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들의 ‘왕언니’ 아나벨 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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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6일 20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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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마을’로 알려진 경기도 안산 원곡동 일대가 지난 5월 안산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돼 세계 속의 작은 아시아로 변모하고 있다. 안산시 전체 인구 중 등록된 외국인은 지난 9월말 기준 3만3천 여 명이다. 이 가운데 약 1만5천 여 명이 원곡동 다문화마을특구에 살고 있다. 안산시는 지난해 안산단원경찰서 원곡외국인특별치안센터를 개소해 늘어나는 외국인들의 민원을 처리해 오고 있다. 이곳에는 이주민들의 ‘왕언니’로 통하는 여자 경찰이 있다. 지난해 7월 중앙경찰학교를 외사특채로 졸업하고 이곳으로 배치 된 아나벨 카스트로(42)경장이다.

필리핀에서 8년 간 생물 교사로 일했던 아나벨 경장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매주 배달되는 주간지를 통해 세계 뉴스 속의 한국을 보는 게 전부였다. 1995년 친구 소개로 남편(48)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해 공부하며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1997년 결혼과 함께 한국인이 됐다. 그는 남편을 따라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 마을인 전남 함평군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2남 1녀를 낳았다. 한국말을 이해하고 한국 문화에 대해 점차 적응해 나갈 즈음 그는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주 여성 30여 명을 모아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매월 한차례 씩 정기모임을 통해 한국어 공부를 비롯해 아이들의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봉사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경찰서에서 통역을 도와달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고 함평경찰서에서 형사 사건 조사 때 통역을 하면서 경찰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레 이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다. 그런 마음을 알아 본 함평경찰서 경찰관의 제안으로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

“귀화해 한국인이 됐지만 외국인의 시선에서 소외받는 이주민들의 정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그는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경찰 지원서를 썼다. 중앙경찰학교(외사사이버과정 219기)에서 생활한 24주는 그가 한국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는 “운동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매일 훈련에 훈련을 반복하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나이도 많은데 어린 친구들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특히 형법, 형사소송법 등 한국어도 다 이해가 안 되는데 법률용어를 외우는 게 정말 힘들었다. 이 과정을 다 마칠 수 있을 지 고민도 많았다.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에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소회했다. 2008년 7월 그는 외사특채로 국내에서 귀화 2호 경찰관으로 임용됐다.

그는 현재 안산단원경찰서 소속으로 원곡동 외국인특별치안센터에서 이주민들의 법률상담과 민원처리, 방범활동 등을 하고 있다. 그는 “결혼이주여성으로서 같은 처지의 이주여성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을 도울 수 있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이 겪었던 한국생활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면서 이주민들 사이에서 그는 단순한 경찰관이 아닌 ‘왕언니’로 통한다.

그는 점점 늘어나는 이주민들에게 빠른 정착을 위해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언어를 배워야 문화도 이해하게 된다”며 “그러면서 조금씩 문화의 차이도 좁혀 나갈 수 있다”고 당부했다. 또한 그는 이주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듯이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는 것에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라고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은 안된다. 그들이 여기서 일하면서 한국경제에 보탬이 되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의 꿈은 필리핀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살면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 대사관에서 일하며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shk9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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