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피카소와 마티스…‘세기의 우정과 경쟁’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코멘트
◇세기의 우정과 경쟁/잭 플럼 지음·이영주 옮김

“아아, 우리의 말이 이 그림에 앞서 만들어진 까닭에 어떤 문학도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언어!”(기욤 아폴리네르)

1907년 파블로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공개했을 때 그것이 현대회화의 위대한 이정표가 되리라고 내다본 이는 거의 없었다. 화단은 이 20세기의 가장 거친 그림에 질겁했다. 친구들조차 목을 맨 피카소를 발견하지 않을까 걱정했고, 슬슬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당대에, 그리고 그 후에도 피카소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앙리 마티스. 그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 그림을 보고 흠칫 놀랐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자신의 대작 ‘삶의 환희’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삶의 환희’가 곡선적이고 원기왕성하며 밝게 채색돼 있다면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모나고 거칠며 단색이었다. 마티스의 작품이 목가적 배경 속에 매우 천진하고 에로틱한 몽상을 나타내며 삶의 즐거움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면 피카소의 그림은 현대 도시의 매음굴을 소재로 성적인 외상(外傷)과 죽음의 대면을 암시하고 있었다.

피카소의 그림은 ‘삶의 불행’을 절규하며 마티스의 ‘삶의 환희’가 가당치 않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피카소는 파괴와 창조, 폭력과 현대성을 급진적으로 결부시켰다. 마티스는 그 여과되지 않은 관능, 그 폭발적이고 분열적인 에너지에 아찔했다. 생전 처음 마티스는 피카소가 자신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20세기 미술의 두 거장, 마티스와 피카소.

두 사람은 어느 한 순간도 상대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다. 1905년 스타인가(家)의 후원을 놓고 처음 겨루었던 그 순간부터 반목하고 견제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사후에도 계속된다.

흔히 그들의 관계는 이분법의 대립 쌍으로 비유된다. 색채와 형태, 부르주아적 삶과 보헤미안적 삶, 낮과 밤, 냉정과 열정, ‘교수님’과 ‘어릿광대’….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 책은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끊임없는 경쟁과 우정을 새롭게 조명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 영감과 자극을 주었는지, 서로의 작품에 대한 반응이 그들의 예술에 어떻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저항했다.

그들은 상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자기 안에서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마티스는 “우리가 상대로부터 이익을 얻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들의 서로 다른 행로에는 호혜적인 ‘상호침투’가 있었다.

피카소는 특히 ‘마티스적 요소’를 차용하기를 즐겼다. 피카소의 ‘기대어 누운 누드’는 ‘푸른 누드’의 자세에서 착안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색채, 싹트기 시작한 식물과 과일, 율동적인 장식 문양은 모두 마티스가 좋아하는 장치들이다.

피카소가 애인 프랑수아즈 질로를 그린 ‘여인-꽃’은 ‘마티스 부인의 초상’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내가 만약 그녀를 그린다면 머리카락을 초록으로 하겠다”던 마티스의 말에서 직접 모티브를 얻었다.

이 때문에 마티스는 언제 어느 때 피카소에게 자신의 주제와 제재를 도용당할지 모른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매복하고 기다리는 노상강도야!”

피카소는 밤에 그리고, 마티스는 낮에 그렸다.

마티스의 그림에서는 강렬한 햇빛이 느껴지는 반면 침묵하는 단색조에 가까운 피카소의 작품은 거의 촛불이 비치는 듯하다. 마티스의 작품은 ‘오렌지처럼 터질 듯한 빛으로 가득한 과일’과 같았고 피카소는 ‘신비스럽게 빛나는 진주’였다.

누가 더 위대한 화가인가.

직접적이고 서사적인 피카소의 작품에 비해 마티스의 그림은 단순한 형상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심원하고 난해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그는 매력적이지만 깊이 없는 ‘편안한 안락의자의 화가’로 비쳤다.

마티스의 예술에는 ‘게르니카’와 같은 정치적 우의(寓意)가 없었으니,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는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위대한 예술가로 선택받았다는 느낌은 피카소에 비해 상당히 위축되었고, 오랫동안 유예되었다.

르네상스 전성기에 시작된 회화 전통의 끝에 서 있었던 마티스와 피카소. 아마도 우리는 새로운 세기가 두 사람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는 누가 더 위대한 화가인지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매우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으며, 그들의 예술은 우리에게 아주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 왔다….”

원제 ‘MATISSE AND PICASSO’(2003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