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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커버스토리]재혼, 당당하게 두드리는 행복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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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커버스토리]재혼, 당당하게 두드리는 행복의 문

동아일보입력 2011-11-26 03:00수정 2011-11-2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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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 “모두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리세요. 자, 따라 외칩니다. 할 수 있다!” 진행자를 따라 ‘할 수 있다’를 외치는 김성민(가명·36·회사원) 씨의 목소리엔 흥분을 넘어 비장함까지 느껴집니다. 앞으로 6시간이 주어지고, 여성 한 명과 일대일로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은 2분 30초에 불과합니다.행사 폐막 10분 전, 마음에 드는 여성 3명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냅니다.

결과는? 성민 씨는 이날 학원강사인 30대 초반의 여성과 ‘짝’이 됐습니다. 그녀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행사에 나오는 건 상상도 못했죠. 하지만 이젠 당당해요. 제 인생이잖아요.” 12일 한 결혼정보회사가 남녀 재혼 희망자 20쌍을 대상으로 연 미팅 파티의 모습입니다.

돌싱(돌아온 싱글)과 황혼재혼(일반적으로 50대 이상의 재혼을 지칭)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재혼의 시대’가 왔다고. 주말섹션 ‘O₂’가 이런 흐름에 맞춰 재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4년 전 재혼한 이미경(가명·36·가정주부) 씨와 지난해 재혼한 박승복(가명·64·자영업) 씨가 주인공입니다. 》
① 30대 그녀의 돌싱 생활 청산기
푸근한 오빠같은 그 남자가 듬직한 언덕으로 다가왔다


저절로 눈이 갔다. 듬직한 덩치에 카리스마 있는 눈빛이 시선을 끌었다. 그 남자도 내게 호감이 있는지 힐끔힐끔 쳐다봤다. 유난히 추웠던 1999년 1월의 어느 날. 친구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였다.

그렇게 그를 처음 만났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몇 번 만난 뒤엔 자연스럽게 사귀는 사이가 됐다. 그러다 1년여가 지난 2000년 3월 덜컥 결혼을 약속했다. 당시 스물다섯 살이던 난 어린 마음에 이것저것 따지는 게 귀찮았다. 부모님은 장녀인 나부터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했다. 지방이 고향인지라 혼자인 서울생활이 외롭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그에게 무덤덤했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내 환상이 너무 큰 건가.’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1년을 참다 결국 결심했다. ‘헤어지자. 아닌 게 확실한데 주변 이목 때문에 이 생활을 이어갈 순 없다.’

35세 이하 재혼율 첫 10%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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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재혼 연령은 2000년 42.05세에서 2010년 46.11세로 높아졌다. 여성 역시 마찬가지(2000년 37.45세→2010년 41.59세). 그 이유는 50대 이상 재혼자가 급증해서다. 하지만 35세 이하에서의 재혼 역시 최근 만만찮게 늘어나는 추세다.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레’와 재혼전문사이트 ‘온리유’의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재혼 신청자(2564명) 가운데 35세 이하의 비율(11.1%)이 올해 사상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재혼과 관련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행동하는 젊은 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한편으론 “부모의 과잉보호 아래 자라 인내심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결혼을 일찍 포기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35세 이하 부부가 이혼을 결심하는 이유가 뭘까. 비에나레-온리유가 35세 이하 재혼 상담 신청자 284명을 대상으로 물어본 결과 남성은 ‘처가의 간섭’(26%), 여성은 ‘배우자의 부정행위’(28%)를 1위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 남성은 ‘성격, 습성상 차이’(21.1%)와 ‘배우자의 부정행위’(15.4%)를, 여성은 ‘경제적 요인’(24.8%)과 ‘시가의 간섭’(16.8%)을 들었다.

