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오월의 사회과학」최정운-손호철교수

  • 입력 1999년 5월 28일 19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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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지금 과거형인가, 현재형인가. 그 봄으로부터 20년. 그러나 5·18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금기의 언어’이며 누군가에게는 ‘무기의 언어’다. 더하여 시간의 더께가 쌓이며 젊은 세대에게 5·18은 벌써 6·25만큼이나 역사 저편의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정치학자 최정운교수(서울대)의 ‘오월의 사회과학’(풀빛)은 이런 시대를 밑그림으로 탄생했다. 저자는 미국 유학중 80년5월 광주를 비디오로 간접체험했던 ‘제3자’.

그런 그가 광주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경로는 ‘말(담론·談論)’과 ‘가상체험’이다. 투사회보, 담화문, 계엄사 발표문…. 광주를 둘러싸고 생성됐던 상반된 말들. 그 의미를 ‘…했다더라’가 아니라 현장의 한 사람이 되어 내적으로 경험해가는 글쓰기다. 동료학자인 손호철교수(서강대)가 ‘오월의…’ 의의와 한계를 대담으로 짚어 보았다.》

△최정운〓‘소통의 벽’을 허물어보자는 것이 책을 쓸 때의 생각이었다. 5·18에 관해서는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상식으로 얘기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총을 들었다”라고 얘기하면 한편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또 누군가는 “4·19때도 그랬나”라고 반문한다. 그래서 소설 쓰듯이 5·18의 상황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손호철〓최근 사회과학자들의 글쓰기방법과 관련해 학문의 탈식민화를 위해서도 논문중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이 있었다. 저자의 글쓰기는 기존의 영미식 사회과학기법인 인과적 분석을 벗어나 감정이입을 인정하는 해석적 방법을 도입한 것이 돋보였다.

또 그간 5·18을 둘러싼 말의 정치, 즉 담론분석이 연구의 공백으로 남아있었는데 이 책이 그런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최〓담론분석을 중요시했던 이유는 편견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 때문이었다. 당시의 사진이나 신문 정부담화문 계엄사의 발표문 투사회보등에 실렸던 이야기들이 반추되면 “아 지금까지 광주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이 이야기들에 기초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환기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자신의 편견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손〓그러나 저자가 5·18을 보는 관점에는 현미경은 있지만 망원경은 없는 것같다. 광주에서의 열흘간 상황으로만이 아니라 유신으로부터의 연속성, 이란혁명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등 역동적인 분석틀로 보았어야 하지 않을까.

△최〓지적에 동의한다. 가진 게 현미경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선 열흘동안의 사건 자체를 담을 수밖에 없었다.

△손〓5·18을 둘러싼 ‘말의 계보학’을 추적하는 일도 한국정치사와 맞물려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기존 연구들 특히 민중론이나 진보적인 시각에서의 5·18 평가가 최근 들어 설득력을 잃는 이유가 단지 이론적 결함 때문일까.역사란 기억을 둘러싼 계급투쟁이다. 어떤 사건에 대한 의미체계의 변화는 결국 의미를 둘러싼 정치세력간의 역관계 변화 아니겠는가.

△최〓최근 들어 민중론이나 진보적인 연구집단이 해온 5·18 평가가 폄하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정치적 보수화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금의 보수화 경향은 신야만시대 개막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날로 퇴색해가는 5·18을 현실로 가깝게 끌어당겨 의미를 더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광주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은 당시 현실을 육체적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었다. ‘픽션’이 사회과학의 영역은 아니지만 ‘절대공동체’라는 하나의 ‘특허’적 개념을 만들어 놓고 금남로에서의 함성이 느껴지도록하는 문체로 접근한 것도 그 때문이다.

△손〓그러나 ‘절대공동체’라는 개념에서 의도하지 않은 편견이 유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는 지역민의 일치단결을 강조함으로써 80년 광주를 지역문제로 협애화시키는 위험성이고 또 하나는 민중이라는 실체를 의도적으로 탈각시킨 채 ‘전 광주시민이 봉기해서 싸웠다’는 식의 자유주의적 해석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최〓광주혁명을 시민혁명, 부르주아혁명으로 해석하는데는 나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공동체를 움직인 실체는 분명 민중이었다. 그러나 이 민중이라는 개념을 배타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손〓5·18의 제도화, 기득권화가 심화될수록 광주에서는 더 이상 5·18을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같다. 김대중대통령 때문에 제대로 역사적 단죄도 이루지 못하고 용서해야 하는 것,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화된 ‘원죄’때문에 자기분열을 앓는 것으로 보인다.

△최〓앞으로도 10년 정도는 5·18에 관한 이야기가 자유스럽게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5·18에 대한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5·18 연구가 제주 4·3, 여순항쟁, 거창학살등 한국현대사의 사건들을 제대로 규명하는 준거틀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지음 풀빛 325쪽 13,000원▼

광주를 둘러싼 담론을 분석하고 5·18을 내적 경험으로로 이해하는 베버적 방법으로 분석했다. 저자는 ‘발포명령자는 누구였나?’같은 사실확인에 치중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항쟁 가운데 생성된 ‘절대공동체’의 경험이라는 것.

‘이 공동체는 절대전(戰)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경제적 윤리적 원칙, 언어의 속박으로부터의 몸과 생명의 해방이었다. 지옥의 불길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다다른 유토피아였다

〈정리〓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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