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58〉움직이는 고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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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발굴단의 일원으로 시리아에 갔을 때, 그는 많이 아팠다. 음식 때문이었다. 50도가 넘는 더위에도 한기를 느꼈고, 몸무게는 일주일 사이에 7kg이나 빠졌다. 그런데 아프니까 모국어가 그리웠다. 주어와 목적어와 동사를 따져야 말이 되는 외국어와 달리, 입만 열면 술술 나오는 모국어가 너무 그리웠다.

그때 누군가가 떠올랐다. 한글의 첫 자음자인 ‘ㄱ’으로 시작되는 성을 가진 ‘ㄱ’ 선생님 혹은 기역 선생님. 그런데 ‘기역’이라는 말이 ‘기억’이라는 말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목이 메었다. 고향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누워 있는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뭔가를 떠먹였다. 한글의 다섯 번째 자음자 ‘ㅁ’과 소리가 같은 ‘미음’. 그는 미음을 받아먹으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지난주에 세상을 떠난 시인 허수경이 그랬다.

무슨 이유에선지 시인은 유목민처럼 살았다. 자크 데리다는 유목민이나 실향민에게 공통되는 감정을 고향에 대한 “한숨과 그리움”이라고 했다. 그에게 고향은 땅만이 아니라 언어이기도 했다. 땅은 “움직이지 않는 고향”이었고 언어는 “움직이는 고향”이었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국어에 집착하며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여기는 건 그래서라고 했다. 우리의 시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고향” 즉 땅에 대한 그리움을 “움직이는 고향” 즉 모국어에 기대는 것으로 풀었다. 그가 낯선 땅인 독일에 살면서 쓴 시와 산문은 “움직이지 않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움직이는 고향”으로 삭여낸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모국어는 그가 지난 26년 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 외국어 특히 영어가 난무하는 누더기가 되었다. 언어를 가리켜 우리의 사유를 지배하는 “파시스트”라고 했던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언젠가 그 누더기 언어의 지배를 받게 될지 모른다. 시인에 대한 애도에 모국어에 대한 애도가 겹치는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시인 허수경#유목민#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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