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66>혁명의 시대-에릭 홉스봄

  • 입력 2005년 6월 20일 02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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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은 야심만만한 역사학자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떻게 형성되어 발전해 왔을까를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에서 추적하고자 했다. 그는 역량 있고 부지런하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토대를 놓은’ 출발점에서 현대까지 2세기에 걸친 역사적 변화를 훑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시공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의 모습을 다양성 속에서 살피는 작업을 자기 나름대로 해냈다.

4부작(혁명·자본·제국·극단의 시대)은 그 같은 탐색의 결실이다. 완성된 그림은 단선의 역사가 아니라 횡단면의 역사를 보여 준다. 유럽사에 대한 고찰이 주축을 이루되, 다른 지역도 유럽사와 관련을 가지는 한, 저자의 넓은 오지랖 안으로 들어온다.

저자는 18세기 말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정치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중혁명이라 칭하면서, 이를 통해 형성된 사회 체제가 그 후 근대 서양 사회의 기본 모델을 제공하였다고 파악한다. 이중혁명 이후 서양의 여러 사회가 반드시 혁명의 길을 거친 것은 아니었으되, 적어도 이 사회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립한 새 체제는 이중혁명으로 수립된 것과 유사했으며, 또 그러한 모델을 따른 체제만이 근대 세계에서 생존력을 가지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넌지시 말한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저자가 보기에 ‘혁명의 시대’에 역사의 총아로 등장하기 시작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자본의 시대’에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이 시대, 이 세계의 주인은 부르주아였다. 그러나 득의양양한 부르주아의 낙관적 세계는 ‘제국의 시대’에 들어와 파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긴 19세기’의 주인공이었던 ‘패권적 부르주아’와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이상한 죽음’을 의미하는 세계사적 재앙이었다. 그것은 진보가 내포한 자체 모순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 다음 시대, 곧 대부분의 독자에게 익숙한 20세기(‘짧은 20세기’)는 ‘극단의 시대’로 요약된다. 저자에게도 20세기의 성격은 하나의 세력을 주인공으로 해서 규정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엄청난 기술 발전과 대량 살육 및 환경 파괴, 대중의 정치적 등장과 국가 폭력,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극단적 부와 빈곤이 공존했던 시기다. 인류가 이 시기를 살아 넘길 수 있게 해 주었던 원동력이 더 이상 부르주아적 세계관이나 단선적 진보에 대한 순진한 믿음이 아님은 상식일 터! 20세기에 이르면 스케일 큰 홉스봄도 숨 가쁜 고찰 끝에 눈을 잠시 내리깔고 호흡을 고를 뿐, 하나의 굵은 줄기로 세계사를 묶으려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영국 출신의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적 국제주의자이되, (서)유럽중심주의적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평가한다. 적어도 19세기에는 유럽인만이 세계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고 믿는 듯하다. 서유럽적 기원의 문물 사상이라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아 근대 세계의 일원으로 참여하고자 했던 사람의 노력과 그들의 삶의 궤적을 가벼이 취급하는 그의 서술에서는 오만함조차 묻어난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20세기 말에 이르러 두리번거리며 방향을 살피게 되었다는 것은, (서)유럽중심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4부작 중 혁명·자본·제국의 시대는 한길사 번역본이, 극단의 시대는 까치글방 번역본 등이 있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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