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243>孟子가 自齊葬於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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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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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孫丑(공손추)·하’ 제7장은 맹자가 제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노나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제나라로 돌아오면서 제자 充虞(충우)와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해 두었다. 맹자는 鄒(추)에서 태어났으나 조상이 노나라의 公族(공족)인 孟孫氏에게서 나왔으므로, 조상의 나라로 가서 모친상을 치른 듯하다.

反於齊는 삼년상을 마치고 제나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영(영)은 제나라 남쪽의 마을이다. 前日은 장례를 치른 지난날이란 뜻이다. 昔者(석자)라는 표현과 같다. 不知虞之不肖는 상대를 극히 존대하고 자신을 낮추어 말하는 표현법이다. 虞는 充虞가 자신을 가리킨 말, 不肖(불초)는 부친을 닮지 못한 못난 자란 뜻으로 謙辭(겸사)다. 敦匠事에서 敦(돈)은 董治(동치·맡아 봄)의 뜻이다. 匠事(장사)는 棺槨(관곽·관과 외관)을 만드는 工人의 일을 말한다. 嚴은 일이 긴급했다는 말이다. 혹은 事를 아래로 붙여 事嚴으로 끊어 읽기도 한다. 不敢請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어도 감히 여쭙지 못했다는 말이다. 竊(절)은 공손한 뜻을 드러내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옛 분들은 ‘그즈시’라고 풀었다. 어떤 영어권 학자는 stealingly로 번역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若以美然은 ‘마치 지나치게 아름다운 듯 그러하다’로, 以는 已甚(이심·지나치게)의 뜻이다.

유학자들은 葬禮(장례)를 매우 중시했다. 전국시대의 다른 사상가들은 유학자가 그렇게 장례를 중시하는 것을 두고 형식에 치우쳤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유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장례는 내면의 슬픔을 적절하게 표시하기 위해 매우 긴요한 儀式(의식)이다. 맹자는 어버이의 장례에는 재물을 아끼지 말라고 권했다. 인색하게 굴다가 부모의 葬送(장송)에 遺憾(유감)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인 듯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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