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사극 속 영웅, 나야 나!”

  • 입력 2007년 3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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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주몽’의 주몽(왼쪽)과 소서노에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그래픽. 정치인의 이미지가 TV 사극의 캐릭터와 중첩되는 데 대해 찬반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MBC 드라마 ‘주몽’의 주몽(왼쪽)과 소서노에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그래픽. 정치인의 이미지가 TV 사극의 캐릭터와 중첩되는 데 대해 찬반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9일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21세기의 주몽이 되겠다”고 말했다. 평균 시청률 40.4%를 기록했던 MBC 드라마 ‘주몽’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일부 누리꾼은 ‘주몽학규’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대권주자가 경박해 보인다”는 비판도 나왔다.》

○ 갈등해결 명분-과정, 현실정치와 비슷

올해 상당수 정치인과 측근들이 ‘주몽’을 들먹였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지지자들은 “(박 의원이) 여걸 소서노와 비슷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통합신당모임의 염동연 의원은 1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주몽을 기다리며 길을 떠난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윤원호 의원도 2월 당의장 출마 기자회견에서 “정권 재창출의 소서노가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사극 이미지를 본격 차용한 것은 15대 대선이 있었던 1997년 방영된 KBS 사극 ‘용의 눈물’부터. 이 드라마는 조선의 건국과 후계 문제를 다룬 것으로 당시 정치인들은 태종 이방원이 후계자로 결정되는 상황을 자신에게 비유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는 후보자들이 MBC 사극 ‘허준’에 빗대어 ‘국회의 허준’이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이순신을 다룬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찬사를 보냈고 KBS가 ‘불멸의 이순신’을 방영하자 노 대통령을 이순신에 비유하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방송가에서는 올 하반기 방영될 KBS 사극 ‘대왕 세종’(가제)도 정치인들이 차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이 드라마의 원작인 이정명의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이 최만리를 비롯한 유학자들에 맞서 한글 창제 등 개혁을 이룬다는 줄거리다.

○ 일부선 “자기 콘텐츠 없다는 반증” 지적도

이렇듯 정치인들이 사극 속 영웅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은 이미지 모델링 전략의 하나다. 주몽의 최완규 작가는 “사극은 과거를 다루지만 동시대적 이슈를 내포하고 있어 정치인들에게는 자신을 부각시킬 만한 소재”라고 풀이했다.

이미지컨설팅 업체 이미지파워의 김은주 소장은 “이런 전략은 이미지 형성 초기나 이미지를 급격히 바꿔야 할 때 사용한다”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초반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차용했으나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뒤에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사극은 △주시청층인 30, 40대 남성이 여론 형성의 핵심 세대이고 △갈등을 해결하는 명분과 과정이 현실 정치와 비슷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이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 만들기(image modeling)’의 재료가 된다고 분석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사극은 ‘주몽’처럼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리더십의 전형을 갈구하는 대중의 요구를 메워 준다”며 “‘정치판의 장준혁(하얀거탑)’ ‘국회의 김삼순(내 이름은 김삼순)’ 등 현대 드라마의 주인공을 모델로 하는 경우가 없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용의 눈물’ ‘여인천하’를 연출한 김재형 PD는 “사극은 한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를 총동원하는 드라마이며 과거를 통해 배우자는 덕목이 있어 이를 통해 정치인들이 대중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 씨는 “다른 이미지를 찾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자기 콘텐츠가 없다는 표시”라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또 장이미지연구소의 장소영 소장은 “사극의 이미지를 자기 이미지와 잘못 결합하는 경우 인지도가 악화되고 이미지 왜곡 현상을 일으켜 포퓰리즘 정치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칸트는 ‘내가 그린 나보다, 타인이 그린 내 모습이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큰 꿈을 꾸는 정치인이라면 새겨둘 만한 대목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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