이혼은 쉽지 않았다. 일단 부모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집안에 이혼한 사람이 있으면 동생들 혼삿길이 막히지는 않을까, 회사 동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저런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평소 내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남편은 이혼 얘기가 나오자 “먼저 이혼하자고 했으니 위자료를 달라”며 점점 높은 금액을 요구했다. 이러다 보니 처음 얘기를 꺼낸 뒤 실제 이혼하기까지 반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02년 1월 이혼 도장을 찍고 법원 문을 나서던 날. 이유 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렀다. 그러고 받아든 ‘이혼녀’란 딱지. 그 주홍글씨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괜히 손가락질 받는 것 같아 스스로 위축됐다. 부모님을 볼 땐 죄송한 마음에 가슴이 아렸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전남편이 결혼생활 중에도 계속 만나던 애인이 있단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을 때였다. 미련은 없었지만 배신감에 고통스러웠다. 두 번이나 죽을 결심까지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부모님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남자에 대한 실망감에 얼마 동안은 남자들과 말을 섞지도 않았다. 그냥 모든 걸 버리고 외국으로 떠나고 싶었다.

▶▶▶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07년 30세 이상∼50세 미만인 재혼 희망자 550명을 대상으로 ‘재혼 시 가장 염려되는 부분’을 조사했다. 남성은 ‘다시 이별할지 모른다는 두려움’(35.3%)을, 여성은 ‘새로운 가족 간 부적응으로 인한 불화’(46.4%)를 가장 많이 꼽았다. 특히 남성은 29.4%가 ‘자녀의 반대’를 선택한 반면, 여성은 7.1%만이 같은 항목을 선택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3년 넘게 일에만 전념했다. 아픔이 어느 정도 아물었을 무렵 아버지가 넌지시 물었다. “정말 평생 혼자 살 생각이니?” 어렵게 말을 꺼낸 아버지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 첫 번째 상담에서 커플매니저가 말했다. “재혼이라고 전혀 위축될 것 없어요. 젊고, 성격도 밝고, 무엇보다 아이가 없어 조건이 괜찮습니다.”
▼ 작년 재혼 비율 22%… 남녀 모두 “성격부터 따집니다” ▼

이후 1년 반 동안 50명 넘는 남자를 만났다. 그 가운데 10명 정도는 초혼인 사람이었다. 연애는 조심스러웠다. 일단 두 가지를 눈여겨봤다. 첫 번째는 성격, 두 번째는 아이가 있는지였다. 어릴 땐 외모에 눈길이 먼저 갔지만 한 번 실패를 맛본 뒤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나이가 좀 많더라도 성격이 푸근하고 자상하며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재혼자 찾는 초혼자도 부쩍 늘어

▶▶▶ 지난해 전체 결혼 가운데 재혼 비율은 21.86%(통계청)에 이른다. 재혼전문 결혼정보회사 ‘행복출발 더원’이 ‘배우자 선택 시 고려사항’을 재혼 희망자 496명에게 지난해 물어본 결과(복수 응답 가능) 남성(79%)과 여성(68.4%) 모두 ‘성격’을 첫 번째로 꼽았다. 남성은 그 다음으로 ‘건강’(38.2%) ‘외모’(37.8%) ‘가정환경’(27.5%)을, 여성은 ‘경제력’(60.3%) ‘건강’(23.9%) ‘직업’(20.9%) 등을 선택했다.

한편 결혼관과 이상형이 바뀌면서 초혼자와 재혼자가 교제를 하는 비율도 최근 5, 6년 사이 크게 늘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남성의 경우 무조건 예쁘고 어린 여성보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으면서 말이 통하는 상대를 원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여성 역시 자신에게 당당한 ‘골드미스’가 늘어나면서 성격과 경제력 등만 뒷받침된다면 재혼 남성이라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2007년 1월 ‘그 남자’를 만났다. 나보다 일곱 살 많은 그는 사업을 했다. 첫인상은 푸근한 오빠 같은 느낌. 그도 결혼에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결혼적령기란 족쇄 때문에 그를 좋아하던 한 여성과 얼떨결에 결혼했단다. 하지만 결혼 이후 취미와 생각 등 모든 게 너무 달라 결국 갈라섰다고 했다.

