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담담하게 읊조리는 아픔에 관한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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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윤대녕 지음/282쪽·1만3000원·문학과지성사

번개탄을 피우고 목숨을 끊은 50대 가장. 그가 기러기 아빠로 혼자 지내다가 사망한 원룸 안에선 태블릿PC, 해외 송금용 서류, 양복과 와이셔츠, 처세술에 관한 책, 라면 몇 봉지와 소주병만이 발견됐다. 그리고 벽지엔 유서 대신 “한사코 끌어안고자 했던 삶이 마침내 칼이 되어 내 심장을 찌르는구나”라는 낙서만 남아 있었다.

작품 ‘밤의 흔적’의 주인공이 죽은 사람들의 특수 청소를 하기 위해 마주하는 공간처럼 소설집 속 작품 8편의 공간들은 하나같이 재난처럼 황폐하고 참혹하다. 때론 무기력하고 고요한 느낌마저 든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선 만연한 남편의 폭력이 드러난다. ‘나이아가라’에선 주인공이 떠나는 여행길 자체가 죽은 자의 흔적을 찾는 여정이다.

‘경옥의 노래’에선 죽은 연인을 그리워한 탓에 함께 다녔던 곳들을 돌아다니며 재를 뿌리는 애도의 여행이 그려진다. ‘총’에서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인 아버지가 가족에겐 늘 폭행을 일삼자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총을 겨누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는 도리어 “방아쇠를 당겨라”라고 외치지만 힘없이 총을 다시 내려놓는 아들의 모습은 큰 무기력을 안겨준다.

저자가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죽음의 장면들을 묘사하는 건 결국 우리 사회에 남은 상처와 이로 인한 영혼과 육체의 죽음을 조명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 소설집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뒤 이듬해 한국을 떠났다. 타지에 머문다고 해서 한국에서의 상처가 쉽사리 잊힌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기억들로 고통받으며 절필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는 “밤마다 거미줄을 치듯 한 줄 한 줄 글을 씀으로써 겨우 되살아났다”고 적었다. 그만큼 소설 속 문장들은 담담한 듯 절실하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윤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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