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2년 2차 보어전쟁 종결

  • 입력 2008년 5월 3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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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인은 남아프리카에 사는 네덜란드계 백인들을 일컫는다. 가난했던 이들이 네덜란드를 떠나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일대에 정착한 것은 17세기 후반.

이들은 19세기 들어 아프리카로 진출한 영국과의 세력 다툼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영국인에게 밀린 보어인들은 케이프타운 일대를 내주고 케이프타운 북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풍요롭게 살던 줄루족 등 흑인들을 몰아낸 보어인들은 1852년에 트란스발공화국을 세웠다.

영국인들은 이 나라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보어인들에게 싸움 외에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1881년 보어인들은 영국에 맞서 싸웠다. 제1차 보어전쟁. 이 전쟁에선 트란스발공화국이 승리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불화의 원인은 풍부한 다이아몬드 광맥과 금광의 발견이었다. 다이아몬드와 금에 힘입어 보어인의 트란스발공화국이 부유해지는 모습을 영국인들이 그냥 보고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인들은 노골적으로 트란스발의 내정에 간섭했고 보어인들은 광산지역에 사는 영국인들의 참정권을 거부하며 맞섰다. 이를 견디지 못한 영국인들은 1899년 10월 11일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 제2차 보어전쟁이었다.

두 번째 전쟁은 애초부터 영국인들의 승리가 예견됐다. 트란스발공화국 보어인의 병력은 8만7000명인 데 비해 아프리카에 진출해 있던 영국인 병력은 45만 명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잔혹했다. 약 21만 명의 노약자를 집단 수용소에 감금하고 열악한 위생환경에 방치해 2만3000여 명을 죽어가게 했다. 그래서 2차 보어전쟁은 야만적인 전쟁으로 불렸다. 전쟁이 계속되는 3년 동안 영국 내에서도 반전(反戰)운동이 일었을 정도였다.

영국에 전쟁을 멈추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셌지만 영국은 중단하지 않았다. 1902년 5월 31일 트란스발공화국은 영국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날 트란스발공화국과 영국은 베리니깅 조약을 체결했고 트란스발공화국은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영국은 1920년 트란스발공화국과 케이프타운 식민지 등을 합쳐 남아프리카연방을 만들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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