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1>가래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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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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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살라고 길게, 돈처럼 동그랗게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은 한 인간의 생애에서 보면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한 세기만 지나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리 잡곤 합니다. 새로운 음식이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치는 음식 속에는 어떤 유래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요.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 씨가 한 꺼풀씩 벗겨 독자들이 소화하기 쉽도록 한 상 차려냅니다.》

설날이면 가래떡을 썰어 끓인 떡국으로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함께 떡국을 먹으며 덕담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설 풍경이다. 조상님께 올리는 차례 음식과 가족 간의 정을 북돋우는 핵심 매개체가 가래떡인 셈이다. 설날에는 왜 가래떡을 먹는 것이며 가래떡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사전에서 ‘가래’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떡이나 엿 따위를 둥글고 길게 늘여 만든 토막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가래떡은 그러니까 길게 늘여 만든 떡으로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인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기계로 가래떡을 뽑지만 옛날에는 떡메로 내리치며 일일이 손으로 길게 늘여 만들었다. 조선 순조 때의 동국세시기에 가래떡을 만들 때의 특징이 잘 나와 있다. 설날이면 멥쌀가루를 쪄서 목판 위에 놓고 절구로 무수히 내리쳐 길게 늘여서 가래떡을 만든다고 했다. 가래떡을 한자로 장고병(長股餠)이라고 했는데 길 장(長), 가래 고(股)이니 기다란 가래란 뜻이다.

쌀가루를 쪄서 떡메로 내리치며 만드는 떡은 가래떡 이외에 인절미도 있고 절편도 있다. 이 중에서 가래떡이 설날 음식으로 선택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인절미의 경우 찹쌀로 만들어져 새해 풍년을 기원하는 차례용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찹쌀은 주요 곡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편은 멥쌀로 만들지만 길게 늘이지 않는다. 중간에 끊어졌다는 뜻의 절편(切片)이니 길게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설날에 쓰지 않았다.

떡을 절편처럼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지게 만들려면 밀가루 반죽으로 만드는 수타면(手打면)처럼 수없이 내리치는 수고를 더해야 한다. 이처럼 한 단계 수고를 더 들여 둥글고 긴 떡을 만든 이유는 설날 먹는 음식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날은 다른 명절보다 더 특별한 날이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날이어서 원단(元旦)이고, 음양이 교차되는 날로 양의 기운이 살아나 만물이 소생하는 날이다. 설날에는 시작과 부활의 의미가 담겨 있어 하늘과 조상께 차례를 올리며 풍년과 풍요를 기원하는데 가래떡에다 건강과 장수(長壽)의 소원과 재복(財福)의 기원을 담았던 것이다.

가래떡에 장수의 소망을 담은 것은 국수를 장수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과 비슷하다. 긴 국수 면발처럼 기다란 가래떡을 먹으며 오래 살기를 소원했던 것인데 예전 우리나라는 밀가루 음식을 드물게 먹었으니 쌀가루로 만든 떡에다 장수의 소망을 새겼던 것이다. 국수가 장수의 상징이 된 것은 7∼8세기 중국 당나라 무렵으로 당시 조악한 음식을 먹던 사람들이 밀을 곱게 빻은 밀가루로 국수라는 새로운 고급음식을 먹으며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국수의 기다란 면발이 장수의 상징이 됐다.

우리가 언제부터 가래떡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래떡이 길어진 것은 떡메로 떡살을 무수히 내리쳐 떡의 쫄깃쫄깃한 성질을 높이는 동시에 국수 면발처럼 떡을 길게 늘여 장수의 소망을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또 떡을 엽전 모양으로 썰면서 새해에는 집안에 돈이 넘치도록 재복을 내려 달라고 소원했던 것이다.

윤덕노
◇필자 약력

△매일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국제부장, 사회부장, 주간국 부국장 △청보리미디어 출판사 대표 △저서: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음식잡학사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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