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30대 여성의 날벼락 조기폐경…20대도 적잖아

  • 입력 2003년 11월 9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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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이 무겁다. 털썩 주저앉고 싶다. 내 나이 35세. 그와의 사이에 아기를 가질 수 없다니, 아, 좀 더 일찍 결혼했더라면…. 친구들보다 더 빨리 늙은 얼굴에 골다공증(뼈엉성증)으로 고생할 내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왜 이다지도 멀까.

주부 권 모씨는 최근 온몸이 노곤하고 괜히 우울해진데다 몇달째 생리가 없어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로부터 조기폐경(早期閉經)이라는 마른하늘에 벼락같은 진단을 받았다.

50세 무렵 폐경을 맞는 대부분의 여성이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40세 이전에 폐경이 오는 조기폐경 여성은 충격에 휩싸이고 엄청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대한폐경학회(회장 허민 중앙대 의대 교수)가 정한 ‘폐경의 달’인 11월을 맞아 요즘 증가하고 있는 조기폐경에 대해 알아본다.

국내 조기폐경 환자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최근까지 여성 인구의 1% 정도인 20만∼30만명 정도로 추정돼 왔으며 환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 환자 가운데 30대는 물론, 20대도 적지 않다.

▽다양한 원인들=절반 정도는 원인을 모른다. 15∼20%는 류머티즘 질환, 갑상샘 질환, 당뇨병 등 면역체계와 관련한 질병 때문에 난소가 파괴돼 생긴다. 또 암 환자가 방사선 치료나 항암 화학치료를 받을 때에도 월경이 끊긴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면역체계 관련 질환과 20∼30대 여성 암 환자의 증가로 조기폐경 여성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성(性)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 발병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특히 최근엔 조기폐경과 관계 깊은 유전자의 존재가 하나하나 규명되고 있다.

▽‘이른 고목(枯木)’의 슬픔=50세 무렵 폐경이 찾아온 여성은 외형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상실감을 느끼게 마련이고 자신을 ‘고목’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이른 나이에 폐경이 온 여성의 상실감은 이와 비교할 수가 없다.

조기폐경이 돼도 정상적인 폐경 여성과 똑같은 증세를 겪는다. 피부를 비롯해 모든 조직이 약해지고 얼굴이 쉬 빨개지며 우울감에 잘 빠진다. 또 성욕 감퇴, 질(膣) 건조증 등이 생긴다.

여기에다 또 다른 아픔이 추가된다. 우선 다른 여성보다 빨리 늙는다. 피부를 비롯해 모든 조직이 약해진다. 또 각종 폐경 증세가 찾아오는 속도가 빠르고 우울, 좌절의 정도가 심하다. 골다공증, 심장병 등이 갑자기 닥칠 위험도 일반적인 폐경보다 더 크다.

▽치료법과 대책=이른 나이에 폐경이 왔다고 자포자기할 필요는 없다. 조기폐경으로 진단받은 사람의 8∼15%는 자연적으로 ‘샘’이 다시 솟는다.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월경이 다시 올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의학계에서는 폐경 여성의 호르몬요법에 대해 일부 반대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은 호르몬요법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다고 본다. 특히 조기폐경일 경우에는 유방암 난소암 자궁내막암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호르몬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이론이 없다.호르몬요법을 통해 ‘월경의 꽃’이 다시 핀 경우에도 치료를 임의로 중단하면 악화되곤 하므로 꾸준히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증세별로 대증(對症) 치료를 받아야 하며 필요하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 임신을 원한다면 다른 여성의 난자를 제공받아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법적 문제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생활요법과 예방법=조기폐경 환자는 호르몬치료를 받으면서 자극성이 강한 음식, 카페인 음료, 술, 담배를 멀리 하고 하루 30분 이상 걷는 운동을 한다. 콩, 땅콩, 호두, 시금치 등의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도 필수. 질 건조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질에 에스트로겐 연고나 좌약을 사용하면 성생활이 한결 나아진다. 이와 함께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전희(前戱)를 늘리면 성기능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행히도 조기폐경에 대한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

조기폐경도 일반적 폐경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폐경이 되기 전에 생리가 불규칙해지면서 각종 폐경 증세가 조금씩 나타난다.

따라서 가족력이 있거나 담배를 피우는 여성, 볼거리를 앓아 조기폐경 위험군에 속하는 여성은 주의를 기울이다가 전조 증세가 나타나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아기가 없다면 미리 난자를 냉동시켜 불임의 슬픔을 피하도록 한다. (도움말=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이병석 교수,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조수현 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무리한 다이어트-스트레스 무월경 불러▼

“주위에서 다이어트를 심하게 해 폐경이 빨리 왔다던데….”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조기폐경 환자가 의사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기폐경과 무월경을 혼동해서 생긴 것. 조기폐경은 무월경의 원인 중 하나이지만 무월경 자체는 아니다.

심한 식이요법이 무월경은 일으키지만 조기폐경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월경은 선천적으로 월경과 관계있는 간뇌, 뇌하수체, 난소, 자궁, 질 중 한 군데에 이상이 있거나

염색체 이상, 처녀막 폐쇄 등으로 16∼18세까지 월경이 한번도 없는 ‘원발형’과 월경이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3개월 이상 월경이 없는 ‘속발형’으로 구분된다. 원발형은 약물요법이나 수술 등으로 치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근원적 치료가 안된다. 속발형은 예방과 치유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속발형은 조기폐경 때문에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관련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조기폐경이 원인이 되는 경우와 관련이 없는 경우의 가장 큰 차이점은 폐경 증세의 여부.

속발형은 상당수가 스트레스나 심한 다이어트, 식사부진 등 때문에 생기며 원인을 해결하면

월경이 다시 시작된다. 난소의 외형은 정상이지만 기능이 떨어져 원발형 무월경이 생기면

호르몬을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치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난소에 난자가 덜 자란 채 빼곡 들어차는

‘다낭 난포 증후군’도 무월경의 원인. 이 경우 살이 찌거나 굵은 털이 나는 증세가 따르며

불임의 원인이 되므로 조속히 치료받는 것이 좋다. 증세가 가벼우면 배란촉진제를 쓰고 내시경으로

난소표면에 상처를 내는 시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심하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위장약, 피임약 등 약물 복용으로 월경이 끊긴 경우 약 복용을 중단하면 월경이 돌아온다.

이 밖에 뇌하수체 종양, 자궁결핵, 자궁내막 손상 등이 있어도 월경이 사라지기 때문에

3개월 이상 월경이 끊긴다면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도록 한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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