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세종대왕 동상 옮기면 흉물 돼… 차라리 없애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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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동상 만든 김영원 전 홍대 미대학장

김영원 전 홍익대 미대학장은 12일 인터뷰에서 “조각은 빛의 예술이라 작품의 위치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영원 전 홍익대 미대학장은 12일 인터뷰에서 “조각은 빛의 예술이라 작품의 위치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시가 지난달 21일 광화문광장 재조성안을 확정·발표했다. 이 안에 따르면 세종대왕 동상은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은 정부서울청사 옆으로 옮겨진다. 안이 공개되자 동상 이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고, 서울시는 “확정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순신 동상은 존치하고, 세종대왕 동상은 이전하는 쪽으로 가는 분위기다. 동상을 옮기면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세종대왕 동상을 만든 김영원 전 홍익대 미대학장(72)은 “장소가 바뀌면 세종대왕 동상은 흉물이 된다.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고 말했다.》
 
현 세종대왕 동상의 10분의 1 크기 모형(공모 당시 출품작)을 동쪽을 향하게 한 뒤 오전(사진①), 오후(사진②)에 촬영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오전에는 얼굴에 음영이 사라져 인형처럼, 오후에는 그늘져 시커먼 흉물처럼 보였다. 이 사진을 세종대왕 이전 예정지를 배경으로 합성했다. 김영원 전 학장 제공
현 세종대왕 동상의 10분의 1 크기 모형(공모 당시 출품작)을 동쪽을 향하게 한 뒤 오전(사진①), 오후(사진②)에 촬영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오전에는 얼굴에 음영이 사라져 인형처럼, 오후에는 그늘져 시커먼 흉물처럼 보였다. 이 사진을 세종대왕 이전 예정지를 배경으로 합성했다. 김영원 전 학장 제공
이진구 논설위원
이진구 논설위원
―지금의 세종대왕 동상 위치는 어떻게 정해진 건가.

“공모에 선정된 후 2주 동안 광화문을 답사했다. 그리고 북악산 정기가 경복궁과 광화문을 거쳐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축에 가장 위대한 인물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의 거리도 고려했다.” (이순신 동상과의 거리라니?) “두 동상이 너무 가까우면 시각적 공간 충돌이 생겨 보기가 부담스러워진다. 너무 떨어지면 무(武)를 상징하는 이순신 장군과 문(文)을 상징하는 세종대왕 간의 조화가 사라진다. 세종문화회관과 미국대사관이라는 거대한 건물이 동상에 미치는 시각적 요소도 고려했다. 주변의 모든 구조물이 시각적으로 서로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찾은 거다.”

―재조성안처럼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옮기면 이상해지나.

“작품과 장소는 한 몸이다. 이전되면 지금처럼 광장의 주인, 역사의 축으로서의 상징성이 사라진다. 세종문화회관은 엄청나게 웅장한 건물이다. 그 옆에 동상이 놓이면 같은 크기라도 지금보다 훨씬 왜소하게 보인다. 세종문화회관에 딸린 장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동상이 지금처럼 남쪽(남대문 방향)을 바라보지 않고, 동쪽(미 대사관 방향)을 본다는 점이다.”

세종대왕 동상 이전 예정지.
세종대왕 동상 이전 예정지.
―얼굴이 동쪽을 보는 게 왜 문제가 되나.

“조각은 빛의 예술이다. 어떻게 조명을 받느냐에 따라 작품이 살고 죽는다. 그래서 조각은, 특히 인체는 동향이나 서향으로 놓지 않는다. 지금은 햇빛이 얼굴 왼쪽에서 머리, 얼굴 오른쪽을 비추며 지난다. 이마, 코 등 때문에 얼굴에 적당한 음영이 지면서 양각이 살아나 어느 때, 어느 쪽에서 봐도 정상적인 사람 얼굴로 보인다. 그런데 이전 예정지에 놓이면 동상이 동쪽을 향한다. 해가 얼굴 정면을 비추며 뜬 뒤 뒤통수를 비추며 지는 것이다. 햇빛이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면 음영이 하나도 안 생겨 인형처럼 멍청해 보인다. 반대로 오후에는 해가 뒤에서 비추기 때문에 얼굴이 시커멓게 된다. 그래서 옮길 바에는 차라리 없애 달라고 한 거다. 알 만한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니….

“공모전 심사위원장인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건축가다. 조경,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공간에 대한 공부는 기본이다. 공간과 방향에 따라 동상이 어떻게 보인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 이전을 하면 세종대왕 동상은 흉물처럼 보이게 된다. 시민들 사이에서 보기 안 좋다는 말이 나올 테고 그때 가서 자연스럽게 없애려고 하는 게 아닌지….”

―서울시가 사전에 의견이나 양해를 구하지 않던가.