사실 전남편과 결혼 전 만날 땐 주로 그의 친구들과 함께였다. 육군 장교인 그의 동기 이름까지 내가 줄줄 꿰고 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정작 둘만 보낸 시간은 별로 없었다. 반면 새로 알게 된 그와는 주로 단둘이 만났다. 진심을 알 수 있을 만큼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처음 아버지께 그 남자를 소개한 날. 아버지는 “믿음직스럽다”면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신중할 수밖에 없으셨다. 아버지는 공무원인 동생을 통해 그 남자의 신상명세까지 확인하고서야 교제를 허락했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4월의 어느 날, 그 남자가 내게 프러포즈를 했다. 듬직한 데다 경제력까지 갖춘 남자. 무엇보다 내게 너무 과분한 사랑을 준 그였기에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재혼까지 눈치 보면서 해야 할까. 초혼 못지않게 당당하게 교제하는 재혼 커플이 최근 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지난해 재혼에 성공한 이민기 씨(33·공무원)는 “재혼을 바라보는 주변 인식이 눈에 띄게 너그러워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듀오가 2007년 미혼 남녀 550명을 대상으로 ‘아버지의 재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더니 ‘반대한다’는 의견은 3.6%에 그쳤다. ‘어머니의 재혼을 반대한다’ 역시 3.6%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재혼 과정이 항상 순탄하진 않다.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가 재산 문제다. 특히 황혼재혼의 경우 재산 문제가 발목을 잡을 소지가 크다. 실제 ‘O2’가 거리에서 만난 미혼남녀 30명에게 ‘아버지가 재혼을 결심한다면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일까’를 물었더니 15명이 ‘재산 상속’을 꼽았다. ‘새로운 가족과의 적응’(7명)과 ‘주위의 부정적 시선’(4명)이 뒤를 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재혼 전에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나눠주거나 재산 일부를 재혼 상대자에게 미리 줘 처음부터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 혼인신고 없이 동거만 하는 ‘계약결혼’ 커플도 증가하는 추세다.

결혼 준비는 두 달 만에 끝냈다. 만난 지 딱 반년 만에 치르게 된 결혼식. 호텔에서 많은 하객을 초청해 성대하게 올린 전남편과의 결혼식 때와 달리 간단하게 치렀다. 하객은 남편과 내 쪽에서 50명씩 초청했고, 웨딩드레스를 또 입는 게 쑥스러워 이브닝드레스로 대체했다. 신혼여행은 빡빡한 시간을 쪼개 멀리 가는 대신 전국일주를 했다. 매년 해외여행을 가기로 약속했기에 불만은 없었다. 혼수의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 쓸데없는 혼수를 줄이되, 꼭 필요한 물건은 과감하게 명품으로 장만했다.

예식 규모는 작게, 비용은 넉넉하게


▶▶▶ 보통 재혼의 경우 하객 수가 초혼 때보다 적다. 남녀 각각 친인척 위주로 50∼100명 수준.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고 경제력을 갖춘 재혼 커플은 규모는 작되 고가의 웨딩패키지를 선호한다.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의 관계자는 “재혼의 경우 식사, 메이크업, 헤어 등에 드는 비용이 초혼에 비해 평균 1.5∼2배 높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조용히 교외에서 진행하는 하우스 웨딩도 재혼 커플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한편 초혼 못지않게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결혼식을 크게 치르는 재혼 커플도 늘었다. 이런 자신감은 황혼재혼 커플도 마찬가지. ‘행복출발 더원’의 표순규 대표이사는 “요즘 많은 50대 이상 재혼자가 결혼 전 산부인과와 피부과, 비뇨기과 등을 찾아 자기 관리를 한다. 결혼식 역시 당당하고 화려하게 올리는 커플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재혼전문 웨딩홀, 재혼전문 여행사 등 여유 있는 재혼 커플을 노린 ‘재혼전문’ 업체 역시 많아지는 추세다.

