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악사’ 백연화 옹]색소폰 메고 거리서 ‘열린음악회’

  • 입력 2003년 1월 12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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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악사’ 백연화 옹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20년 넘게 노인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어왔다. -전영한기자
‘거리의 악사’ 백연화 옹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20년 넘게 노인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어왔다. -전영한기자
백연화(본명 이호영·李鎬暎·80·경기 구리시 수택1동) 옹의 직함은 ‘거리의 악사’다. 그가 구슬픈 색소폰으로 들려주는 ‘목포의 눈물’ ‘알뜰한 당신’ ‘추억의 소야곡’ ‘홍도야 울지 마라’ 등 흘러간 가요들은 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고, 과거를 추억하게 한다. 그래서 백옹은 ‘노인들의 스타’로 불린다. 변변한 ‘보수’도, 조명 찬란한 ‘무대’도 없이 벌써 20여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단 한순간도 돈을 위해 연주한 적이 없어요. 우연히 사람들이 감사의 표시를 해도 나보다 불우한 노인들 밥값으로 건네곤 했죠. 색소폰을 연주하며 세상의 근심을 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잔주름과 흰 머리카락이 눈에 띄지만 그에게서 생생한 ‘젊음’이 느껴진다. 사계절 내내 영국 신사를 연상케 하는 정장과 모자, 긴 부츠 차림이 그렇고, 누구를 만나든 씩씩하게 “충성”이라고 외치는 모습이 그렇다.

“소식다작(小食多嚼·적게 먹고 많이 씹는다는 뜻)하고 술 담배 안 하는 게 건강비결입니다. 경기 구리시 집에서 서울 나올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습관을 들이니 자연히 튼튼해지더군요.”

경남 함양군 출신의 백옹은 스스로 ‘타고난 끼’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50여년 전 누나 이순이씨(작고)를 따라 유랑극단 ‘햇님 국극단’에 들어가 피리를 불었고, 눈동냥으로 북과 오르간 연주법을 익혔다. 색소폰을 잡은 것은 30여년 전. 피리와 비슷한, 부는 악기인 데다 사람의 음성과 가장 흡사했기 때문이다. “혼자 색소폰 교본을 읽으며 한적한 북한산 계곡에서 연습했어요. 지금은 세상을 달리한 엄토미 이봉조 길옥윤 등 색소폰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요. 요즘은 이정식씨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음악이라는 게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서울 도심의 탑골공원은 백옹의 색소폰 연습장소였다. 하지만 그의 색소폰 소리를 듣고 노인들이 하나둘 찾아오면서 1981년경부터 2001년 2월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이곳 팔각정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은 그의 음악을 카세트로 녹음하거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곤 했다.

백옹은 2001년 3월부터는 종묘공원 팔각정으로 자리를 옮겨 일주일에 2, 3회씩 색소폰 가락을 뽑고 있다. 서울시와 문화관광부가 ‘3·1절 행사 외 탑골공원 공연금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또 이때부터 동대문시장 부근 먹자골목의 포장마차를 비롯해 각종 경로잔치, 서울 시내 복지회관들을 찾아다니며 혼자서 ‘열린 음악회’를 이어가고 있다.

변변한 수입도 없이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질문에 백옹은 “자녀 출가시키고 경로우대증이 있어 별로 돈 들 곳이 없다”며 “집에 돈 한 푼 가져다 준 적 없으니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힘이 되는 한, 낮은 곳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고 싶다는 백옹. 그는 ‘고개 숙인 노년’에게 작은 희망을 전하는 가객(歌客)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언젠가 음반으로 낼 예정이라는 자작곡 ‘황혼길 막차’의 가사를 혼잣말처럼 조용히 읊조렸다.

“세상을 바라보니 갈 길이 멀지 않네. 오늘은 탑골공원, 내일은 종묘공원. 세월이 유수로다, 어언 백발이. 언젠가 타야 하네 황혼길 막차.”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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