이 발휘되는 게 현실이에요. 모여 산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훈련하기 좋은 주거양식을 가진 셈인데, 실제로는 모여만 있지 서로 모르고 지내요. 우리 사회가 갖는 비민주성이 드러나는 공간이지요.

김호기
이야기를 좁혀 서울에 있는 건축물에 주목하면, 어떤 건물들이 서 선생이 앞서 말한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제시합니까.

서현 경희궁 뒤편 아산정책연구원을 먼저 꼽고 싶어요. 들어가는 순간 건축가의 메시지가 금방 와 닿았어요. 그 메시지는 ‘연구소라면 골방에 있는 게 아니라 나와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연구원에 가보면 가운데가 뻥 뚫려 있어요. 건축가의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난 거죠. 이 건물을 설계한 분은 유걸이라는 건축가예요. 서울시 청사도 설계했어요. 사회적 투명성에 대한 신념을 가진 분이죠.

김호기 건축가와 건축주와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나요.

서현 건축가에게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주는 대상이 필요한데, 대부분 건축주이거나 담당 공무원이죠. 안 받아들여지면 좌절합니다. 때로는 받아들여지고 때로는 좌절되면서 건축가의 의도가 건축으로 번역돼 자리 잡게 되는데, 그게 쌓이고 모이면 맥락을 이루어 도시가 되는 거죠.

김호기 아산정책연구원 말고 주목할 다른 건축물들은 어떤 게 있나요.

서현 대치동 포스코센터, 인사동 쌈지길, 이화여대 ECC를 들고 싶어요. 포스코센터는 투명한 건축을 중시하는 간삼건축이 설계했어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쓴 건물입니다. 건물 앞에 있는 세계적인 조각가 프랭크 스텔라가 제작한 ‘아마벨’도 대단히 인상적이고요. 인사동 쌈지길은 최문규 연세대 건축과 교수가 설계했어요. 건물이 어떻게 도시와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공성이 잘 드러난 훌륭한 건물이죠.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이화여대 ECC도 좋은 건물이에요.

김호기 ECC는 포스트모던하면서도 무척 실용적이더라고요.

서현 페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설계한 인물인데, ECC를 지으면서 기존의 땅을 한 평도 손상하지 않았어요. 여기서 저기까지 그냥 걸어가면 되게 했어요.

건물을 통한 체험

김호기 건축가인 동시에 건축 인문학자이기도 한데, 우리 도시 문화는 어떤 방향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봅니까.

서현 우리 사회와 문화를 보면 우울하죠. 공정하지 않고, 룰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도시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익명의 대상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하는데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통화하는 것 등을 보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제대로 존재하기 위한 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아직도 많은 것 같습니다.

김호기 그런 사회와 문화의 변화가 건축을 통해 이뤄질 여지는 없을까요. 아까 이야기한 아산정책연구원으로 돌아가면, 세미나를 한 다음 로비에 나왔는데, 공간이 확 열려 있는 게 좋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어요. 우리나라 주거 공간도 열린 공동체로 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서현 뭔가를 바꾸기 위해선 체험이나 학습이 필요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건물 몇 채를 통한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새로운 세대를 통한 변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젊은 세대가 해외든 국내든 경험을 많이 쌓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가 많아져 현재와 같은 도시 생활을 바꾸어주길 바랍니다. 변화를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겠죠.

김호기 건축가로서 가진 꿈은 어떤 건가요.

서현 후배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에요. ‘건축을 묻다’라는 책을 썼는데, 건축에 관한 질문은 몽땅 해결했다고 자신합니다. 건축에 관한 좋은 책을 쓰겠다는 목표는 이룬 것 같은데, 아직 건물이 남은 셈이죠. 주택 정도이긴 하겠지만 앞으로 좋은 건물을 많이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대표작도 만들어지겠죠.

김호기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서현 꿈과 차이가 없어요. 좋은 건물 만드는 거죠. 좋은 건축주랑 합심해서 좋은 건물을 만드는 게 버킷리스트 1번이자 마지막이에요.
서현
●1963년 출생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및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석사 ●이상건축상 코디네이터 ●現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저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축을 묻다’ ‘빨간 도시’

김호기
●1960년 경기 양주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독일 빌레펠트대 박사 ●現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 ‘한국시민사회의 성찰’ ‘세계화시대의 시대정신’ ‘시대정신과 지식인’ ‘예술로 만난 사회’ 등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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