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처녀들아! 산부인과 가자

  • 입력 2003년 8월 28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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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혼여성이 자궁 검진을 위해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다(위). 미혼여성이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분만용 의자(맨 왼쪽)나 질 안을 보기 위한 기구는 내진 희망자에 한 해서만 사용된다.
한 미혼여성이 자궁 검진을 위해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다(위). 미혼여성이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분만용 의자(맨 왼쪽)나 질 안을 보기 위한 기구는 내진 희망자에 한 해서만 사용된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얼마나 알까. 스스로의 몸에 대해 무지한 탓에 질병을 키우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여성들이 많다. 특히 미혼여성들에게 산부인과 문턱은 넘기 어려운 곳이다. 본보는 인터넷 메신저 프로그램을 이용, 미혼여성 190명을 상대로 산부인과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대부분이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 가본 사람은 소수에 그쳤다. 가장 큰 이유는 수치심과 검진에 대한 공포심이었다. 또 산부인과 검진 과정에서 ‘수치심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미혼남성인 김재영 기자가 20대 후반 미혼여성 A씨를 동행 취재했고 미혼여성들이 갖고 있는 산부인과에 대한 편견과 진실을 전문가 조언으로 알아봤다.》

21일 오후 기자와 함께 서울 강남 차병원을 찾은 A씨는 평소 생리통과 생리불순으로 고통을 겪어왔지만 산부인과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치과는 정기적으로 다니면서도 생리 때는 진통제 양을 늘리거나 ‘여자의 운명이려니’ 하면서 꾹 참는 게 고작이었다. 산부인과는 절대 ‘아줌마’들만 가는 곳이라고 믿어왔다.

기자는 망설이는 A씨를 설득해 미혼여성 검진체험에 나섰다. A씨는 ‘미혼여성 전문클리닉’이 있다는 설명에 마지못해 동행취재에 응했다.

병원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A씨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빠른 속도로 현관을 들어섰다. ‘처녀가 웬 산부인과냐’라는 주변의 시선이 무척 신경 쓰이는 듯했다.

기자=병원을 들어서면서 상당히 긴장한 것 같네요.

A씨=아무리 미혼여성 클리닉이라지만 아는 사람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요. 다행히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접수를 마치고 진료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A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

A=휴, 임산부들은 안 보이네요. 아줌마들 사이에 앉아서 눈이라도 마주치거나 귓속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면 ‘혹시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불쾌했을 거예요.

기자=산부인과를 찾은 사람들끼리는 같은 입장 아닌가요.

A=시집간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산부인과를 찾는 젊은 여자는 뭔가 수상해 보인다고 해요. 아무리 본인이 떳떳해도 임산부들이 ‘특권’을 가진 산부인과에서 미혼여성들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죠.

진료실 앞에는 중교생으로 보이는 소녀 10여명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함께 온 엄마나 친구들과 떠들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A씨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드디어 A씨 차례가 됐다. 진료실에 들어서니 주치의가 곧바로 문진(대화에 의한 진단)을 시작했다. 의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의사=성경험이 있으신가요. 성경험이 있다면 반드시 자궁경부암이나 질염 검사를 해야 하니까 사실대로 말씀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A씨는 옆에 동석한 기자를 의식해서인지 답변을 회피했다.

A=경험 유무를 떠나 누군가가 내 사생활을 들춰보는 듯한 것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네요. 이런 질문들 때문에 병원을 더 안 찾게 되는 것 아닌가요.

의사는 생리주기, 생리통 여부 등 간단한 추가질문으로 문진을 마쳤다.

다음은 검진실. 초음파 검사와 소변, 혈액 검사를 실시하는 곳이다. 따라 들어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문 앞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10분쯤 지나자 A씨가 나왔다.

기자=미혼 여성들은 검진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크다던데요.

A=검진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기구들이 있어요. 다리를 벌리고 앉는 분만용 의자, 질 안을 검사하는 초음파 기기, 질 안을 볼 수 있도록 벌려주는 기구(일명 오리 입) 등이죠. 자신의 은밀한 곳을 누구에게 보여준다는 수치심과 그곳에 뭔가를 집어넣는다는 공포감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요.

그러나 검진실 안에는 분만용 의자나 ‘오리 입’은 없었다. 검진용 침대와 초음파 기기 그리고 화면을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전부였다.

A=고무줄 치마를 입고 속옷을 전부 벗었을 때 돌아가버릴까도 생각했죠. 아줌마들 월남치마 같은 복장도 어색했고요.

기자=초음파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은 없었나요.

A=배 위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 검사기기로 문지르는데 모니터 화면을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뭐라고 설명도 없고 묻기도 민망하고 해서….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 같은 기분이 들어 빨리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죠.

일단 육안으로 본 초음파 결과는 별 이상이 없다는 설명이 있었다. 종합결과는 1주일 후에 나온다. 안절부절못하던 A씨는 검진이 끝나자 여유를 찾은 것 같았다.

기자=역시 산부인과는 처녀가 올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세요.

A=아뇨. 괜히 겁을 먹었었구나 싶어요. 생리통이 심해 늘 뭔가 심각한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해했는데 솔직히 홀가분하네요. 이번 참에 생리통이나 완전히 치료해 볼래요.

김재영기자jaykim@donga.com

▼"10代 20%가 자궁이상"▼

보건복지부와 한국여자의사회 등이 지난해 10대 소녀 400여명을 대상으로 부인과 계통 진료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20%의 소녀들이 초음파 자궁검사에서 이상 판정을 받았다. 또 43%가 생리불순(무월경 포함)을 겪고 있으며 37%가 생리통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포천중문의대 강남 차병원 여성의학과 안명옥 부원장은 “자궁종양 등은 자각증상이 극히 미미해 평생 병을 안고 살아가기 십상”이라며 “초경을 시작한 뒤 한 번쯤은 반드시 산부인과를 찾아 검진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그는 또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더라도 성인의 경우에는 1년에 한 번씩, 미성년자는 3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차병원은 매주 화, 목요일 오후 6시에 초중고교생을 위해 ‘소녀들의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이 진료시간 중 아예 기혼자 접수를 받지 않는 것이 특징. 입소문이 퍼지면서 최근엔 미혼 직장 여성들의 방문이 부쩍 늘었다.

또 삼성서울병원은 월, 금요일 ‘예비신부 건강진단 프로그램’을, 삼성제일병원은 ‘미혼여성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이 밖에 청담 마리산부인과, 서울중앙병원 등도 미혼여성 또는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특별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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