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경비아저씨는 왜 매일 ‘헛 인사’를 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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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서울 시내에 자주 가는 빌딩 두 곳의 이야기다. 한 빌딩은 오전이면 경비원이 바쁘게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수백 번 머리 숙여 인사한다. 한번은 이 광경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바쁜 출근 시간에 경비원의 인사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대형 빌딩은 차가 들어올 때마다 경비원들이 머리 숙여 인사한다. 운전자가 같이 머리 숙여 인사하는 순간 안전 운전에 방해될 것이고, 결국 많은 사람들은 그냥 지나간다.

지난주에 방문한 또 다른 빌딩 풍경. 한 유럽계 회사가 쓰고 있는 이 빌딩에서 임원을 만날 일이 있었다. 현관에 있던 직원이 전화하자 임원이 나왔고, 이때부터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직원은 그 임원에게 나와 함께 현관에 있는 4분짜리 빌딩 안전 비디오를 서서 보도록 이야기했고, 그 ‘높은’ 임원은 아무 말 없이 비디오를 함께 시청했다. 회의실이 있는 위층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계단을 오를 때였다. 그 임원은 내게 비디오에서 본 것처럼 옆에 있는 계단 손잡이를 잡으라고 하면서 시범을 보여주었다. 주변의 다른 직원들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계단 손잡이를 잡은 것은 아마도 유치원 때 아니었을까.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유럽계 회사는 작은 안전을 지키는 것이 커다란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규정을 따르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많은 일을 동료들이 “하는 대로”,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과거에 “하던 대로” 한다. 큰 고민 하지 않아도 되고, 비교적 효율적이다. 주변 사람들이 과거부터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을 관행(慣行)이라고 부른다. 대다수 주변 사람들이 특정 일을 한 방향으로 처리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자기만의 판단을 하지 않고 ‘여기에서는 그렇게 하는’ 관행을 따라간다.

앞서 말한 빌딩 경비원의 사례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총무부서의 누군가가 경비원에게 들어오는 차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목례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치자. 경비원은 받지도 않는 인사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차라리 다른 업무를 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겠지만, 괜한 이야기를 꺼내기보다는 시키는 대로, 다른 경비원이 하는 대로 계속 하게 된다. 인사받는 직원들도 경비원의 목례가 필요할까 생각하지만 내가 인사하느라고 수고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간다. 총무부서에서도 일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괜히 인사 안 하는 것으로 바꿨다가 누구에겐가 잔소리 들을까 싶어 그냥 지나간다. 회사의 높은 사람은 경비원들이 인사 잘한다고 혹은 성의 없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관행은 보통 하던 대로 계속 진행된다.

이러한 문제를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큰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비용 처리에 대해 ‘내가 이렇게 처리해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직장 내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저렇게 행동해도 괜찮을까?’ 싶어 갸우뚱할 때가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저런 농담 하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질문은 나 자신에게 혹은 다른 사람을 향해 일어난다. 이럴 때면 우리는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의문을 멈추고 무비판적이게 된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데…’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현상을 사회심리학에서는 동조(conformity)라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미투 운동도 잘못된 관행에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하지 않던 것이 터진 것이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마음의 사회학’에서 모럴은 가족이나 조직이 구성원을 규제하기 위한 행동규칙이나 가치를 뜻하지만 윤리란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성찰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직장에 모럴은 과잉 상태이고 부재하는 것은 윤리이다.

관행은 앞서 유럽 회사처럼 안전을 담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또 많은 경우에는 잠재적인 위험을 갖고 문제로 터질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우리는 때로 관행을 뒤집고 흔들어볼 필요가 있다. 관행을 흔들어보는 것에서 혁신이나 안전, 윤리적 예방이 가능하다. 며칠 전 한 동료가 보내준 문장처럼 “나침반의 바늘 끝은 흔들려야 정상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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