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풍속 이야기 20선]<3>저기 도깨비가 간다

  • 입력 2009년 1월 22일 02시 55분


◇저기 도깨비가 간다/김종대 지음/다른세상

《“도깨비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정다운 이름이다. (도깨비는) 어떤 면에서는 장난꾸러기 친구 같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 없는 신통한 능력을 지녔기에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요놈의 도깨비는 어디서 툭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일까?”》

조선 도깨비와 日오니의 차이는?

도깨비 얘기 한번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은 드물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이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인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도깨비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였는지 제대로 이해해보자고 손을 내민다.

흔히 도깨비 하면 원시인 같은 옷에 뿔이 나고 손에는 못이 박힌 철퇴를 들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일본에서 들어온 요괴 오니(おに)의 형상을 본뜬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 민담 ‘혹부리영감 이야기’가 초등학교 국어책에 실리면서 그 삽화로 쓰인 오니가 도깨비로 둔갑한 것이다.

저자는 일제가 우리의 ‘도깨비방망이 얻기’와 이야기 구조가 동일한 혹부리영감 이야기를 들여온 것은 한일 강제합방의 당위성을 조작하려 한 것이라고 말한다. 내선일체(內鮮一體) 논리를 주입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이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민족이라는 증거로 내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깨비방망이 얻기와 혹부리영감 이야기는 구조는 같지만 주제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도깨비방망이 얻기에는 ‘효(孝)’와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두 가지 교훈이 있지만 혹부리영감 이야기에는 권선징악만 있을 뿐이며 이는 일본 동화들이 갖는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도깨비가 처음 글 속에 등장하는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1447∼1449년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보상절(釋譜詳節)’에 도깨비에 대한 글이 있다. 저자는 이렇듯 책에 도깨비가 등장할 정도면 당시 조선사회에서 도깨비는 익숙한 존재였을 것이라고 본다.

도깨비방망이 얻기의 원조는 신라시대 ‘방이설화(旁G說話)’라고 한다. 당나라 때의 문헌인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실린 방이설화는 가난하고 착한 형 방이가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휘두르는 금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되자 그 얘기를 들은 못된 동생이 똑같이 금방망이를 얻으려다가 아이들에게 붙잡혀 혼이 난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여기서 붉은 옷을 입은 아이가 도깨비라고 말한다.

도깨비는 성별로 구분하자면 남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많은 도깨비 이야기에는 도깨비가 여성과 술을 좋아하는 데다 씨름을 좋아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제주도에서 전승되고 있는 영감놀이에서 심방(무당의 방언)이 구연하는 신화인 영감본풀이를 보면 도깨비를 ‘만고의 오입쟁이’로 표현한다. 도깨비가 과부를 찾아가 성관계를 맺고 재물을 던져준다는 ‘도깨비 만나 부자 되기’ 이야기도 많다. 또 도깨비는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들과 곧잘 씨름을 하는 존재다. 자신이 좋아하는 돼지고기와 개고기를 사들고 오는 남성들과 고기를 판돈으로 걸고 씨름을 한다. 저자는 씨름이 대표적인 민속놀이였고 씨름판에서 우승한 사람이 여성들의 흠모 대상이 됐던 시대적인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해석했다.

풍어를 기원하며 바다의 도깨비에게 고사를 지냈던 전남 무안 해제 지방의 어장고사, 충남 홍성과 태안 등 서해안에서 어민들이 새해를 앞두고 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 도깨비불이 보이는 곳을 확인하는 도깨비불보기 등 도깨비와 얽힌 우리 전래의 풍습이 흥미진진하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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