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부처님 오신날… 소지공양-장좌불와 ‘참선스님들의 師表’ 혜국 스님 인터뷰

  • Array
  • 입력 2011년 5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종교까지 정치화하면 큰 손실… 서로 본분지켜야 갈등 안생겨”

혜국 스님은 젊은 시절 수행을 위해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태워버렸다. 왼손 약지도 반이 없지만 그는 껄껄대며 “왼손은 수행과 관련없는 일”이라고만 했다. 충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혜국 스님은 젊은 시절 수행을 위해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태워버렸다. 왼손 약지도 반이 없지만 그는 껄껄대며 “왼손은 수행과 관련없는 일”이라고만 했다. 충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수행을 위해 손가락을 태우는 소지공양(燒指供養)과 2년 7개월간 잠을 자지 않고 참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죽음을 넘나드는 수행 과정에서 얽힌 종정 성철 스님(1912∼1993)과의 인연….

혜국(慧國·63) 스님은 수좌(首座·참선하는 스님)들에게 ‘사표(師表)’로 꼽힌다. 13세 때 일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를 지냈고 수행지침서 간화선의 편찬위원장이기도 했다. 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10일)을 앞두고 4일 충북 충주시 석종사에서 금봉선원장인 혜국 스님을 만났다.

―성급한 질문 같지만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허공에 침을 뱉어 보세요. 무엇이 남습니까? 깨달음은 허공처럼, 그릇에 담긴 무언가를 비우는 겁니다. 마음을 비우면 물들지 않습니다.”

―그럼 스님은 깨달았습니까.

“아직 멀었죠. 눈 뜨고 있을 때는 빈 그릇의 즐거움을 알지만 깊은 잠 속에서는 그 즐거움을 못 누리고 있습니다.”

―오매일여(寤寐一如·깊은 잠에 들더라도 깨어있을 때처럼 수행의 자세를 유지하는 경지)인데 너무 멀어 보입니다.

“그렇게 멀지만은 않습니다. 하물며 박사학위 따려고 해도 한 분야를 몇십 년간 공부합니다. 인생사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만큼 투자 안 해서 되겠습니까.(웃음)”

물이 흐르듯 유장하게 말을 이어가는 스님의 손에 어쩔 수 없이 눈이 간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무명지의 반이 없다.

―소지공양은 지나친 고행처럼 느껴집니다.

“40여 년 전 소지나 장좌불와는 깨달음의 길을 떠나기 위한 마음의 준비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난 부처님 길을 가야겠는데 부모님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고행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때는 공(空)의 즐거움에 눈을 뜨지 못했기에 즐거움은 아니었습니다.”

―오사마 빈라덴이 최근 사살됐는데….

“9·11테러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반대쪽도 자신의 허물을 살펴야 합니다. 왜 상대방이 목숨까지 버리는 행동을 저지르는지…. 그가 죽었다지만 미국과 이슬람권의 근본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빈라덴이 나올 겁니다. 감정에서는 패자(敗者)가 되고, 이성에서는 승자가 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근 국내 종교 간 갈등도 심각합니다.

“한국이 세계 10대 교역국이지만 종교전쟁이 났다면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부처님, 예수님이 동시대에 살았다면 두 분만큼 사이좋은 분도 없었을 겁니다. 우주자연은 세계일화(世界一花), 한 송이 꽃이라 했죠. 허공에 어찌 내 것, 네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

―정치권력과 종교의 밀착 또는 갈등도 문제입니다.

“서로가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종교까지 정치화되면 그것은 우리 정신문화의 큰 손실입니다.”

―정우성 이지아 씨를 만나셨다면서요.

“최근 일이 불거지기 전, 둘이 ‘이곳에 와서 좋은 마음 얻어갔다’는 배용준 씨의 말을 들었다면서 왔습니다. 그때 이런 말을 했죠. ‘두 분은 자가용 아니라 공용 버스다. 자가용이라면 서고 가고 맘대로 하겠지만 공용 버스는 그렇지 않다. 손님이 원하면 싫은 곳에서도 내리고 쉬어 가기도 해야 한다’고. (둘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바랍니다.”

―소지공양 뒤 태백산 도솔암서 장좌불와 수행을 했습니다.

“난리는 쳤는데 얻은 게 없어 창피해서 세상에 나갈 수가 있어야죠. 허허. 그래서 다시 독하게 맘먹고 들어간 거죠. 하하.”

―어땠습니까.

“잠을 참아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해인사 백련암으로 성철 스님을 찾아갔죠. ‘정말 안 조셨느냐’고 물었더니 노장 왈 ‘이놈아, 내가 목석이냐. 안 졸게’ 하더군요.(웃음)”

―공부법을 들으셨나요.

“노장이 쓰던 쇠발우를 주면서 물을 담아 머리에 얹고 참선하라더군요. 단 하루 성공했습니다. 쇠발우가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 밭을 키워준 겁니다.”

―10일이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내야 합니다. 올해는 자신과 가족을 위한 등불이 아니라 자신과 갈등이 있는 다른 이를 위해 등불을 켜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혜국 스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석종사 길목에는 색색의 연등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스님이 스스로를 다잡을 때마다 되새긴다는 말이 귓전에 생생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르는 곳마다 참주인이 되고, 우리가 서있는 곳 모두가 참진리다.’(임제 선사의 임제록)

충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