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한국인 최초로 맥킨지 디렉터 오른 최정규씨

  • 입력 2003년 7월 3일 1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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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컨설팅의 최정규 디렉터. “즐기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택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건 돈을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맥킨지컨설팅의 최정규 디렉터. “즐기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택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건 돈을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남자가 불행해지는 3대 조건이 있습니다. 초년 출세, 중년 상처(喪妻), 말년 극빈. 첫 번째 조건부터 해당되면 안 되잖아요.”

세계적인 컨설팅사 맥킨지 서울사무소의 최정규(崔晸圭·38) 디렉터는 벌써 10여분 째 취재 주제를 놓고 기자와 ‘대치’하고 있다. ‘성공 스토리’ 쪽으로 가자는 기자와 “진짜 잘 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웃어요”라며 고개를 흔드는 최 디렉터.

그는 최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맥킨지의 디렉터 자리에 올랐다. ‘시니어 파트너’에 해당하는 디렉터는 맥킨지 인터내셔널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결국 한국의 간판급 컨설턴트인 그가 보는 ‘인간경영, 기업경영’을 주제로 삼기로 했다.

최정규 디렉터가 최근 읽고 있는책들, '논어'가 맨 위에 놓여있다.

● 힘들수록 웃어야 하는 CEO

30대에 디렉터로 승진한 케이스는 전 세계 맥킨지 사무소 어디에서도 흔치 않다. 세계적으로 맥킨지에서 활동하는 6000여명의 컨설턴트 중 디렉터는 250명 정도. 맥킨지 서울사무소의 경우 100여명의 컨설턴트 중 도미니크 바튼 소장과 최정규씨 두 사람만이 디렉터다. 일반 컨설턴트는 주니어 파트너가 되는 순간부터 회사 지분참여가 가능해지며 이보다 위 등급인 시니어 파트너, 즉 디렉터가 되면 일반주주에서 대주주로 격상되는 셈이다.

‘신흥국가 금융기관 컨설팅 담당’ 리더 6명 중의 1명이기도 한 그는 1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낸다. 바쁘기로 소문난 최 디렉터를 지난달 23일 서울 태평로 파이낸스센터 빌딩 맥킨지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고속 승진’의 비결을 꼽으라면….”(기자)

“글쎄요, 운이 좋았죠.”(최 디렉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대답인거 아시죠.”(기자)

“(잠깐 뜸을 들였다가) 한계를 아는 거죠. 못하는 건 안 합니다.”(최 디렉터)

그는 자신의 약점을 개선하는 대신 포기한다. 약점을 고치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강점을 더욱 강화하는 데 쓴다. 말이 쉽지 클라이언트에게 자신감으로 승부하는 컨설턴트가 약한 면을 내보이고 인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는 맥킨지의 대표급 컨설턴트지만 조금이라도 자신 없는 분야의 컨설팅 제의가 들어오면 나서지 않는다. 대신 맥킨지에서 해당 분야의 최고 컨설턴트를 수소문해서 데리고 와 팀을 꾸린다. 전문가를 앞에 앉히고 자신은 ‘보조’ 역할을 한다.

최 파트너를 만나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웃는 얼굴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의 뼈아픈 실패담을 얘기할 때도 웃는다. 그에게 웃음은 ‘전략’이다.

어느 조직이건 상사의 얼굴이 굳어있으면 부하는 더 피곤해진다. ‘내가 뭘 잘못 했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하게 된다. 부하들에게 이런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궁극적으로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리더는 웃어야 한다. 그는 경영난을 겪고 있는 클라이언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게 가장 먼저 “웃으세요”라고 충고해 준다.

●‘맥킨지’라는 조직

맥킨지는 기업경영의 큰 틀을 제시해주는 전략 컨설팅회사 중 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크고 명성이 높다. 외부에 잘 공개되지 않은 맥킨지 조직. 중역이 된 최 디렉터에게 “그 내부는 어떻게 굴러가느냐”고 물었다.

최 디렉터는 ‘자발성(Initiative-taking)’을 맥킨지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모든 일을 당연히 보지 말고 한번 ‘틀어서’ 보라는 것.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틀리면 싸우는 능력이 환영받는 문화다. 지시를 따랐다가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왜 그때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느냐”는 책임이 본인에게 떨어진다. 맥킨지 직원평가서에 보면 ‘합의하지 않을 의무(obligation to dissent)’ 항목이 있다. 상사가 틀렸을 때 얼마나 잘 싸웠나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물론 감정으로 싸우면 안 되고 논리와 근거로 싸워야 한다.

