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와타나베 쇼고 “밀반출 조선 묘지, 한국에 있는게 맞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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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급 ‘이선제 묘지’ 환수 도운 일본인 고미술상 와타나베

지난달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이선제 묘지’를 찾은 일본 고미술상 와타나베 쇼고 씨. 그는 “처음 본 순간 상감기법과 연판무늬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지난달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이선제 묘지’를 찾은 일본 고미술상 와타나베 쇼고 씨. 그는 “처음 본 순간 상감기법과 연판무늬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갖고 있으면 업계에서 축출돼 결국 문을 닫아야 합니다.”

최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난 일본 고미술상 와타나베 쇼고(渡邊祥午·51) 씨는 ‘이선제 묘지(墓誌·죽은 사람의 행적을 새긴 것)’ 국내 환수에 도움을 준 이유를 묻자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 묘지는 조선 전기 고위관직을 지낸 이선제(1390∼1453)의 생애를 분청사기에 새긴 것으로 독특한 양식으로 제작돼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된다.

와타나베 씨는 묘지 소장자였던 고(故) 도도로키 다카시(等等力孝志) 씨의 미술품 거래 대리인으로 고인에게 한국 반환을 설득했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협력지원팀장은 “와타나베 씨의 도움으로 임종을 눈앞에 둔 소장자를 병원에서 만나 무상기증을 제안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선제 묘지는 무덤에서 도굴된 뒤 1998년 한국 고미술상들에 의해 일본으로 밀반출됐다. 불법으로 팔아넘긴 문화재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까지 양국의 일부 고미술상들이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관여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자국(自國) 문화재도 아니고 거래 수익과 무관한 문화재 환수에 와타나베 씨가 선뜻 도움을 준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소장자의 명예와 3대째 내려온 가업(家業)의 신조를 꼽았다. “불법 반출 문화재는 소장자의 명예가 달린 문제죠.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그의 평판을 지키는 게 제 의무이자 조부 때부터 원칙입니다.”

그가 운영하는 고미술품 거래업체 와타나베산포도(渡邊三方堂)는 1924년 설립돼 “사고파는 쌍방이 마음속 깊이 만족하고 사회에도 보탬이 돼야 한다”는 가훈을 3대째 고수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한국 문화재와 인연이 깊다.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고려불화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국보 제218호) 거래에 그의 아버지가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는 “고 이병철 회장이 선친의 일본 사무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며 “저도 아모레퍼시픽에 소장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거래에 관여했다”고 했다.

양국 고미술 업계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와타나베 씨는 업계의 독특한 구조와 행정제도를 예로 들었다. “일본에서는 미술품 거래 단체에 들어가야 매매 정보와 은행 융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장물 취득 등 부정 거래를 하면 내부규정에 따라 단체에서 쫓겨나 생존할 수 없어요.” 고미술상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경찰에 거래 내용을 보고하는 제도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만약 거래 정보를 가짜로 써낸 사실이 드러나면 세무조사 등 각종 처벌이 뒤따른다.

고미술품 가격을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은 한국과 달리 일본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 결정 구조를 갖고 있는 것도 다른점이다. 와타나베 씨는 “한국 고미술 시장은 규모가 작아 담합이 이뤄지기 쉽다”며 “반면 일본에는 ‘도쿄미술클럽’ 같은 미술품 거래 단체가 전국에 5개나 설립돼 있어 적정 가격인지를 쉽게 체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이선제 묘지 환수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묘지에 이름이 적혀있는 이선제의 다섯째 아들이 조선통신사로 일본으로 건너오는 도중 병에 걸려 숨졌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습니다. 예부터 한국이나 일본이나 불이 나면 조상의 위패부터 모셨습니다. 묘지는 하나의 위패로 가문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늦었지만 광산 이씨 문중과 한국에 돌아가게 돼 다행입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와타나베 쇼고#이선제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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