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 오두막’ 가는 여성에게 자유를”…생리컵으로 주목 받은 세 자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7일 14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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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자라나는 게 두려운 어린 소녀들이 있다. 나이를 먹고 생리를 시작하면 이 소녀들은 생리기간 동안 ‘월경 오두막’으로 보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생리혈을 받는 천 위에 앉아 출혈이 멈추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5세부터 49세까지 세계적으로 8억 인구 여성이 생리를 한다. 하지만 이중 많은 이들이 생리 기간에 여성 위생용품을 사용하지 못한다. 구매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제3세계에 사는 이 여성들은 돈이 없어서 여성용품을 못 사고, 여성용품이 없어서 생리기간동안 경제활동 등을 못 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들을 위해 2015년 싱가포르에 사는 세 자매가 나섰다.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즈’는 그 주인공인 바네사 파란조티(29)와 그의 여동생 조앤(26), 레베카(21)를 취재했다. 이들은 생리컵을 판매하는 여성 위생용품 기업 ‘프리덤컵스(Freedom cups)’를 세웠다. 생리컵은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다회용 생리용품으로 생리기간에 자궁 경부에 삽입해 직접 생리혈을 받는다. 한번 구매하면 10년 간 쓸 수 있어서 일회용 생리대 5000개를 대신할 수 있다.

프리덤컵스의 판매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한 명이 35 싱가포르달러(약 2만8000원)에 생리컵 한 개를 사면 또 다른 생리컵이 구매 능력이 없는 다른 누군가에게 무료로 보내진다. ‘제1세계(선진국) 여성과 제3세계 여성의 연결’, 이 지점이 파란조티 세 자매가 이뤄낸 혁신이다. 바네사는 “프리덤컵스는 제1세계 여성들의 생리용품 낭비를 줄이게 도와주고, 생리용품을 감당할 수 없는 제3세계 여성들에겐 큰 경제적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올해 임팩트 저널리즘 데이(IJD·Impact Journalism Day)에 참여한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은 이렇게 세상을 바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내 소개했다.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진원지인 미국땅 밖으로 퍼져나가고 아일랜드에선 35년 만에 사실상 낙태죄가 폐지되는 등 탄력 받은 페미니즘 바람을 각국의 보도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프리덤컵스의 생리컵은 세계 각지로 배달된다. 3년 전 판매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생리컵 3000개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네팔 등 7개 국가로 퍼져 나갔다. 프리덤컵스에서 생리컵을 구매해 3년째 사용 중인 싱가포르 여성 인 페이 샨(22)은 “생리대에서 탐폰(체내형 일회용 생리대)으로, 그리고 다시 생리컵으로 생리용품을 바꾸는 게 처음엔 두려웠지만 결국 그런 변화가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편리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세계의 주목을 받은 파란조티 자매는 2017 포브스 아시아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억압받아왔던 여성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매체 ‘하시테섭’은 억압적인 사회풍토에서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필진으로 나선 ‘프리 우먼 라이터스(Free Women Writers)’의 활동을 소개했다. 2013년 노르자한 아크바와 바툴 모라디가 설립한 이 비영리단체는 여성들이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겪은 위협과 두려움에 대해 쓴 글을 엮어 출판한다. 유엔 아프가니스탄 지원단(UNAMA)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무슬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통 관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혹은 그저 직업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살해당하곤 했다.

이들의 첫 책인 ‘라비아의 딸들(Daughters of labia)’은 총 1500부가 인쇄됐다. 아크바가 사비를 털어 출간한 이들의 첫 책은 한 달 만에 완판됐다. 아크바는 “책을 구매하기 위해 6개 지방에서 사람들이 카불로 왔고 책을 그들의 지방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두 번째 책인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You are net alone)’는 보다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소셜 미디어와 웹사이트에도 게시했다. 수익금은 아프가니스탄 여자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성평등도 수학이나 국어처럼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도 조명 받았다. 미국의 ‘CS모니터’는 매디슨 메트로폴리탄 스쿨 지구의 아동 성평등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매디슨 메트로폴리탄 스쿨 지구는 미국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 있는 학구를 말한다.

어린 아이들이 교육 대상이지만 내용은 간단치 않다.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은 남성과 여성, 두 개 성의 평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의 권리까지도 함께 배운다. 크레스트우드 초등학교도 이중 하나다. 교육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된 아이들에게 ‘빨강’이라는 이름의 파란색 크레용 이야기를 가르치는 식이다. 파란색 크레용을 빨강이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람의 외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배운다.

이 학구 내 또 다른 학교인 누에스토 먼도 커뮤니티 학교장 조슈아 포핸드는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 사회에 권력의 불균형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그 불균형을 해체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학생들이 성과 정체성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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