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아름다운 동행’]아프리카가 말을 걸어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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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개조한 트럭 타고 ‘오지속으로’
나미브 신비의 사구 ‘태초의 비경’
선셋 사파리…모코로 투어…
하늘과 땅으로 두개의 강이 흐르면
날것 그대로의 검은 대륙에 감동

아프리카 오버랜드 트러킹 중에 찾은 초베 강. 여기선 이렇듯 크고 작은 보트를 타고 강상에서 물을 마시러 오는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보트사파리를 즐기는데 운좋게도 이날은 사자 무리(오른쪽)를 만났다.
아프리카 오버랜드 트러킹 중에 찾은 초베 강. 여기선 이렇듯 크고 작은 보트를 타고 강상에서 물을 마시러 오는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보트사파리를 즐기는데 운좋게도 이날은 사자 무리(오른쪽)를 만났다.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서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동행(同行)의 의미를 강조한 이 말, 인생이란 긴 여행길에도 잘 들어맞는다. 동행이란 하나의 목적지로, 나란히 나아가는 행위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에겐 사랑도 그렇게 비쳤나 보다. 그는 ‘사랑이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란 마주 보며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바라보며 공유하고, 그 과정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의 행위라고.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과 떠난 여행은 목적지가 어디든, 어떤 스타일이든 아름답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같은 걸 바라보며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니까. 여행 중에 보고 듣고 느끼고 얻는 것은 덤이다.

부부와 친구, 동료에겐 여행의 기회가 많다. 하지만 모녀와 부자(혹은 모자와 부녀)의 여행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런데 이런 ‘세대간(世代間) 여행’이 요즘 같은 핵가족시대엔 더더욱 절실하다. 대화와 소통의 좋은 통로가 되어서다. 점점 대화가 줄어가는 요즘에 자녀와 부모의 동행은 그것만으로도 멋진 선택이다. 청소년기의 자녀와 동행하는 것도 좋지만 결혼 취업 등으로 자립과 독립을 앞둔 자녀와 함께하는 것도 역시 보기 좋다.

그런 세대간 여행지로 굳이 이 아프리카 오버랜드 트러킹(Africa Overland Trucking)을 추천하는 이유. 트럭개조차량으로 장거리를 이동하며 초원과 사막에서 매일 캠핑(혹은 로지 숙박)을 하다보면 아프리카의 순수한 대자연에 동화돼 닫힌 마음은 열리고 감정에 솔직해져 대화가 술술 풀리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두 차례 취재를 통해 확인했다. 서로에게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이심전심으로 사랑은 분명히 전해진다.

이선원 씨(60)는 전통 한지를 오브제로 화면을 구성하는 전업 작가다. 그녀가 큰딸(김문영·29·국제변호사)과 아프리카 여행을 오버랜드 트러킹으로 떠나겠다고 생각한 건 1년 전 남편과 같은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그곳은 나미브 사막 한가운데의 사구지대 소수스플라이. 태초의 세상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만드는 비경 앞에서 그녀는 홀로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을 떠올렸다. 올 5월 딸과의 여행은 실현됐다. 당초에는 남편도 함께 갈 계획이었으나 시어머니의 병구완 때문에 모녀만의 여행이 됐다.

캠프사이트에서의 휴식. 오버랜드 트럭 앞에 야외 주방이 차려져 있다.
캠프사이트에서의 휴식. 오버랜드 트럭 앞에 야외 주방이 차려져 있다.
오버랜드 트러킹은 24인승 버스로 개조한 5t 트럭에 텐트와 의자는 물론 프로판가스통과 식수, 조리기구 등 캠핑 장비를 싣고 남아프리카 오지의 비경과 명소를 주유하는 캠핑 배낭여행. 오버랜드 트럭은 정해진 일정과 노선을 따르는데 참가자는 매일 캠프사이트에서 야영을 하거나 로지에서 잠을 잔다. 스태프는 가이드 겸 운전기사와 조리사 등 두세 명. 식사는 세 끼 모두 조리사가 만들어 제공한다.

