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3> 칼을 이긴 나무껍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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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떼는 암사자만 있는 무리에게는 겁 없이 덤벼든다. 하지만 대장 수사자가 나타나면 도주한다. 이 광경을 보면 군대는 양보다 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장 수사자도 메뚜기 떼의 공격을 받으면 살아날 수 없다. 양과 질의 문제는 전쟁사에 영원한 고민이다.

저장성에 파견된 명나라의 청년 장수 척계광은 질에 대한 양의 무력감을 절감하고 있었다. 숫자만 많았지 오합지졸이었던 명나라 군대는 직업전사로 구성된 소수의 왜구에게 무참하게 패하고 있었다. 명나라군은 훈련도도 낮았지만 군사비 문제도 심각했다. 대병력을 운용하려면 그만큼 많은 무기와 장비를 생산해야 한다. 비용도 높아지고, 생산시간도 오래 걸린다.

척계광은 윈난성에 파견돼 미얀마 지역의 원주민과 싸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미얀마 주민들은 죽창과 나무껍질로 만든 방호구를 들고 명군에 저항했다. 대부분의 명군은 이 빈약한 군대를 비웃었지만 척계광은 그들의 자연산 무기에서 커다란 아이디어를 얻었다. 가지가 주렁주렁 달린 생대나무는 의외로 칼과 창을 막는 데 효과적이었다. 등나무껍질을 감아서 만든 방패는 질기고 아무리 강력한 일격에도 절대로 한 번에 쪼개지지 않았다.

낭패와 등패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이 무기는 일본도의 공격을 막는 데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값이 싸서 빠르고 쉽게 대병력을 무장시킬 수 있었다. 척계광은 여기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더해 원앙진이란 새 전술을 창안했고, 이 전술로 왜구를 격퇴해 명나라의 영웅이 됐다.

양도 질이 받쳐줘야 하고 질도 양이 따라줘야 한다. 양과 질, 음과 양, 세상의 모든 것은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전쟁사를 보면 간혹 양이 안 되니 질로, 질이 안 되니 양으로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 왜구에 대한 명군의 초기 대응이 물량공세로 질을 이겨 보자는 식이었다. 어렵다고, 보기 싫다고 하나를 배제하고 하나를 강화해서 이겨 보자는 식으로 싸우면 필패다.
 
임용한 역사학자


#전쟁사#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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