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바라는 풀잠자리 알"…곤충학자들 확신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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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 우담바라로 나타나셨네.”

23일 저녁 기자가 청계사를 찾아가는 길 곳곳에는 3000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 꽃을 칭송하는 현수막이 여기 저기 걸려 있었다. 이미 어둠이 깔렸는데도 여전히 차량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우담바라 꽃이 피어 있다는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진 극락보전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눈에 보일 듯 말 듯 실낱같은 꽃 21송이가 나란히 피어 있었다. 법당을 내려와 사무실에서 스님을 만났다.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보도가 나간 뒤 절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급증해 일요일인 22일에는 2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17일 거행된 ‘우담바라 친견 108일 무차대법회’에는 임창렬 경기도지사 내외, 강상섭 의왕시장, 이회창 총재 부인인 한인옥 여사 등 30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식물도감 어디에도 우담바라(udumbara)라는 식물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희승 박사가 펴낸 국어대사전을 보면 우담바라는 ‘인도의 상상 속의 식물로서, 3000년에 한 번씩 꽃이 핀다는 것으로, 이 꽃이 필 때에는 금륜명왕(金輪明王)이 나타난다 함’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곤충학자들은 청계사의 ‘우담바라 꽃’은 풀잠자리의 알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기자는 스님에게 어떤 근거로 이 생명체를 우담바라라고 단언하는지 물어보았다. 스님은 “종교는 과학을 초월한 불가침의 영역”이라며 세상에 이렇게 작은 꽃은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과학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님은 최근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우담바라 꽃이 정말 알이라면 이렇게 꽃처럼 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대전대 생명과학부 남상호 교수(곤충학)는 “애벌레가 알을 빠져나갈 때 알 껍질이 벌어지기 때문에 마치 꽃이 핀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사진 속의 우담바라 꽃은 이미 애벌레가 빠져나간 빈 알 껍질이라는 것이다. 남 교수는 “풀잠자리 알 껍질은 실크 성분이기 때문에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더라도 잘만 보존하면 그 형태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 교수는 기자가 보낸 근접 촬영 사진을 보고 “교수직을 걸고 말하겠다”고 전제한 뒤 “이건 풀잠자리 알이 100% 확실하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의아해 했다.

곤충분류학자인 충북대 농생물학과 조수원 교수 또한 “TV를 보다가 이 소식을 처음 접했다. 어떻게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며 우담바라 보도에 대해 어이없어 했다.

풀잠자리는 외견상 잠자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부류에 속한 날벌레이다. 주로 숲에 서식하는 풀잠자리는 봄과 가을에 걸쳐 나뭇잎에 알을 낳는다. 이때 다른 곤충들이 알을 발견하지 못하게 길쭉한 알자루를 잎에 붙이고 그 끝에 알을 얹는다. 이번 경우처럼 가을에 태어나는 애벌레들은 번데기의 형태로 겨울을 난다.

의왕시에서 과천시에 걸쳐 있는 청계산은 수목이 울창해 다양한 곤충들이 살고 있고, 풀잠자리류만도 10여종이 발견되고 있다.

조 교수는 “풀잠자리는 9월에서 10월에 특히 많이 눈에 띈다”며 “조금만 신경을 써서 주위를 둘러보면 풀잠자리 알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자동차 거울 등 여기저기서 우담바라 꽃이 피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 우담바라 꽃 소동은 못 보던 생명체가 불상에 붙었다고 실존하지 않는 상상 속의 식물인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밝힌 불교계와 이것을 정확한 조사도 없이 마치 사실인 양 보도한 일부 매스컴의 무지가 빚어낸 합작품이라 하겠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기자>alchimis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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