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잡史]세책점 주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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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가(쾌家·세책점)에서 소설을 깨끗이 베껴 쓰고 빌려주어 그 값을 받아 이익을 삼았다. 부녀자가 비녀나 팔찌를 팔거나 빚을 내면서까지 다투어 빌려 그것으로 긴긴 하루를 보냈다.”

―채제공(1720∼1799)의 ‘번암집’ 가운데 ‘여사서서(女四書序)’에서

17세기 후반 상업이 발달하면서 소설책도 사고팔았다. 소설책을 베껴 쓰는 필사업자가 나타났고, 대여료를 받고 빌려주는 세책점(貰冊店)이 서울 곳곳에 들어섰다.

점주는 독자를 매료시킬 작품의 가치를 보는 안목과 유행을 읽는 감각이 필요했다. 한 권짜리 작품을 여러 권으로 나눠 필사하면서 결정적인 장면에서 다음 권으로 넘겨 독자가 계속 빌려가도록 유도했다.

세책점은 책방에서 파는 것보다 더 좋은 종이를 책에 썼고, 대여료로 책값의 10분의 1이나 2문(文)을 받았다. 긴 작품의 대여료는 5문가량이었다. 세책 장부에는 대하소설 격인 ‘임화정연’과 ‘쌍성봉효록’이 도합 151권이고, 값은 75냥(兩) 5전(錢)이라고 적혀 있다. 책값이 권당 5전(50문)가량이므로 적어도 열 번 이상 빌려줘야 타산이 맞는 셈이다.

인기가 좋아서 실학자 이덕무는 소설책을 빌려 보다가 가산을 탕진하는 이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책점주가 고른 작품은 사대부 여성 사이에서 ‘트렌드’가 됐다. 일제강점기 활동한 선교사 해밀턴은 조선 여성이 소설을 탐독했으며, 내용을 모르면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인기가 많은 책은 낙서도 많았다. ‘설인귀전’ 책 말미에는 “부디 네 어미를 단장시켜서 이 글씨 쓰신 양반에게로 시집보내라”라는 욕이 남아있다. ‘김홍전’을 빌렸던 어떤 이는 한 권짜리 책을 네 권으로 만들었다며 “잡놈”이라고 썼다.

세책점주도 응수했다. 착실히 보시고 낙서하지 말아 달라든지, 욕설을 쓰지 마시길 천만 번 바란다고 썼다. 한 권으로 묶기에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두 권으로 나눴다고 변명하거나 벌금을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낙서는 지울 수 없어 흰 종이를 붙여 가렸다.

세책점주는 당대의 출판기획자이자 편집자였고, 서적과 지식의 대량 유통을 가능케 한 장본인이었다. 그 덕에 사대부 여성은 소설 독서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홍현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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