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 <4> 헝가리 출신 미녀기사 코세기 “바둑은 나의 모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6일 15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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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의 한국기원 프로기사 코세기 디아나 초단은 “아직도 바둑 실력을 늘리고 싶다”고 말한다.
헝가리 출신의 한국기원 프로기사 코세기 디아나 초단은 “아직도 바둑 실력을 늘리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은 바둑이 더 늘고 싶다. 최소한 여류대회 본선 멤버가 되는 게 나의 목표다."
벽안(碧眼)의 여자 프로기사 코세기 디아나 초단(31)은 당분간 고국 헝가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바둑 프로가 됐지만 아직 원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세기(헝가리는 한국처럼 성이 앞에 온다)의 6년 2개월간 프로 성적표는 92전 7승 85패. 고국을 떠나 10년 동안 한국에서 바둑만을 위해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성에 차지 않는 성적이다.
25일 경기 군포시 산본에 있는 국제바둑도장 비바(BIBA)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능숙한 한국어로 인터뷰를 했다.

●한국과의 인연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1회 대한생명배 세계여자바둑대회 때. 헝가리 대표선수로 참가했다. 그때가 14세. 바둑 입문은 9세 때. 아마추어 2단 실력이던 아버지에게서 바둑을 배워 2년도 안돼 백돌을 빼앗았다. 일본 바둑 유학을 염두에 두고 일본어를 배웠고 2000년에 일본에서 열린 바둑대회에 참가한 뒤 2개월 동안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 도장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국제바둑도장 BIBA의 지도사범 코세기 디아나 초단. 김승준 9단, 미국출신 학생 리처드, 프랑스 출신 학생 토마, 코세기 초단(왼족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국제바둑도장 BIBA의 지도사범 코세기 디아나 초단. 김승준 9단, 미국출신 학생 리처드, 프랑스 출신 학생 토마, 코세기 초단(왼족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이후 2003년 국무총리배 아마추어 세계대회 때 한국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명지대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프로 초단)와 김원 도장에서였다. 2004년 김원 도장에서 배우다 비자문제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남 교수에게 e메일로 "바둑을 배우고 싶다"는 간절한 뜻을 밝혀 2005년 명지대 바둑학과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남 교수의 주선으로 한국기원 여자연구생도 될 수 있었다. 4승 1패의 성적으로 4조로 들어간 것. 당시 우승자는 김혜림으로 현재 프로 2단. 그는 "명지대 기숙사에 머물며 매주 주말 왕십리로 나와 연구생 리그전에 참가하는 게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그 무렵 '강동명인' 바둑도장에서 2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실력을 키웠다. 당시 같이 배운 학생은 현재 싱가포르에서 바둑을 가르치고 있는 조미경 초단. 하루 10시간 이상 바둑공부를 한 때문인지 연구생 4조에서 3조로 올라갔다.

2006년 여름에는 명지대 기숙사를 나와 왕십리에 원룸을 얻고 양재호 도장에 나가며 본격적으로 바둑 공부에 돌입했다. "김승준 9단과 목진석 9단이 한국 생활 안착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실력도 늘어 여자 연구생 2조까지 올라갔다.

●꿈에 그리던 프로 입단 제의, 그러나…

2007년 겨울, 그녀에게 운명적인 제의가 들어왔다. 한국기원 특별입단이다. 보통은 입단대회를 거쳐 프로가 되지만 외국인인 경우에 실력이 조금 떨어져도 바둑 보급 등을 위해 특별히 입단시키는 제도. 이미 2002년 러시아 출신의 쉭시나 스베틀라나와 D 알렉산더가 특별 입단한 바 있다. 이들은 객원기사로 입단해 지금은 고국에서 바둑 보급 활동을 하고 있다.

헝가리 동물원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한 때. 왼쪽부터 코세기 디아나 초단, 아버지, 어머니, 4세 위 오빠.
헝가리 동물원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한 때. 왼쪽부터 코세기 디아나 초단, 아버지, 어머니, 4세 위 오빠.
당시 코세기에게는 특별입단 제의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바둑공부를 한 지 2년 반밖에 되지 않았고 정식으로 입단대회를 거쳐 프로가 되고 싶었다. 남 교수도 "과연 그게 좋은 지 어떨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프로가 돼 빨리 실력을 늘리는 게 낫다" "이번 기회를 놓치고 정식 입단을 하지 못하면 귀한 기회를 날릴 수도 있다"는 조언이 더 많아 제의를 받아들였다. 2008년 1월 4일 한국기원 상임이사회에서 특별 입단이 허용됐다. 226번째 프로기사다. 그 뒤로도 65명의 후배가 입단해 현재 한국기원 소속 프로 기사는 291명.

