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선판 국방백서 ‘비어고’ 실제 저자는 정약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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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한양대 교수 논문서 주장

그동안 조선 후기 무신이었던 이중협과 정주응이 쓴 것으로 각각 알려졌던 ‘비어고’(위 사진)와 ‘미산총서’. 하지만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두 저서 모두 실제 저자는 다산일 수밖에 없는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며 “조선판 ‘국방백서’에 해당할 만큼 국방 관련 내용이 총망라돼 있다”고 말했다. 정민 한양대 교수 제공
그동안 조선 후기 무신이었던 이중협과 정주응이 쓴 것으로 각각 알려졌던 ‘비어고’(위 사진)와 ‘미산총서’. 하지만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두 저서 모두 실제 저자는 다산일 수밖에 없는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며 “조선판 ‘국방백서’에 해당할 만큼 국방 관련 내용이 총망라돼 있다”고 말했다. 정민 한양대 교수 제공
“무사라면 비어고를 읽지 않아서는 안 된다. …무과시험에서 비어고의 한 대목을 뽑아 조목조목 대답하게 해야 한다.”(경세유표·經世遺表 중)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저서 ‘경세유표’에는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다산은 이 책에서 “비어고는 내가 쓴 책이다. 동방의 전쟁을 모아서 한 책으로 만들고, 관방(關防·국경의 요새)과 기용(器用·무기 사용법)에 관한 여러 주장을 살폈으며, 군사제도의 연혁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비어고(備禦考)는 방비(사전대비)와 방어에 관한 책이란 뜻으로, 한중일 동북아 3국의 전쟁사와 실제 전쟁에서 수행할 병력 운용·군수 보급 방법 등이 자세하게 수록돼 ‘조선판 국방백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다산의 언급과 달리 ‘비어고’에는 그의 친구이자 조선 후기 하급 무관이었던 이중협이 저자로 표기돼 있어 논란이 됐다.

최근 ‘비어고’의 실제 저자가 다산임을 입증하는 연구가 나왔다. 또 다산의 제자였던 정주응의 ‘미산총서’도 ‘비어고’의 일부분이라는 내용도 함께 제기됐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사진)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다산 비어고의 행방’을 15일 열리는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학문적 성과가 뛰어나지 않은 이중협과 정주응의 저서로만 알려져 있어 그동안 학계에선 관련 연구가 거의 없었다”며 “두 저서에선 다산이 저자일 수밖에 없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밝혔다.

실제 ‘비어고’를 보면 송풍암(松風菴)이라는 저자가 편집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송풍암은 다산이 자주 사용한 별칭 중의 하나였다. 정 교수는 “이중협은 다산이 전남 강진에 유배됐을 당시 자주 찾아올 정도로 막역했던 동갑내기 친구”라며 “책에 군사기밀을 다룬 내용이 많아 유배를 겪었던 다산이 현직 무관인 친구의 이름으로 책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미산총서에는 다산의 흔적이 더욱 짙다. 이 책에는 “관련 자료는 내 외가의 서고 속에서 얻은 내용이다. 외가는 해남에 있는데 5대 외조부의 휘가 윤선도이고, 호는 고산이다”라고 적혀 있다. 다산과 윤선도는 이종 친척 관계다. 또 다산의 18제자 중 수제자로 꼽히는 이강회와 이정의 안설(해설)이 곳곳에 달려 있다. 정 교수는 “미산총서를 정주응이 썼다면 불과 14세 때 이처럼 방대한 국방 관련 책을 썼다는 뜻인데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에는 전국의 400여 개 산성의 특성과 전쟁 시 공격·수비에 적합한 무기 목록 등 각종 국방 매뉴얼이 담겨 있다. 특히 중국(여진·청나라)과 일본은 각 나라의 풍속과 음식 문화 등 실생활과 관련한 내용까지 빼곡히 기록해 적의 상황을 미리 파악하려고 했던 의도도 엿보인다. 정 교수는 “한중일 역사 분쟁은 유사 이래 계속돼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방어와 방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다산은 바라봤다”라며 “다산의 비어고에 대한 후속 연구가 심도 깊게 이뤄진다면 동아시아 안보위기를 겪는 현재에 큰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조선판 국방백서#비어고#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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