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들풀 키우며 밥 씹고 똥 싸고… 명상과 행복이 그 안에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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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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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잡초야/황대권 글·그림/288쪽·1만3000원·도솔

감옥 밖으로 나온 저자 황대권 씨는 전남 영광의 산속 농장에서 대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기로했다. 자연과 하나 되기 위해 좌충우돌을 벌이는 소소한 일상과 깨달음이 신간에 담겼다. 도솔 제공
감옥 밖으로 나온 저자 황대권 씨는 전남 영광의 산속 농장에서 대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기로했다. 자연과 하나 되기 위해 좌충우돌을 벌이는 소소한 일상과 깨달음이 신간에 담겼다. 도솔 제공
‘야생초 편지’의 저자가 10년 만에 ‘야생초 편지 두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생태 에세이를 출간했다. 전작이 그가 간첩 누명을 쓰고 13년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며 야생초 화단을 가꾼 이야기라면, 신간에서는 출소 후 지난 10년간 전남 영광의 산속에서 농사짓고 살아온 소소한 일상과 깨달음을 풀어냈다.

책에는 생명평화 운동가로서 자연과 하나 되기를 실천해온 삶이 느리고 담백하게 그려진다. 저자는 유기농 현미잡곡으로 밥을 지어 천천히 씹어 먹으면 시원찮은 반찬 한두 가지뿐이어도 기가 막히게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00번 넘게 천천히 씹는 방법을 몇 쪽에 걸쳐 묘사해 놓았는데, ‘침이 홍수같이 스며 나온다’는 대목에 이르면 입맛이 당기기보다는 도리어 입맛이 사라진다. 또 자연에서 인도식으로 똥 누는 것을 최고의 명상이자 사치로 여긴다는 그는 구덩이 위에 쪼그려 앉아 도중에 끊어지지 않는 ‘완벽한 똥’을 누는 장면을 상세히 써놓았다. 이쯤 되면 슬슬 회의가 밀려온다. 내가 왜 이 바쁜 시간을 쪼개 남이 밥 씹고 똥 싸는 이야기를 읽고 있지?

그러나 조금 인내심을 발휘해, 밤 까고 도리깨질 하고 장작 패는 저자의 단순 반복 노동을 간접체험 하다보면 그 깨알 같은 과정 하나하나에 몰입하게 된다. 단시간에 큰 성과를 내는 효율성이 유일한 미덕이 되어버린 현대 도시에서는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여겨져 홀대 받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 무의미해 보이는 일 안에 명상이 있고 행복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수도자의 자세로 흙집 짓는 데 쓸 칡 줄기를 이틀 내내 나무망치로 으깨며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 섣불리 귀농을 꿈꾸는 도시인에게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단 돈 몇천 원이면 마트에 가서 한순간에 끝낼 일을 며칠을 두고 고민하고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현실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귀농은 결국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밖에 없다.”

자연과 더불어 느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저자의 일상은 지루하기보다 익살맞다. 야생초로 쌈을 싸먹다가 벌레가 나오면 밥과 함께 슬쩍 먹어버리고, 훌훌 발가벗은 채 김을 매다 벌에게 사타구니를 쏘이는 참사(?)를 당하고도 ‘나체 노동’의 즐거움을 버리지 못한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햇볕 따사로운 샘터에 앉아 휘파람 불며 느긋하게 설거지할 때라니!

바쁜 도시인에겐 저자의 삶이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사를 포함한 천지만사가 음과 양이 무한히 교차 반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극단의 인위 뒤에 다시 무위로서의 자연이 온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야생초 편지#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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