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미 시인 “詩는 삶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치유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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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3번째 시집 낸 안현미

세 번째 시집을 펴낸 안현미 시인. 그의 시는 애잔하면서도 활달하고, 생의 비애가 깃들었으면서도 따스하게 다가온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세 번째 시집을 펴낸 안현미 시인. 그의 시는 애잔하면서도 활달하고, 생의 비애가 깃들었으면서도 따스하게 다가온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안현미 시인(42)은 새 시집 제목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창비)에서 ‘사랑’을 ‘사표’로 바꿔 읽으며 깔깔 웃었다. 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보다는 사무원으로 사는 시간이 많다. 이제 열정만으로는 시가 써지지 않는데 5년 만에 시집을 묶고 보니 ‘안현미, 죽지 않았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쯤 되면 공양주 보살을 하면서 고독하게 시를 쓰려고 했는데, 아이가 재수생이라 그 꿈은 이룰 수가 없고….(웃음)”

시인은 어려운 집안 형편에 대학 대신 서울여상에 진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사무원으로 사는 날이 비굴하게 느껴질 때면 “나에겐 시가 있어”라고 되뇌면서 고단함을 이겨낸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두개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 들숨과 날숨! 낮에는 돈벌고 밤에는 시 쓴다. 운에는 울고 율에는 웃자.’(‘정치적인 시’ 중)

“김경주, 황병승 같은 시인들에게 자극을 받았다. 동 세대 시인들이 좋은 시를 내놓을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났다. ‘나는 돈 버느라 바쁜데’ 하고. 그들은 내가 돈 버는 걸 질투했으려나?(웃음)”

어린 시절 시인의 부모는 바빴다. 외로운 소녀는 혼자 책을 읽고 일기에 시를 쓰면서 자랐다. 시를 잊지 못해 서울산업대(현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에 97학번으로 입학했다. 스물셋에 결혼한 그는 학교에서 열리는 토요일 시 공부 모임에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꼬박꼬박 참석했다.

무기 수입업체에 다니다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 쓴 시로 200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09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입주 작가를 관리하는 일을 하다가 최근 남산예술센터로 옮겨와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 지원사업을 담당하게 됐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시가 주는 차분함과 도닥이는 듯한 위안을 좋아했지 싶다. 뿌리가 없는 것 같은 삶에서 시는 치유제였다. 어떤 비루한 순간에도 나에게 시가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했다. 시에게 태만하지 않은 시인, 나 자신과 시에 대해 정직한 시인이고 싶다.”

밤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그는 그 시간에 정갈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생각한다. 다른 차원의 시간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사무원 안현미와 시인 안현미는 같은 사람이지만, 그 안에서 다른 어떤 틈새를 찾아내려고 한다.

‘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나는 그게 시라고 생각한다//서둘러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점심시간//내가 먹은 밥은 그곳에 있다/나는 그게 시라고 쓰고 싶다’(‘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 중)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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