오버랜드 트러킹은 지난 세기 초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대륙을 침탈할 목적으로 했던 장기 탐험의 유산이다. 늪과 강, 사막과 산악의 험로를 극복하고 야생동물의 위협을 막기에 트럭만큼 좋은 이동수단이 없었다. ‘오버랜드(Overland)’는 ‘육상(陸上)’, ‘트러킹(Trucking)’은 ‘트럭을 이용한 이동’이라는 뜻이다. 그게 1960년대 들어서며 남아프리카의 새로운 여행스타일로 등장했고 시들지 않는 인기에 힘입어 이젠 아프리카 오지여행의 상징이 됐다. 여행코스 중 최장거리는 중간의 빅토리아폭포(짐바브웨 잠비아 국경)를 거쳐 대륙남단(케이프타운·남아공)과 케냐(나이로비)를 잇는 남아프리카 횡·종단 1만 km(41∼43일 소요). 참가자는 도중 원하는 곳에서 합류하거나 그만둘 수 있다. 최고의 인기 코스는 케이프타운∼나미브 사막∼에토샤 국립공원∼빅토리아폭포를 잇는 20일짜리(5000km).

모녀가 선택한 코스: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를 출발해 서북부 쪽으로 750km 떨어진 에토샤 국립공원(나미비아)에서 사흘을 보낸 뒤 오카방고 강을 따라 동쪽 보츠와나로 이동해 초베 국립공원을 지나 짐바브웨의 빅토리아폭포를 보고 귀국하는 11일 일정이었다. 이동거리는 3000km. 에토샤 국립공원은 2억 년 전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한 곳. 현재의 광활한 사바나 초원은 당시 해저가 융기해 한동안 호수가 있던 자리다. 물이 사라진 지금 이곳은 사방팔방 360도로 지평선을 조망할 수 있는 광대한 평원으로 바뀌었다. 연간 416mm의 강수로 일대는 초원(사바나)을 이루고 지표에는 축적된 염분까지 있어 동물의 낙원이 됐다. 여기선 국립공원 내 캠프사이트에 머물며 사흘간 오버랜드 트럭으로 매일 사파리투어를 하는 등 야생동물과 함께 지냈다.

그런 뒤엔 오카방고 강을 찾아 동쪽으로 이동해 이틀간 강변에 머물며 사흘 동안 원주민이 젓는 모코로(전통 통나무카누)를 타고 강상에서 물을 마시러 강변을 찾는 사자 가족이나 코끼리 떼 등을 관찰했다. 이어 찾은 곳은 초베 국립공원. 초베 강은 빅토리아폭포의 수원인 잠베지 강 원류로 나미비아와 보츠와나의 국경에 걸쳐 있다. 이번엔 대형 보트에 올라 해질 녘 강변을 찾은 사자와 코끼리, 수중의 하마 가족을 살피는 선셋 보트사파리를 즐겼다. 마지막 일정은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폭포 찾기. 잠자리는 선택 사항. 모녀는 여행 내내 캠핑 대신 캠프사이트 부근의 고급 로지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항공노선은 인천∼홍콩∼요하네스버그∼빈트후크. 홍콩∼요하네스버그 11시간 반, 요하네스버그∼빈트후크 2시간 소요.
● 여행정보

오버랜드 트러킹:
◇출발지: 북행 코스는 케이프타운(남아공), 남행 코스는 나이로비(케냐). 젊은 세대는 캠핑 여행을, 중장년층은 로지 숙박을 선호한다. 숙박 스타일에 따라 트러킹을 따로 운영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섞어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트러킹 일정: 2∼43일로 다양하며 단체의 희망과 일정에 맞추는 전세투어도 제공.
◇상품 및 판매처: 현지 트러킹 전문 여행사 ‘아카시아아프리카(www.acacia-africa.com)’가 개발한 상품을 베스트래블(www.bestravel.co.kr)에 문의하면 살 수 있다.
▽한국여행자 전세투어: 왕복항공편 탑승까지 포함한 11일짜리 상품으로 9월과 11월 일정은 이미 매진. 가격은 9월 360만 원(이하 팁 제외 항공권 포함 일체비용), 11월 370만 원. 02-397-6100
▽다국적 트러킹: 일수는 트러킹 일정만을 표시한다(왕복항공편 탑승기간은 제외).
△11일: 케이프타운∼나미브 사막∼빈트후크∼에토샤 국립공원을 잇는 북행 코스(3180km)
△43일: 나이로비(케냐)를 떠나 탄자니아 말라위 잠비아 보츠와나 나미비아를 경유해 케이프타운(남아공)까지 가는 7개국 코스(9500km).
◇트러킹 현지 정보: 아카시아아프리카가 운영하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AcaciaAfrica)과 인스타그램(Instagram#acacia-africa), 블로그(http://acacia-africa.com/blog)에 참가자가 올린 생생한 사진과 감동의 글이 있다.
▼ 딸과 함께 오버랜드 트러킹 다녀온 이선원 씨 기고 ▼

