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조각가 최종태 교수, 에세이집서 두 ‘큰 어른’ 임종 전 모습 회고

  • Array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문병객들을 되레 웃겼던 金추기경…
‘죽음은 통과의례’ 달관한 법정스님…

25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앞마당에서 자신이 조각한 관세음보살상 앞에 서 있는 조각가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성모상을 닮아 유명해진 이 관음상은 천주교와 불교의 아름다운 만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성상으로 남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5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앞마당에서 자신이 조각한 관세음보살상 앞에 서 있는 조각가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성모상을 닮아 유명해진 이 관음상은 천주교와 불교의 아름다운 만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성상으로 남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관세음보살상이 머리에 쓴 관이 무엇입니까.” “화관(花冠)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병은 무엇입니까.” “정병(淨甁).”
“손바닥이 이쪽에서 보이도록 만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구고(救苦).”
1999년 여름, 원로 조각가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80)의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작업실에 길상사 회주였던 법정 스님이 찾아왔다.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으로 전국의 성당에 성모상을 세워온 최 교수에게 관음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다.》

2005년 서울 돈암동성당 50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오른쪽)과 함께. 바오로딸 제공
2005년 서울 돈암동성당 50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오른쪽)과 함께. 바오로딸 제공
최 교수는 “나도 짧게 (세 가지를) 물었지만 스님은 토씨 하나 안 붙이고 외마디 답으로 알려 주었다”며 “꽃관에다, 정화수에다, 세상 고통 구한다는 세 마디 말씀을 듣는 순간 작품은 다 잡혔다”고 회고했다.

최 교수가 자신의 예술과 신앙에 관한 에세이집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바오로딸)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에 종교적 정신적 스승으로 다가왔던 두 사람,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과의 인연을 회고했다.

최 교수는 1958년 가톨릭에 입교했지만 서울대 미대 졸업 후 3개월간 불교 교리를 배웠다. 해맑은 소녀상을 조각해온 그는 “1960년대 중반 반가사유상에서 한국의 조각가로서 추구해야 할 평생의 길을 찾았다”며 “내 신앙적 본향은 가톨릭이지만 원천은 불교였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성모상과 관음상은 영원한 어머니로서 대자대비이고 큰 사랑이며, 맑음과 깨끗함, 고귀함과 온화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성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 추기경에게 “성모상을 만들던 내가 관음상을 만들면 천주교에서 나를 파문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김 추기경은 “일본에서도 천주교가 전파된 초기에 관음상 한 귀퉁이에 작은 십자가를 표시해 기도를 드리며 박해를 피했던 일도 있다”며 격려했다.

어느 날 법정 스님과 함께 차를 타고 서울 삼청터널을 지나면서 사람을 맑게 해주는 ‘정화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법정 스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목이 마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갈증’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최종태 교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최종태 교수.
한 해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두 분의 마지막 모습도 그에겐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최 교수는 2009년 2월 김 추기경 선종 1주일 전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옆에 있던 수녀가 “추기경이 늦잠을 주무셔서 아침 미사를 빼먹었다”고 말하자, 추기경은 최 교수의 귀에 대고 “밖에 나가선 말하지 마”라고 말했고 방 안에 폭소가 터졌다. 최 교수가 “말로가 아니라 만천하에 글로 쓸 것이다”고 했더니 추기경은 또 파안대소를 했다. 그는 “30분간 병실에서 웃다가 나왔다”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찾아온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분은 참으로 성자(聖者)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법정 스님 입적 5일 전 최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장익 주교(전 천주교 춘천교구장)와 동행한 최 교수에게 법정 스님은 일어설 수 없음에 “원(願)은 여전한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며 양해를 구했다. 스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며칠 후 퇴원할 것”이라며 “강원도 산골 집에 가서 눈 구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내오라고 해서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하나씩 나눠 먹었다. 최 교수는 “법정 스님이 눈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은 죽는 날까지 순수함, 맑고 향기로움을 추구하고자 했던 바람이었던 같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죽음을 직접 눈으로 보니, 이분들은 진정 죽음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종교와 예술이 분리되는 21세기에 두 분을 만나 종교와 예술, 삶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고백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