“한마디도 말해 준 게 없다. 그래서 왜 옮기려고 하는지 모른다. 하도 답답해서 서울시 홈페이지에 질문을 올렸는데 답이 없다가 어제(11일) 오후 5시경에야 서울시 공무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시는 이전을 말한 적이 없다면서 단지 당선작 설계자와의 만남은 주선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설계자를 만난들 무슨 소용인가. 결정은 서울시가 하는 거 아닌가) “책임을 그쪽에 떠넘긴 거지.” (만났나?) “오늘 오후 2시경이라고 했는데 어디서 만나는지 아직도 연락이 없다.” (지금 오후 1시가 넘었는데?) “그러게 말이다.”

―이전이 불가피하다면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예의 아닌가.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앞에 현대미술의 거장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이란 작품이 있다. 비행기 잔해로 꽃을 형상화한 것인데 예술적 의미가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좀 흉하게 보일 수 있는 형상이다. 보기 싫다는 민원이 많아지니까 포스코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겠다고 했다. 내가 그곳 작품심의위원이었는데 심의를 하면서 작가한테 허락을 받으라고 했다. 안 그러면 큰 망신이나 아니면 엄청난 페널티를 물 수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노발대발해서 한 치라도 옮기면 소송을 하겠다고 펄펄 뛰더라. 결국 못 옮겼다. 작품과 장소는 한 몸이다.”

―세종대왕의 어떤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나.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초상화도 없고….” (어진이 없나?) “세종대왕은 어진이 없다. 지금 1만 원권 지폐에 있는 그림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것이다. 동상심사위원회가 운보 그림을 주면서 참고하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좀 유약해 보였다.” (유약하다니?) “세종대왕은 자애로운 분이지만 백성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늘 사대부들과 충돌했다. 훈민정음 창제는 그 절정이었고. 난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는 목숨을 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존 표준 영정에서는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남아 있는 태조 영조 고종 순종 어진을 참고하고 후덕한 얼굴인 고종을 많이 반영했다. 다행히 다들 세종대왕으로 여기더라. 하하하.”

―만드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나.

“점토 작업만 3개월 반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5kg이나 빠졌다. 한여름에도 오한이 들어 점퍼를 입고 작업했으니까…. 불면증도 걸리고….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다 포기하고 외국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까짓것 위약금 물어주면 그만이지 하고….” (세종대왕 용안을 본 사람도 없는데…) “안 봤으니까 각자 느낌으로만 대할 것 아닌가. 더 힘들지. 더구나 광화문이라는 대한민국의 중심이 주는 중압감, 최고의 성군을 감히 나 같은 게 만든다는 부담이 너무 컸다. 나라 한복판에 자신의 작품이 있다는 건 대단한 영예지만 그만큼 큰 부담이다. 2009년 10월 9일 제막식만 가고 이후 1년 동안 광화문 근처는 얼씬도 안 했다. 너무 힘든 기억이 떠올라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만들었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하던데….

“2017년 박 전 대통령 추모 단체에서 서울 마포구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에 세울 동상 제작을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난 11월 14일을 기념해 전날 설치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기념관 안에 텐트까지 치고 격렬하게 막았다. 충돌이 너무 커져서 결국 동상은 못 세우고 소유권을 기념관에 넘기는 서류 기증식만 했는데…, 기념관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도 와서 격렬하게 반대하더라. 그런데 나랑 눈이 마주치자 못 본 척 고개를 휙 돌렸다.” (손 의원은 홍대 미대를 나오고 산업미술대학원 교수를 하지 않았나) “그렇지….” (그 뒤에는 어떻게 됐나) “서울시가 허가를 안 해 아직도 설치를 못 하고 있다. 동상은 내가 보관하고 있고…. 인물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박 전 대통령이 동상도 만들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반대한다고 힘으로 막는 게 진보라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서울시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설치를 불허했다.”

―서울시가 왜 동상 설립을 불허하나.

“기념관 부지가 시유지라 조형물을 세우려면 서울시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게 심의할 만한 걸 해야지, 박정희 기념관에 박정희 동상 설치가 심의 대상이 되나. 견디다 못해 기념관에서 서울시에 정식으로 설치허가 요청서를 냈다. 그랬더니 마포구민 동의서를 받아 오라고 했다. 기가 막힌 일이다.”

※허가를 지연하던 서울시는 이듬해인 2018년 2월 당초 없던 ‘근·현대 역사 인물 동상 건립 기준’을 신설하고 기념관 측에 역사자문기관 3곳 이상에서 인물 평가를 받아 와야 허가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기념관 측은 역사기관 평가 대신 박 전 대통령 관련 서적 12권을 제출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청남대에 세워진 역대 대통령 10명의 동상을 다 만들었다던데….

“충북도에서 청남대 길마다 역대 대통령 이름을 붙였는데 그 길에 하나씩 세워졌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대통령마다 표현하고 싶은 모습이 있었나) “YS는 결단성, DJ는 화합과 통합,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 타파, MB는 부지런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누가 가장 만들기 어렵던가) “하하하. MB였다. 그분이 좀 얼굴이 왜소해서 양감이 잘 안 나온다. 또 눈 크기가 달라서…. 속된 말로 짝눈이라고 하는 건데…. 똑같이 만들면 얼굴이 엄청 이상하게 보인다. 약간 (눈을 키우는)가필을 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할 수 없이 눈도 그렇고 좀 가필을 했다. 하하하.”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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