또 다른 특징은 철저한 팀워크.

컨설팅업계에서는 ‘맥킨지 마피아’라는 말이 있다. 맥킨지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동료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자료를 구해주는 것에서부터 회의에 참석하는 것까지 동료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대로 인사 평점에 반영된다. 동료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그를 ‘전문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맥킨지의 수평적 조직문화가 있다.

최 디렉터는 한국사무소의 최고위급 경영진이지만 내부적으로 ‘(시니어) 파트너’ ‘디렉터’ ‘대표’ 등의 존칭으로 불려본 적이 없다. 비서에게도 “최정규씨”로 통한다. 존칭 문화에 익숙한 외부인들만이 그의 호칭을 두고 고민할 뿐이다. 호칭과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수평적 관계가 강조되는 것은 컨설팅이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직업이기 때문. 조그만 호칭의 차이가 지적 호기심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맥킨지의 생각이다.

●나는 이런 때 그만두고 싶었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최 디렉터는 미국 UC버클리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후 93년부터 맥킨지에서 근무해왔다. 33세 때인 98년 최연소 한국인 주니어 파트너가 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런 그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낀 때가 있었을까.

“왜 저라고 없었겠습니까. 10년 정도 일하면서 3, 4번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가장 그만두고 싶은 때는 ‘능력이 달린다’는 생각이 들 때. 컨설턴트에게 ‘능력’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일이다(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개념을 설명하면 곧바로 사례를 들고, 언제나 순서를 정리해 가면서 얘기했다).

논리적인 문제 접근과 과거 사례를 통한 패턴 분석을 하다보면 해답은 “보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 해답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그것을 알기 쉽게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금융기관 리스크 관리가 주특기인 그는 97년 금융위기 직전 은행들에게 “신용 리스크에 심하게 노출돼 있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장사하려고 그러느냐”면서 그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 그는 컨설턴트로서의 자신의 능력에 대해 커다란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든다.

“프로는 아름답다고요? 아닙니다. 프로는 추합니다. 며칠동안 일 때문에 씻지도 못한 지저분한 모습이 바로 프로의 모습입니다. 항상 스케줄에 쫓겨 밤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가족과 친구도 제대로 못 챙기는 것이 프로의 생활입니다.”

최 디렉터가 갑자기 생각난 듯 “기자와 컨설턴트의 세 가지 공통점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첫째, 오늘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둘째, 화이트칼라 내지 골드칼라로 알려졌지만 실상 블루칼라 직업이다. 셋째, 개인 생활이 전무하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조그만 실수를 저질렀을 때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컨설턴트에게 중대 실수는 컨설팅 내용이 틀리는 것. 그렇지만 이런 큰 실수는 용서된다. 다음 기회에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그러나 미팅에 늦었을 때, 어휘 선정을 잘못했을 때, 위기의식을 너무 강하게 부각시켜 클라이언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때 등의 작은 실수는 컨설팅업계에서 쉽게 용서가 안 된다. 그는 이를 두고 “‘내용’의 실수는 용서돼도 ‘스타일’의 실수는 용납이 안 된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한 시간 정도 인터뷰를 한 최 디렉터가 다음 약속 때문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미팅에 늦는 것은 용서가 안 된다니 더 이상 잡아둘 수는 없는 일. 일단 취재 수첩을 덮었다. 곧바로 일본으로 출장 간 최 파트너에게 후속 취재를 하려니 국제전화를 통해야만 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논어 세 문장에 해답이 있다"▼

요즘 ‘논어(論語)’를 읽고 있다는 최정규 파트너. 그는 “논어의 처음 세 문장에 경영의 모든 지혜가 함축돼 있다”고 설명했다.

1.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여기서 키워드는 ‘익히면’이다. 많은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익히는 데는 게으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집요한 실행이 중요하다.

2.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벗’은 ‘뜻이 맞는 사람’을 의미한다. 기업은 구성원들 사이에 뜻이 맞아야 한다. 직원과 경영진간에, 그리고 경영진 사이에 서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비전은 고사하고 현재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생각도 제각각이다.

3.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온(성낼) 不亦君子乎)=많은 기업이 외부 컨설팅 내용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부터 보낸다. 곰곰이 내부를 되돌아보기보다는 “그거 다 아는 얘기다” “웬 교과서 같은 내용이냐”는 반응이다. 과연 교과서 같은 내용을 실행에 옮겨본 적은 있는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편견 없이 평가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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