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 안 가져왔을 때 꿀팁”…급식세대 패자 자리 넘보는 ‘급식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9일 16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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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버그룹 ‘급식왕’. 이지운 문화부 기자
유투버그룹 ‘급식왕’. 이지운 문화부 기자

유튜브에 범상치 않은 이들이 나타났다.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올해 5월 난데없이 나타나 다섯 달 만에 구독자 5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최근 총 재생수 1억 회를 기록했다. ‘급식 세대’의 패자 자리를 넘보는 이 크리에이터 그룹은 이름부터 ‘급식왕’이다.

공부를 잘하지만 엉뚱한 구석이 있는 광자(정광진), 놀 궁리만 하는 두더지(박강균), 꼰대 같지만 정 많은 발가락쌤(박병규)이 주인공. ‘체육시간에 이런 친구 꼭 있다’, ‘준비물 안 가져왔을 때 꿀팁’ 등 학생들의 일상을 소재로 10분 안팎의 꽁트를 선보인다. ‘수행평가’라는 제목으로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볼 법한 게임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4일 급식왕 3인방을 만났다.

“지난해까지 드라마 보조 작가로 일했는데, 연기에 계속 미련이 남더라고요. 유튜브 하려고 작가 그만둔다고 했을 땐 다들 미쳤다고 했죠.”(박병규)

이들의 인연은 10년 전 SBS에서 운영하는 공개코미디 극장에서 한솥밥을 먹던 무명 개그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의 김병만’으로 우뚝 설 날을 기약하며 배고픔을 견뎠지만 SBS의 공개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마저 폐지되는 마당에 무명 배우들에겐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유튜브는 무대를 잃은 개그맨들의 마지막 돌파구였다. 박병규 씨는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올해 1월부터 코미디 영상들을 올렸지만 반응은 신통찮았다. 5개월 동안 구독자 수는 고작 3000여 명. 유튜브 시청자 층의 70%가 10대 이하라는 ‘썰’을 듣고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스승의 날 무렵 구성을 완전히 바꿔 올린 ‘급식왕’이 유튜브 인기동영상 1위에 올랐을 때, 멤버들은 ‘누군가 장난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단다.

유투버그룹 ‘급식왕’. 이지운 문화부 기자
유투버그룹 ‘급식왕’. 이지운 문화부 기자

개그맨 생활을 하며 갈고닦은 꽁트를 선보이되 야외 촬영을 통해 극장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B급 정서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싼티 나는’ 촬영기법과 편집을 사용한다. 슬로우 모션이 필요한 장면에서 영상을 느리게 재생하는 게 아니라 배우가 천천히 움직이며 촬영하는 식이다.

“구독자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요즘 아이들의 관심사와 유행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새 영상 콘티를 미리 보여주며 ‘재미있을 것 같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정광진)

“중학생들이 (30대인) 저희가 진짜 중학생인 줄 알고 ‘야 두더지!’ 하고 부르기도 해요. 그럴 때면 그냥 친구 대하듯 해 주죠. 저희가 그만큼 아이들 코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라 기분 좋습니다.”(박강균)

세 사람은 콘텐츠 생산의 원동력으로 ‘싸움’을 꼽았다. 합숙 생활을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논쟁을 하며 새 아이템을 기획한다는 것. 롤 모델로는 미국드라마 ‘빅뱅이론’을 꼽았다.

“캐릭터의 특징과 색깔이 선명해야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두더지와 광자, 발가락쌤도 ‘빅뱅이론’의 쉘든과 레너드처럼 오래도록 정 붙일 수 있는 캐릭터로 남고 싶습니다!”(박병규)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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