그의 신분은 스베틀라나나 알렉산더와는 다르다. 그는 객원기사가 아니라 정(正)기사다. 당시 한국에서 계속 프로 생활을 하겠다는 그의 뜻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프로 기사처럼 40세가 되면 복지수당을 받을 수 있고, 후에 연금도 받게 된다.

입단 3개월 만의 첫 대국에서 그는 귀중한 승리를 따낸다. LG배 예선이었고 상대는 김덕규 8단. 그는 "6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바둑 내용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바둑을 업으로 하는 승부사답게 아프게 진 경우도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6월 지지옥션배 여자조 예선에서 윤지희 3단과 둔 바둑도 잊을 수 없다. "중앙 대마를 잡아 거의 이겼는데, 판단착오로 바둑을 졌다"고 아파했다.
그는 바둑 말고 '외도'할 기회도 있었지만 바둑을 택했다. 2010년 KBS 인기프로였던 '미녀들의 수다'에 나와 달라는 제의를 거절했다. 또 최근에는 '강연 100도씨'에 나와 달라는 제의 역시 "아직 성공한 인물이 아니다"며 딱 잘랐다.

●BIBA! VIVA!

그의 제2의 바둑 인생은 국제바둑도장 '비바'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2011년 1월 김승준 9단(국수전 해설 기사)이 해외의 아마추어를 상대로 바둑도장을 열 때 지도사범으로 합류한 것.
이후 지금까지 3년 동안 비바를 거쳐 간 해외 아마추어는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체코 터키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태국 홍콩 싱가포르 등 22개국 출신 77명.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1년 이상 배웠던 친구도 있었고, 옥스퍼드대 출신의 수학자도 있었다.

이들을 유치하는 데 코세기의 공이 컸다. 지금도 페이스북이나 e메일을 통해 비바를 홍보하고 기존 회원들도 관리한다. 학생들을 위해 신포석을 영어 교재로도 만들었다.

코세기 디아나 초단이 헝가리 바둑 꿈나무에게 상을 주는 모습.
코세기 디아나 초단이 헝가리 바둑 꿈나무에게 상을 주는 모습.
그의 일과는 도장에 나오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 반까지 계속된다. 리그전을 둔 외국 학생들에게 복기를 해주거나 질문을 받기도 한다. '리그전'이라는 것은 같은 층의 '진석기원'에서 배우는 한국 초등학교 '고수'들과 외국 학생들의 대결을 말한다. 지금 배우고 있는 학생 중 프랑스 국적의 토마는 아마 5단으로 명지대 바둑학과 입학을 준비 중이고 미국 출신 리처드는 미국에서 입단을 준비 중이다.

코세기는 한국에 친구가 없는 외국 학생들과 주말에 족구를 할 때도 있다. 그는 11세 때 어린이 철인3종 경기에도 출전하고, 축구선수로도 뛸 정도의 만능 스포츠우먼. 그는 술도 세다. 여자 프로 최고의 술 실력자인 김효정 프로기사회장과 바둑으로 치면 맞바둑 정도의 실력. 그는 요즘 애완동물 기니피그를 키우는 재미에도 푹 빠져 있다.

"한국에서 오래 살기는 했어도 아직 문화적 차이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하고 같이 놀 때도 있어 비교적 외로움을 덜 느끼며 지내고 있다."

요즘 그는 김승준 9단이 중국 후베이(湖北) 성 우한(武漢)에서 바둑 꿈나무를 키우는 일로 중국에 가 있는 기간이 많아 사실상 비바 원장 역할을 맡고 있다. 사무실 임차료와 학생 유치 등의 문제로 걱정도 적지 않다. 요즘 부업으로 바둑인터넷 사이트인 kgs에서 바둑을 가르치기도 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에게 바둑이 무엇이고, 꿈이 뭐냐고 물었다.
"9세 때 아버지에게서 바둑을 배운 이후 지금까지 22년을 바둑에 빠져 살았다. 지금은 헝가리가 아닌 한국에서 바둑과 함께 10년째 살고 있다. 내게 바둑은 모든 것(everything)이다. 아버지가 헝가리로 돌아와 바둑도장을 차리자는 제의를 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바둑의 본토 한국에서 실력을 더 늘리고 싶다. 그리고 인생에서는 행복해지고 싶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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