재혼한 지 4년 반째로 접어든 결혼생활은 만족스럽다. 남편을 생각하면 푸근하고, 집에 있으면 편하다. 특별한 자극 대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던 기대, 그 이상이다.

재산은 남편이 관리한다. 처음엔 나보고 관리하라 해서 그랬지만 머리가 아파 그만뒀다. 지금은 그냥 생활비만 받아쓰고 있다. 사실 전남편과는 재산을 따로 관리했다. 돌이켜보면 같은 곳에 살지만 따로따로인 것처럼 느낀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원 한 푼도 서로 공유하지 않았으니 마음까지 멀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도 답답한 부분이 없진 않다. 2년 전 첫 아이를 낳은 뒤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는데 다시 일하고 싶다. 행복한 투정이라 할지 모르지만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하는 성격이라 어쩔 수 없다.

한번은 재혼 소식을 듣지 못한 남편의 아주 먼 친척이 나를 보더니 “안사람 키가 줄어든 것 같다”고 해 당혹스러운 적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전부인 흉을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괜히 내가 무안해진다.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지금 남편과 살면서 재혼이라 특별하단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

▶▶▶ 재혼하면 행복할까. ‘O2’가 만난 두 명의 경험자는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놨다. 재혼 6년째인 박선아 씨(42·회사원)는 “시기와 조건만 생각하다 정작 사람 문제를 놓쳐 실패한 첫 번째 결혼보단 아무래도 만족도가 높다. 재혼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알고 만났기 때문이다”라며 예찬론을 폈다. 반면 세 번의 결혼에서 모두 실패를 맛본 뒤 솔로생활을 하는 전모 씨(44·자영업)는 “상처 있는 사람끼리 만나면 그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다른 곳으로까지 확대된다”고 주장했다. 또 “전 배우자란 존재는 여러 상황에서 작은 갈등도 증폭시키는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성공적인 재혼생활을 유지할 방법은 없을까. 변화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름길은 없다. 일단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라고 조언했다. “외로움을 달래는 좋은 친구 개념으로 천천히 접근하면 안정적인 재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요. 또 어떠한 경우라도 전 배우자와 비교하는 말이나 행동은 금물입니다.”
② 60대 그 남자의 황혼 재혼기
‘수다’가 늘어난 만큼 서로에게 향한 속정도 깊어져


환갑이 넘어 딸 하나가 새로 생겼다. 말끝마다 ‘아빠, 아빠’를 붙이며 스스럼없이 살갑게 대해 준다. 대학원 공부에다 남편 뒷바라지로 바쁘지만 꼬박꼬박 안부 문자를 보내 준다. 두 아들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제는 딸 가진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 2010년 8월 나보다 두 살 어린 한 여자를 혼자 살던 집으로 맞아들였다. 그녀가 이사 오던 날, 딸도 새로운 가족이 됐다.

조건이 전부는 아니다


만난 지 두 달 만이었다. 결혼식은 따로 올리지 않았다. 구청에 혼인신고만 했다. 그녀가 “혼인신고만 먼저 하고 결혼식은 양쪽 친지들한테 인사드리면서 천천히 하자”고 말했다. 신혼여행은 미국에 사는 처형에게 인사도 드릴 겸 미국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일이 생기는 바람에 1박2일 전남 홍도 여행으로 대신했다.

재혼 전문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그녀를 만났다. 앞서 10명이 넘는 여자를 소개받았다. 잘될 뻔한 적도 있었다. 잠자리도 같이 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했던 여자에게서 결국 ‘이렇게 친구처럼 지내자’라는 말만 돌아왔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20년 정도 남은 인생을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사람이었다. 여자친구를 만날 시간은 없다며 거절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재산이 문제였다. 막상 사는 집을 둘러보곤 재혼 상대로 부족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저 나 하나만을 봐주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1억4000만 원 정도 하는 빌라와 강화도에 있는 작은 임야가 전부인 나를 말이다. “당신의 성실함에 끌렸다”고 했다. 그녀의 첫 결혼생활은 ‘악몽’이었다. 남편이 십 원짜리 한 장 생활비로 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수시로 돈을 뜯어가기만 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며 그녀 혼자 딸을 키웠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웃는 법을 잊지 않았다. 처음 만난 날 서울의 한 낙지집에서 보여준 선하고 따뜻한 그 미소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1970년대 서울은 연인들이 갈 곳이 없었다. 사랑에 미숙했던 것만큼, 다방이나 극장이 데이트 장소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갈 곳이 너무나 많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남산 N서울타워의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청계천도 함께 걸었다.