“특별했던 로지의 밤깵 잔향, 사라지질 않네”


오버랜드 트러킹으로 찾은 빅토리아폭포에서 딸(김문영)과 함께 쌍무지개를 배경으로 남긴 이선원 씨의 기념사진.
오버랜드 트러킹으로 찾은 빅토리아폭포에서 딸(김문영)과 함께 쌍무지개를 배경으로 남긴 이선원 씨의 기념사진.
문영이(딸·29·국제변호사)와 남아프리카로 오버랜드 트러킹을 다녀온 지도 벌써 석 달. 이 염천의 8월 복중 무더위 속에서 작업하는 동안에도 그 여행의 잔향은 사라지질 않는다. 덕분에 짬짬이 행복을 느끼고 미소 지을 여유도 갖게 되었고.

에토샤 국립공원의 워터 홀(Water Hall·물구덩이)에서 전 세계의 여행객들과 평화롭게 코뿔소와 코끼리 무리를 기다리던 석양의 시간, 빅토리아폭포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만들어낸 영롱한 쌍무지개를 보았을 때 느꼈던 환희, 보츠와나 국경의 거대한 바오바브나무를 보았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어린왕자….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달려가 만나고 싶은 아프리카의 자연들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내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것은 모녀가 함께 체험한 보츠와나 오카방고 강가의 응게피 로지에서의 추억이다. 첫날 로지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눈앞조차 분별하기 어려웠던 한밤. 숙소는 안내인의 손전등을 따라 숲 속의 오솔길을 한참이나 걷고 난 뒤에 건넌 10여 m의 좁은 나무판자다리 끝에 있었다.

그런데 그 숙소엔 열쇠가 없었다. 아니 화장실과 칸막이 외엔 세 방향으로 트여 벽 자체가 없었으니 열쇠란 게 애초부터 있을 리 없었다. 이윽고 침침한 전등 아래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통해 숙소와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숙소는 강바닥에 박은 말뚝 위에 세운 원두막 형태였고 침대는 그 아래 세 방향으로 트여 있는 공간에 놓여 있었다. 그걸 본 우린 까르륵 웃어댔다. 이런 덴 줄 모르고 방 열쇠를 달라고 했으니….

수상 원두막 로지의 침대 앞은 널찍한 테라스 공간이었다. 그리고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에 앉자 정면의 밤하늘을 가득 뒤덮은 은하수가 또렷하게 보였다. 발아래에선 검은 강물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고. 그 강에서는 끊임없이 무슨 소리가 들려 왔다. 귀를 기울여보니 강 건너 숲에서 물을 마시러 나온 코끼리 떼의 울음소리였다. 나와 딸은 두 눈에 다 담아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넓고 길게 흐르는 밤하늘의 은하수 아래 나란히 앉아 자연이 주는 이 지극한 평화를 오래도록 나눴다. 우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함께 있어 주어 정말 고마워∼.’

모기장으로 에둘린 침대에 딸과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할 즈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괴음이 들려왔다. 엄마를 보호해주겠다고 여행을 따라나선 딸이, 그 소리가 무섭다며 내 품속으로 달려든다. 그때 든 생각. 엄마는 언제나 엄마라는….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에 깨어난 다음 날 아침.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프리카의 햇살 아래 오카방고 강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괴음의 정체도 알게 됐다. 부근에 사는 하마의 울음소리였단다.

하늘에는 은하수, 발아래로는 오카방고. 하늘과 땅으로 두 개의 강이 흐르는 아프리카에서, 벽도 없는 원두막의 한 침대에서, 스물아홉 살 딸과 함께 코끼리와 하마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보낸 응게피 로지에서의 이틀 밤.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내 딸에게도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딸과의 이번 아프리카 오버랜드 트러킹 여행은 정말로 잘한 일이었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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