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81〉조문객들과 환담을 나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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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어휘를 제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상황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상황은 글을 쓰는 맥락을 말한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맥락을 제대로 파악해서 대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그는 조문객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위 문장은 문법적으로 보면 문제가 없다. 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문장은 아니다. ‘환담’이라는 어휘 때문이다. ‘환담’을 구성하는 한자를 통해 이 어휘의 의미를 익혀 보자.


‘환담’의 뜻은 ‘기쁘고 즐거운 이야기’다. 조문객들과 이런 기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맥락상 어색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 문제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장례식장이라고 어두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가끔 웃음을 볼 수 있는 장례식장이 더 좋아 보일 때도 있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물론이다. 문제는 ‘환담’ 자체가 갖는 기쁨이 장례식장에서 허용되는 어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위 표에서 ‘환(歡)’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보자. 한자어의 느낌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관련된 다른 단어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 좋다. 어휘를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례식장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환호’나 ‘환희’와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다. 쓸쓸한 웃음이거나 지난날을 기억하는 추억의 웃음이거나 장례식장에서나 만나게 되는 사람들끼리의 반가움을 반영한 웃음일 뿐이다.

● 그는 굳은 표정으로 조문객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더구나 위의 문장처럼 ‘굳은 표정’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말이다. 누군가는 또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환’에 ‘기쁠 환(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슬플 환(患)’도 있다고.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칭찬받아야 한다. 어휘는 관계를 전제로 한다. 하나의 어휘를 고려할 때 연관된 많은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슬플 환’에 대한 질문은 ‘동음이의어’를 활용해 맥락에 맞는 단어를 고려한 것이다.

‘슬플 환(患)’도 흔히 쓰이는 한자다. ‘환자, 우환, 환란’에 쓰인 한자다. ‘환담’이 슬픈 이야기로 해석된다면 위의 문장은 자연스러운 것이겠다. 그러나 이 한자를 사용한 ‘환담’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환담(幻談)’이라는 동음이의어가 있을 뿐이다. 이 ‘환’은 ‘환각(幻覺), 환상(幻想)’이라는 단어 속 한자다. 게다가 흔히 쓰이는 단어들도 아니다. 오히려 ‘괴담(怪談)’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한다면 장례식장에서의 ‘환담’은 삼가는 것이 좋다. 가끔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아래와 같이 구체화하는 것이 더 낫다.  

● 그는 조문객들과 고인과 함께했던 즐거운 시절을 이야기했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문법#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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