사돈들도 권했던 재혼


집안의 경제권은 모두 그녀에게 맡겼다. 내가 번 돈을 모두 갖다 준다. 가끔 카드를 쓰기도 하지만 보통 한 달에 10만 원 정도를 용돈으로 받는다.

첫 결혼 때도 경제권은 모두 아내에게 맡겨두고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사달이 났다.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아내가 캐나다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오빠에게 돈을 보내주고 있었다. 5000만 원이면 웬만한 단독주택을 살 수 있었던 그 당시에 1억 원 정도가 건너갔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별거에 들어갔다. 두 아들은 아내가 맡았다. 떨어져 산 지 3년여가 지난 2000년 결국 법적으로도 이혼에 이르렀다.

꼬박 13년을 혼자 살았다. 집 한 칸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누군가를 만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교육비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집을 사고 아이들도 직장을 얻으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외로움이 엄습해 왔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 캄캄한 방의 불을 켤 때면, 15년 전 끊은 담배 한 대가 간절했다. 적적한 마음을 담배 연기 한 모금으로 채우고 싶어졌다. 쉬는 날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탈 때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부부의 모습을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보기 일쑤였다. 남은 인생을 도저히 혼자 살 자신이 없었다.

“너무 고르지 마시고, 빨리 좋은 분 만나서 재혼하셔야죠.”

사돈들도 만나면 이런 말을 건넸다.

사실 까다롭게 고를 것도 없었다. 젊었을 때는 외모가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너무 예쁜 여자는 싫었다. 건강하고 착하고, 빚만 없는 여자면 ‘오케이’였다.

3년 전에 재혼한 형님 한 분은 배우자를 정말 까다롭게 골랐다. 올해 73세인 그 형님은 10년 넘게 재혼할 여자를 찾았다. 처음엔 자녀가 없는 여자를 찾았다. 재혼 후 자식들 사이에 재산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싫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건에 맞는 여자가 없었다. 그러자 범위를 조금 넓혀 아들이 없는 여자를 찾았다. 그래도 이 여자다 싶은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 지금 그 형님은 아들 딸이 한 명씩 있는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 재산 문제도 명확히 해놓지 못한 채 말이다.

물려줄 재산도 많지 않지만 난 이미 아들들에게 선을 그어놓았다. 대학 졸업 이후 경제적 지원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행히 아들들도 별 불만이 없었다. 결혼도 스스로 벌어서 했다.

적극적인 스킨십, 수다

재혼 이후 그녀는 “처음 만난 날에도 뽀뽀 정도의 스킨십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 말로 ‘필’이 통했던 나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보이는 것이 싫었다.

커플매니저는 재혼의 경우에는 ‘진도’가 빨리 나가는 편이라고 했다. 한 번 결혼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인 만큼 서로의 성적 취향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잘될 뻔했다는 그 여자에게도 나와의 잠자리가 어땠는지 솔직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우리는 부부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같이 자고 싶으면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인이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도 여전히 대부분 왕성하게 부부생활을 한다.

물론 부부생활에서 잠자리가 전부는 아니다. 나는 첫 결혼 때에 비해 말이 늘었다. 쉬는 날이면 집 뒤에 있는 산에 함께 오른다. 몸이 약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1시간 반씩 걷다 내려온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온 삶이 길었던 만큼 인생 이야기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된다. 거기다 그녀의 형제들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그렇게 ‘수다’가 늘어나는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난 전처랑 살 때보다 모든 면에서 지금이 더 행복하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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