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엄마를 죽이라니…‘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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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야샤르 케말 지음·오은경 옮김/255쪽·8500원·문학과지성사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야샤르 케말(82)은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추천받은 손꼽히는 터키 작가다. 터키 정부로부터 국민 예술가로 선정됐지만 터키 민주화가 실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한 강골이며, 1994년에는 터키 정치와 관련해 독일 슈피겔지에 썼던 글이 꼬투리 잡혀 칠순에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좌익 작가인 그는 이전에도 서너 차례 수감됐는데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1976)는 그가 감옥에서 만난 한 소년의 실화를 소설로 만든 장편이다. “하산의 아버지가 살해된 것은 하산이 여섯 살인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하산이 아주 어릴 때였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이슬람권 특유의 ‘피의 보복’을 다루고 있다. 이 ‘피의 보복’이 눈길을 끄는 것은 어린 하산이 보복하는 대상이 다름 아닌 어머니 에스메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에스메는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던 할릴이라는 부유한 사내에게 납치돼 강제로 혼인하게 된다. 그녀는 체념한 채 아들 하산을 낳고 살지만 옛 애인 압바스가 찾아오자 “돌아가 달라”면서도 만남을 지속한다. 할릴과 압바스의 갈등이 적개심으로 치달으면서 할릴은 압바스의 총에, 압바스는 할릴의 친족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후 에스메의 시어머니와 시동생을 비롯한 할릴의 친족들은 어린 하산에게 총을 선물하고, “네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결국 저 여자”라며 몇 년간이나 에스메를 손가락질한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여자를 처형하는 이슬람권의 핏빛 악습인 ‘명예 살인’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어 세계적으로 비난 받고 있다. 케말은 이 같은 명예 살인 가운데 최악의 경우를 소설화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충격적인 의구심에 대해 “아, 이렇게 벌어지는 구나” 하고 현실을 알게끔 해준다. 여러 시점(時點)을 다양하게 섞어 가면서 긴장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대가다운 솜씨는 현대 이슬람의 아픈 비극을 말하면서도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데려간다.

어린 시절 케말 역시 가문 간에 벌어진 ‘피의 보복’ 와중에 아버지를 잃은 뼈저린 체험이 있어서 작품에 자기 호흡을 불어넣은 듯하다. 터키에서는 영화로, 프랑스에서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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