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이즈, 콘돔도 뚫는다는데 천만에, 100% 예방

  • 입력 2003년 12월 7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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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감염인은 당뇨졍이나 고혈압 환자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치료만 받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사회의 편견 때문에 큰 괴로움을 겪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에이즈 감염인은 당뇨졍이나 고혈압 환자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치료만 받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사회의 편견 때문에 큰 괴로움을 겪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에이즈 환자를 오랫동안 돌봐온 의사 선생님은 대체로 친절하고 세심하게 대해줍니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무심코 말을 던져 우리 가슴을 찢어 놓곤 해요. 또 처음 만나는 간호사들은 왜 그렇게 한결같이 싸늘한지…. 간호사들도 오래 환자를 보면 달라지는데, 아마 에이즈에 대해 잘 몰라 그런 것 같아요.”

―에이즈 감염인 K씨

“작년 말에 45세로 숨진 한 환자는 성폭행을 당해 에이즈에 감염됐어요. 이 분은 죽음을 앞두고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병원 7곳에서 모두 거절하더군요. 비싼 수술도구를 다 버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으니 참 답답했습니다. 의사들조차 이렇게 에이즈에 대해 모르니….”

―에이즈 환자 보호소에서 일하는 간호사》

한국에서는 의료진조차 에이즈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일반인 사이에서 온갖 풍문과 잘못된 상식이 난무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이즈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데도 에이즈를 천형(天刑), 괴질(怪疾)로 보는 시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국립보건원과 각종 에이즈 단체의 홈페이지에 자주 올라오는 질문을 통해 에이즈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에이즈 감염인과 성관계를 가지면 무조건 에이즈에 감염되나.

“감염인과 한번 성관계를 가져 에이즈에 걸릴 확률은 0.1∼1% 정도다. 남성이 감염인일 때 여성에게 옮기는 확률이 반대일 경우보다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항문성교를 하면 직장 점막이 파열되므로 일반적인 관계 때보다 위험하다. 오럴섹스로 감염됐다는 보고도 있지만 확률은 극히 낮다. 이론적으로는 치주염이 있는 감염인과 입안이 헐어있거나 상처가 나 있는 사람이 프렌치키스를 했을 때도 바이러스가 옮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 키스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사례가 학계에 보고되기는 했다.”

―남편이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임신했다면 아기도 에이즈에 감염되나.

“그렇지는 않다. 임신부가 에이즈 치료제를 먹지 않았을 경우 30% 정도가 수직감염되고 약을 먹는다면 8%로 뚝 떨어진다. 최근 한 병원에서 부부의 간절한 바람에 따라 아내가 예방 차원에서 약을 먹으며 아기를 가졌는데 아내와 아기 모두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다.”

―콘돔 조직 사이로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콘돔만으로는 에이즈를 예방하지는 못한다던데….

“인터넷에 나도는 허무맹랑한 말이다. 배우자가 에이즈 감염인일지라도 콘돔만 사용하면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다. 현재 판매되는 콘돔은 대부분 라텍스 소재인데 에이즈 바이러스가 통과하지 못한다. 찢어지지만 않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

―내시경 검사나 치과 진료를 하다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데….

“병의원에서 정해진 소독 지침에 따라 해당기구를 소독하면 감염을 100%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병의원에서 기구를 불충분하게 소독하고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면 전염 가능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개연성은 거의 없으므로 안심해도 좋다.”

―여성이 에이즈 감염인인 경우 남성이 질외사정을 하면 감염을 피할 수 있나.

“피할 수 없다. 에이즈를 예방하려면 외도를 피하고 그런 경우가 생기면 무조건 콘돔을 껴야 한다.”

―에이즈 환자와 변기를 함께 쓰면 감염 위험이 높지 않은가.

“변기를 함께 쓴다고 감염되지는 않는다. 단 면도기를 함께 쓸 경우 상처가 있다면 감염될 수도 있다. 최근 호주에서 면도기를 함께 쓴 자매 사이에서 감염된 경우가 학계에 보고됐다.”

―에이즈 감염인과 함께 살면 모기나 벌레를 통해 바이러스가 옮기지는 않나.

“에이즈 바이러스는 숙주인 사람을 떠나면 곧 죽는다. 더구나 모기의 몸속에선 둥지를 틀 곳이 없다. 따라서 감염인의 피를 빤 모기의 몸속에서 에이즈 바이러스는 소화돼 사라진다.”

―에이즈 환자는 발효음식이나 날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던데….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많이 떨어진 경우 다른 사람에게는 문제가 안 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에 고충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발효음식이나 회, 육회, 깨끗하게 씻지 않은 과일과 채소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도움말=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오원섭 교수,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최준용 강사)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왜곡된 정보에 "겹고통"▼

유엔에이즈기구(UNAIDS)는 최근 세계적으로 에이즈 감염인이 4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올해 들어 새로 발생한 에이즈 감염인의 수가 사상 최고라고 발표했다.

이런 실정이어서 많은 국가들이 에이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범국가적으로 예방 및 퇴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도 에이즈 확산의 심각성이라는 면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일반인에게 에이즈를 알리는 교육이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에이즈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감염인들을 음지로 숨어들게 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일찌감치 에이즈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정부 차원에서 교육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필자의 모국인 영국은 에이즈 확산 억제에 성공한 나라 중 하나다.

영국은 정부 주도로 ‘교육만이 에이즈의 유일한 백신’이라는 주제의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정부는 특히 언론을 적극 활용한 홍보활동을 벌였다. 보건부 장관은 자신의 서명이 담긴 편지를 전 국민에게 발송하기도 했는데 그 편지의 서두는 ‘몰라서 죽는 일이 없기를(Don’t die of ignorance)’이었다.

이런 활동의 결과 1987년 1월 실시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9%가 에이즈 교육 광고를 보았다고, 73%가 에이즈를 예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영국을 벤치마킹해 1993년 ‘에이즈 방지 7개년 작전’을 수립했다. 우선 예방 홍보 교육에만 전년 대비 30배의 예산을 투입해 대대적으로 홍보 활동을 펼쳤다. 또 에이즈 감염인을 장애인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사회복지혜택을 받도록 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에이즈에 대해 필수교육을 하는 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에이즈에 대한 기본적인 대비책이 예산, 조사, 교육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이 때문에 아직도 이 사회에선 에이즈가 ‘공포의 병’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러나 의학기술의 발달과 신약 개발로 에이즈는 당뇨병처럼 관리만 잘하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질환이 됐다.

에이즈는 이미 이 땅에 존재한다. 또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더 이상 남의 나라의 일도, 특정인의 일도 아닌 나의 일, 내 가족의 일이 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에이즈와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올바른 교육을 통해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다. 한국 정부는 에이즈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대대적인 국민교육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마크 팀니(한국MSD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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