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오가는 두루미처럼 사상의 단절 깨고 싶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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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출신 전범선-고한준 씨
동아일보 첫 女기자 허정숙 글 묶어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최근 출간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 기자로 활동한 허정숙의 글을 모아 첫 책을 출판한 밴드 멤버 전범선 씨(왼쪽)와 고한준 씨가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사옥으로 썼던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앞에 섰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 기자로 활동한 허정숙의 글을 모아 첫 책을 출판한 밴드 멤버 전범선 씨(왼쪽)와 고한준 씨가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사옥으로 썼던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앞에 섰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제가 좋아하는 영미권 음악가, 작가, 철학자들은 다들 뿌리 깊은 역사적 연속성에서 나오는 자부심과 멋이 있더라고요. 한데 한국에서는 음악이든 뭐든 전통의 단절을 느꼈습니다. 일제강점과 전쟁을 겪은 탓이겠지요.”

밴드 멤버에 대한 선입견은 만나자마자 깨졌다. 록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전범선 씨(27)는 출판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우리 역사에 연속성을 부여하고, 이런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통을 이은 ‘조선 록’을 표방하며 활동해 온 전 씨는 밴드 ‘꿈의 파편’의 전 멤버 고한준 씨(26)와 함께 최근 ‘두루미출판사’를 차리고 첫 번째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8900원)를 냈다. 두 사람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지난달 29일 만났다.

‘나의 단발…’은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 기자 허정숙(1908∼1991)이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와 ‘신여성’, ‘별건곤’ 등에 쓴 글 10개를 골라 묶은 책이다. 허정숙은 당시 여성들의 단발운동을 주도하고 여러 여성단체를 만든 대표적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주세죽, 고명자와 함께 1920년대 ‘조선 공산당 여성 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했다. 전 씨는 “신여성을 비난하는 이들의 모순과 위선을 고발한 허정숙의 글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주장과도 같고, 단발은 탈코르셋 운동의 시작과 같은 것”이라며 “약 100년 전 글임에도 현재 청년 세대에게 호소력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주의만 남고 모두 숙청당해 사라졌잖아요. 남쪽도 독재 치하에서 사상이 오랫동안 억압됐죠. 남북이 각자 정권을 세우기 전, 조선에 존재했던 다양한 사상이 검열 등으로 ‘씨가 말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를 재발견하고자 합니다.”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표지 사진.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표지 사진.
두 사람은 ‘나의 단발…’을 필두로 배제된 사상가들의 글을 담은 ‘두루미사상서’ 시리즈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루미’라는 출판사 이름은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두루미처럼 사상의 단절을 깼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2013년 서울 홍익대 앞의 같은 클럽에서 공연하다 서로 역사, 철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친해졌다. 전 씨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미국 혁명사상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입대한 후 올 9월 제대했다. 고 씨는 건국대 철학과를 다니며 동서양 철학 고전 읽기에 푹 빠졌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은 책을 추천해 주다 고 씨가 1970년대 출간됐던 문학사 책을 복간하자고 제안하면서 의기투합했다. 고 씨는 “우리 세대도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인데 절판돼 구하기 어렵더라”며 “직접 복간하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헌책방도 차릴 계획이다. 밴드, 출판, 책방 모두 안정적인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배고픈 분야만 골라서 한다고요? 열심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죠.”(고 씨)

“문화예술계에 뼈를 묻으려고 ‘조선 땅’에 돌아왔습니다. 제가 하려는 일이 공부를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전 씨)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전범선과 양반들#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허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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